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팥 때문에 ‘입양’ 돈 때문에 ‘파양’ 그런거야?
지난 9월 4일 빚 독촉에 시달리던 A 씨(34)는 신장과 간 등 장기이식 관련 인터넷커뮤니티의 Q&A 게시판에 ‘185 78 35 A형 술 담배 안하고 건강합니다. 대화 후에 결정하실 분만 연락주세요. 010-△△△△△△△입니다’는 내용의 글을 공지했다. 같은 날 오후 4시 8분 ‘신장이 안 좋아 메시지 보냈습니다’라며 한 수혜자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왔다. 신장 이식을 통해 목돈을 챙기려는 기증자 A 씨와 신부전증 치료로 신장 이식이 불가피했던 수혜자 B 씨(61)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A 씨와 B 씨가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 큰 사진은 지난 12월 23일 A 씨가 또 다른 장기 매수자를 찾기 위해 인터넷커뮤니티 카페에 남긴 글.
한 달 동안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주고받던 두 사람은 서울시 은평구 연서로의 한 패스트푸드점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 A 씨는 이 자리에서 B 씨가 신장 이식 수술에 대한 전문적인 정보를 설명하며 국내 병원에서의 이식 수술을 위해 입양을 권유했다고 기억한다. 국내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이식대상자 등록을 해야 하는데, 장기이식대상자 심사 기준에 친족 관계 여부가 포함돼 있어 입양이 필수라는 것. 입양된 지 1년이 지나면 장기이식대상자 심사를 무난히 통과할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고 한다. 또 이식 수술을 받을 서울 소재의 한 대형 종합병원 이식센터에 두 명의 코디네이터를 직접 알고 있어 무리 없이 심사가 통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게다가 국내 수술이 무산될 경우를 대비해 필리핀에서의 해외 원정 이식 수술이 이뤄질 수 있는 차선책까지 설명했다고 한다.
A 씨는 “B 씨는 지난 2014년에 신부전증으로 쓰러져 투석을 받고 있다고 했다”며 “자식들은 모두 결혼해 미국에 거주 중이고, 친누나는 연로해 이식 수술이 불가해 연락을 취하게 됐다고도 말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연락이 닿기 전 3명에게 장기 매매 입양을 권유했으나 모두 가족이 있어 입양 절차가 복잡하다는 이유로 무산됐다고도 했다”며 “B 씨는 자신의 실명을 알려주며 자신이 신경외과 전문의라고 말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첫 만남 직후 A 씨는 인터넷을 통해 B 씨의 이력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B 씨는 서울의 한 유명 병원에서 장기 근속한 신경외과 전문의였으며 현재 한 의료재단 이사장과 경기도 소재의 한 전문병원 대표원장직이었다. A 씨는 B 씨에게 신장 값으로 5000만 원을 제안했고, B 씨는 A 씨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도 한다.
하지만 입양 과정에 대한 B 씨의 설명은 달랐다. A 씨가 먼저 양자가 되고 싶다며 입양해줄 것을 먼저 요구해왔다는 것. B 씨는 “(A 씨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친어머니는 유년 시절 집을 나갔다고 했다. 실제로 2000년대 중반 <꼭 한 번 만나고 싶다>라는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친어머니를 찾았으나 친어머니의 거절로 만남이 성사되지 않았더라. 부모 없이 고아나 다름없이 외롭게 자란 A 씨를 불쌍히 여겨 양부가 되어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장기이식센터와 보건복지부 산하 장기이식관리센터의 장기이식대상자 심사 과정에서 입양자는 심사가 매우 까다로워 굳이 장기 매매를 위해 입양을 권유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A 씨와 어떻게 처음 만나게 된 사이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지난 11월 11일 입양신고서를 구청에 제출하기 위해 서울 소재의 한 구청 앞 카페에서 가진 두 번째 만남에서도 두 사람의 기억은 상반되게 갈렸다. A 씨는 “B 씨가 ‘신장 5000만 원, 골수 2000만 원’ ‘이식 수술 후 파양’ 등의 내용이 담긴 계약서를 내밀며 동의할 것을 권유해 어쩔 수 없이 동의서에 서명했으며 계약서 사본은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B 씨는 “A 씨가 계약서를 빌미로 협박공갈하기 위한 거짓 정보를 흘리는 것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또한 장기 이식을 받기 위해서는 기본 검사로 조직 검사가 이뤄져야 하나, 구청에 입양신청서를 제출하던 날까지도 A 씨에게 조직 검사를 전혀 요구하지 않았다는 게 B 씨의 주장이다. 그렇지만 A 씨는 “전문기관에 문의해보니 의료기술이 발달돼 조직 검사를 받아보지 않더라도 이식 수술이 가능하다더라”며 B 씨의 주장에 반박했다.
두 사람은 입양신고서를 A 씨의 친모 말소등록 확인증과 함께 서울 소재의 한 구청 민원여권과에 제출했다. 그리고 해당 구청의 감독 법원에서 지난 11월 16일자로 두 사람의 입양을 허가했다.
지난 11월 장기밀매단 일당 34명이 검거되는 등 불법 장기 매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영화 <공모자들>의 한 장면.
