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항 전 뜻밖의 암초…눈앞의 ‘대어’ 놓쳤다
김옥찬 KB금융지주 사장이 전 직장인 SGI서울보증에 ‘발목’ 잡혀 제때 취임하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선 이 때문에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패배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옥찬 사장(왼쪽), 윤종규 회장. 이종현·최준필 기자
KB금융지주 사장에 김옥찬 SGI서울보증 사장이 내정된 것은 지난 10월 19일. 당시 김 사장의 KB금융 사장 선임은 작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 2013년 금융권을 뒤흔들었던 ‘KB금융 내분’ 사태 이후 비워둔 KB금융 사장 자리가 2년 3개월 만에 부활한 데다 김 사장은 KB금융 회장 후보로까지 나섰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KB금융은 2013년 7월 임영록 전 KB금융 사장이 회장으로 취임한 후 사장 자리를 계속 공석으로 남겨뒀다. 여기에다 그가 서울보증 사장에 취임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다시 KB금융으로 복귀한다는 점도 무성한 뒷말을 낳았다.
논란 속에 단행된 파격 인선은 속전속결로 마무리될 것처럼 보였다. SGI서울보증보험은 지난 10월 29일 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서 공모절차를 논의한 후 5명의 후보 중 4명을 추렸고, 기획재정부 출신 최종구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이 후임 사장으로 낙점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부원장은 곧바로 이어진 퇴직공직자취업심사에서 ‘취업승인’ 결정을 받는 등 후속절차도 속속 진행됐다.
일사천리 같던 서울보증 신임 사장 선정 작업은 막판에 별다른 이유 없이 급제동이 걸렸다. 금융권에 따르면 서울보증 사추위는 지난 11월 20일 사장 후보들과 최종 면담을 가졌지만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채 해산했다. 이어 20일 만인 지난 12월 9일 다시 사장 후보를 최종 결정하기 위한 회의를 개최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사추위 측은 “후보자 평판조회 등 선임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내놨다. 하지만 금융권에선 이유가 명확하지 않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인선 지연의 배경은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관피아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으면서 기재부 출신인 최 전 부원장 선임에 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계속 관료 출신 인물을 사장으로 선임해오다 김옥찬 사장을 영입하며 처음으로 민간 CEO(최고경영자) 시대를 열었던 서울보증이 1년 만에 관피아 체제로 복귀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관피아 논란만으로는 논리가 빈약하다는 관측도 만만치 않았다. 관피아 논란이 최근에는 잠잠해진 상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융권에서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곧 시작될 2016년 총선 레이스를 염두에 두고 공석으로 비워둔 것일 수 있다는 시각이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총선에 출마할 공직자 사퇴 시한이 1월 중순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총선에 나가기 위해 공직을 내려놓았는데 막상 공천을 받지 못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지 않느냐. 이런 인물들을 달래려면 어떤 식으로든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서울보증보험 사장 자리 정도면 서운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4일 서울보증 사추위가 최종구 전 부원장을 신임 사장 후보로 추천하며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문제는 김옥찬 사장이 새 직장에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옥찬 사장은 지난 10월 19일 KB금융 사장 선임 발표가 난 뒤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퇴임식까지 치렀다. 하지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및 은행법 등의 겸직 규정에 따르면 김옥찬 사장은 서울보증이 후임 사장을 선임할 때까지 KB금융 사장에 취임할 수 없다. 새로운 사장이 부임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릴 때까지 직전 사장이 등기이사로 이름을 올려야 한다는 규정 때문이다.
김옥찬 사장은 현재 국민은행 명동 별관에 따로 사무실을 얻어 업무보고를 받는 등 어정쩡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구 전 부원장이 서울보증의 새 사장 후보로 추천을 받았지만 주총에서 확정되기까지 2주일이 더 걸려 김 사장은 당분간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할 처지다.
김 사장의 취임 지연으로 인한 여파는 윤종규 KB금융 회장에게 튀었다. 김옥찬 사장을 복귀시킨 인물이 윤 회장이니만큼 책임론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KB금융 내분 사태의 여파로 2년 3개월 동안 비워둔 KB금융 사장 자리를 부활시키며 김 사장 영입에 공을 들였다. 당시 윤 회장은 “비은행 부문을 이끌어갈 적임자”라며 김 사장에 대한 기대감을 표했다. 금융권은 윤 회장이 김 사장의 역할을 ‘비은행’으로 규정한 것을 두고 대우증권 인수전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KB금융은 대우증권 인수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한 뒤 김 사장에게 지휘봉을 맡길 예정이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김 사장의 합류가 늦어지면서 임원급 인사가 대우증권 인수 작업을 지휘했다”고 전했다.
게다가 대우증권 인수전에서 KB금융이 고배를 마셨다. 금융권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마감된 대우증권 매각 본입찰에서 미래에셋증권은 2조 4000억 원가량의 인수 가격을 제시, 2조 원이 조금 넘는 가격을 써낸 KB금융을 따돌렸다. KB금융의 제시 가격은 2조 2000억 원가량을 써낸 한국투자증권에도 미치지 못해 대우증권 인수경쟁을 벌인 ‘빅3’ 가운데 가장 낮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KB금융이 정보전에서 밀렸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당초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던 KB금융이 예상 밖의 낮은 가격을 써낸 것은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뜻”이라면서 “인수전을 지휘할 사령탑이 없었다는 것과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