▲ 출입자 통제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 ||
그러나 6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공덕역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분위기는 달라졌다. 얼굴에 태극기를 그려 넣은 아이들이 등장했고 자국 선수들의 유니폼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는 외국인들도 발견됐다.
월드컵 열기는 상암경기장 역부터 시작됐다. 출구를 벗어나 밖으로 나가기가 힘들 정도로 역 구내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가까스로 경기장 부근에 도착했을 때는 여기가 한국인지, 외국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다양한 인종들이 제각각의 의상과 스타일로 경기장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웰컴 투 코리아’를 외치며 곱게 한복을 차려입고 외국인을 향해 인사를 하는 색동저고리의 아이들, 프랑스 경기를 응원하러 온 열렬한 프랑스인 마니아들, 커다란 챙을 두른 밀짚모자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멕시코 아저씨, 대형 일본 국기를 흔들며 ‘니폰’을 외치는 일본 청년….
월드컵이 세계인들의 화합과 평화의 장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경기장 분위기는 개막식이 시작되기 전부터 한껏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 흥을 가슴에 품고 SMC(미디어센터)로 들어섰는데 그 안은 바깥 세상과는 너무나 다른 고립무원이었다. 좌석배정과 보조 출입증을 받으려는 국내외 기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면서 3명의 자원봉사자는 허둥대기 시작했고 좌석 배치에 대한 잇따른 항의들로 인해 SMC 일부분이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3층 기자석에서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좌석배정을 받은 기자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에 ‘Blue House’ ‘NPA’ 등의 패찰을 단 공무원들이 대거 나타나 입장을 시도하면서 자원봉사자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좌석표 없이 입장이 불가하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자원봉사자들과 알량한 ‘힘’을 내세워 무작정 진입하려는 청와대 직원들간의 힘겨루기가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계속 되었다.
자원봉사자가 한눈 파는 사이 미디어석으로 들어선 일부 청와대 직원들이 비어있는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다가 나중에 좌석표를 들고 나타난 외국 기자들에게 쫓겨나는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외국 기자들은 그들의 목에 걸려 있는 카드에서 소속 ‘Blue House’를 읽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원봉사자들을 진두지휘하던 서대남씨는 “외국 기자들을 위해 제공된 공간인줄 알면서도 공무원들이 막무가내로 출입하려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개탄했다.
반면 관중석에 남아있는 빈 자리는 또다른 아쉬움을 남겼다. 개막식 시작 전까진 모두 채워질 것으로 기대했으나 개막전이 끝날 때까지도 수천여 석이나 되어보이는 빈 자리는 여전히 듬성듬성 남아 있었다.
밖에서는 입장권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많은 표가 도대체 어디로 사라져버렸단 말인가. 순간 경기장 입구에서 사람들과 흥정을 벌이던 암표상들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화합과 경쟁의 지구촌 축제마당이 벌어진 상암월드컵경기장. 감동과 흥분이 넘실대던 그 안에서 안타까움을 남긴 또다른 이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