A 씨는 입양 허가 직후 장기이식대상자 심의를 위한 사전 협의가 이뤄졌다고 주장한다. A 씨에 따르면 ‘인천공항신도시의 한 식당에서 근무하던 A 씨가 미국 출장이 잦은 단골손님 B 씨와 친해져 가정 형편을 털어놓게 됐고, B 씨의 입양 권유에 양자가 됐다’는 내용의 인연 스토리를 모의했다고 한다. 반면 B 씨는 “장기 매매를 위한 입양이라는 주장을 보충하기 위한 거짓일 뿐”이라면서 “입양 허가 직후 (A 씨가) 100만 원을 빌려 달라 하여 돈을 보내줬다.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한다’ ‘자동차 사고로 피해자에게 병원비를 줘야 한다’ 등의 이유로 150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다. 달라는 대로 돈을 주는 게 아버지 된 도리가 아니라고 판단해 좋게 타일렀지만 이번엔 500만 원을 내놓지 않으면 장기 매매 관련 내용을 언론사에 제보하는 것은 물론 형사 고발까지 하겠다며 협박했다”고 토로했다. 반면 A 씨는 “자동차 사고가 나는 바람에 피해자와 합의를 보기 위해 아버지(B 씨)에게 500만 원을 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250만 원은 터무니없는 말”이라고 반박했다.
B 씨는 지난해 12월 21일 경기도 소재의 경찰서 두 곳의 사이버수사대로부터 연락을 받고 A 씨 파양을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실제로 A 씨는 인터넷에서 국가인증시스템을 조작해 문화상품권 판매 사기를 벌인 혐의로 두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B 씨는 경찰을 통해 A 씨가 신용불량자로 휴대전화조차 정지돼 선불폰을 사용해온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B 씨는 “컴퓨터부품 조립회사를 다니던 양아들(A 씨)이 매달 230만 원의 월급이 꼬박꼬박 들어오는데도 빚에 허덕인다고 하니 빚 규모조차 가늠하지 못하겠다”며 “선량한 마음으로 시작된 입양이 결국 한 달 만에 파양까지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A 씨는 “평생 그리워한 친모마저 말소등록을 하고 양자가 됐는데 500만 원 때문에 나를 공갈협박을 하는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다. 아버지의 따뜻한 손길을 느껴보고 싶었는데 결국 양부는 나를 장기 매매 수단으로밖에 여기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A 씨는 B 씨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로 파양을 합의했다. 파양신고서를 제출하기 위해 지난 12월 22일 구청에서 만난 두 사람은 또 한 번 파양을 두고 다툼을 벌이고 말았다. A 씨가 해당 구청 민원여권과 직원에게 신분증을 제출하긴 했으나 파양신고서에 자필 서명을 하지 않았음에도 B 씨는 서류를 접수시켰다. B 씨가 A 씨의 서명을 대신 작성한 것이다. 이에 대해 A 씨는 “서류 접수 직전 파양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직접 서명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반면 B 씨는 “바쁘다 길래 약속한 대로 알아서 했을 뿐이다. 이미 구청에 오기 전에 다 약속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해당 구청 민원여권과 관계자는 “A 씨가 직접 방문해서 신분증을 제출해 신고서를 접수했다”면서 “B 씨가 A 씨의 서명을 허위로 작성했다면 형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A 씨는 지난 12월 23일 B 씨와 인연이 닿은 해당 인터넷커뮤니티에 다시 ‘시간은 좀 걸리지만 국내에서 하실 수 있는 방법 있습니다. 대화 후에 결정하실 분만 연락주세요. 185 78 35 A형 술, 담배 안하고 건강합니다. 카톡아이디 △△△△△△△△△입니다’는 내용의 글을 또 다시 공지했다.
유시혁 기자 evernuri@ilyo.co.kr
장기매매 입양 왜 하나 “친족 관계 아니면 국내 이식 어려워” 질병관리본부 산하 장기이식관리센터의 장기이식현황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 동안 1만 6683건의 장기 이식(신장·간장·안구·췌장·심장·폐장·소장·췌도) 수술이 이뤄졌다. 연도별 현황별로 살펴보면 2010년 2789건, 2011년 3343건, 2012년 3623건, 2013년 3518건, 그리고 2014년 3610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에도 현재(12월 24일 기준)까지 3700건의 장기 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장기 매매 시장에서 가장 많이 거래되는 신장 이식 수술은 전체 8개 항목 가운데 절반 수준인 49.07%(8284건)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간장과 심장은 각각 35.6%(6010건), 3.1%(523건) 순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장기 매매 시장에서 신장, 간장, 심장 등 주요 장기는 얼마에 거래되고 있는 것일까. 장기이식의료기관 관계자는 “장기 매매 가격은 수혜자의 재산 능력에 따라 다르겠으나 부르는 게 값”이라며 “자산가들은 장기를 받는 대신 빌딩을 기증자에게 제공해준다더라”고 설명했다. 반면 장기 매매를 시도했던 A 씨는 “신장을 주는 조건으로 5000만 원을 받기로 했었다”며 “어떤 사람은 1억 원 기준으로 가격을 조율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한편 해외 의학 전문 사이트인 ‘메디컬트랜스크립션’이 공개한 국제 암시장 장기 매매 가격을 살펴보면 신장은 가장 높은 가격인 2억 9560만 원, 간장은 1억 7000만 원, 심장은 1억 3420만 원 등으로 거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기이식의료기관과 장기이식관리센터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장기 이식 수술을 받을 경우 친족 관계가 아니라면 수술이 이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수혜자가 제3자를 입양한 지 1년이 넘을 경우에는 드물게 장기 이식 수술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인터넷커뮤니티 카페를 통해 기증자와 수혜자 간의 장기 매매 입양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기사 본문에서 언급한 A 씨와 B 씨도 장기 매매를 위한 입양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례다. [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