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영일(왼쪽), 이상윤 | ||
‘차범근 황태자’로 불린 최영일, 장대일, ‘팽이’ 이상윤, 그리고 ‘적토마’ 고정운…. 이들 98월드컵 대표팀의 키플레이어들은 여전히 그라운드를 떠나지 못한 채 지도자 또는 재기 선수로 생활하고 있지만 월드컵 이후 각자가 겪고 느끼고 인내했던 시행착오들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2002월드컵 스타들을 향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에서 잠시 벗어나 98프랑스월드컵 때 국민의 함성과 환호를 자아내게 했던 주인공들의 과거와 현실을 살펴본다.
최영일. 절묘한 반칙과 노련한 수 읽기를 바탕으로 ‘스트라이커 킬러’로서 인기몰이를 한 파이터 수비수다. 당시만 해도 거칠 것 없이 탄탄대로를 달리던 최영일이었지만 99년 이국 땅에서 첫 시련을 맞으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10년간의 프로 생활을 청산하고 중국 프로리그(갑A) 랴오닝 푸순에 진출했으나 시즌 막판 감독과 불화를 겪고 끝내 보따리를 싸야 했던 것.
쓸쓸히 한국으로 돌아온 최영일은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안양에서 새 출발을 다짐했으나 의욕만큼 플레이가 되지 않았다. 우선 자기 자신의 실력과 체력에 한계를 느끼고 만 것. 자신의 장기인 맨투맨 마크가 더 이상 설 곳이 없다는 판단에서 세 경기를 뛴 뒤 스스로 축구화를 벗었다.
현재 최영일은 해체설까지 흘러나왔던 동아대를 2000년부터 맡아 지난해 추계연맹전 준우승까지 일궈내는 등 지도자로서 명성을 쌓는 중이다. 하지만 선수 생활을 화려하게 끝맺지 못한 한이 두고두고 응어리져 풀리지 않는다고 한다.
93∼95년 일화 3연패의 주역인 98월드컵 대표 출신인 ‘팽이’ 이상윤도 월드컵 이후 온갖 풍파를 겪어야 했다. 월드컵 본선에서 멕시코전을 30분 앞두고 워밍업 도중 김태영(전남)의 킥을 얼굴에 맞고 실신한 탓에 그 경기에서 죽을 쑤며 국내 팬들의 원성을 샀고, 99년 초에는 프랑스 로리앙에 진출했으나 6개월 만에 되돌아오는 아픔을 겪었다.
뜻하지 않은 트레이드도 당했다. 2000년 성남에서 13골을 터뜨리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올렸으나 팀은 예상을 깨고 그를 방출했다. 영원한 ‘일화맨’으로 남으려는 소망이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다.
재기의 칼날을 간 곳은 부천. 하지만 또 다시 사고가 터졌다. 2001년 2월 시즌을 불과 한 달여 앞두고 KBS <슈퍼 토요일> ‘출발 드림팀’ 코너에 출연했다가 왼쪽 팔꿈치 골절상을 입고 만 것. 마지막 승부수를 건 그에겐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시즌 종료 후 연봉 협상 과정에서 그는 또 한 번 실망했다. 구단이 기존 연봉의 50%에 해당하는 액수를 제시했던 것.
다른 구단을 노크했지만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않았다. 중국으로 눈을 돌렸다. 다행히 2부격인 갑B 리그의 모 구단으로의 이적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상하리만큼 ‘장애물’이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팽이’라는 별명처럼 또 다시 돌아야 하는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중국축구협회가 2002년 1년간은 1부, 2부 팀 간 업다운 제도를 시행하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영입을 약속한 구단이 이상윤과의 계약 포기를 선언한 것.
이상윤은 지난해 6월부터 차범근 축구교실 코치로 활동중이다. 부산 청룡기 중·고 축구대회에서는 해설가로 데뷔해 특유의 말솜씨를 자랑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라운드의 잔디 냄새가 그립다고 한다.
▲ 장대일(왼쪽), 고정운 | ||
“프랑스월드컵 이후 내 자신이 너무 해이해졌다. 경기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컨디션 또한 엉망이었다. 2000년 6월부터는 아예 운동을 접고 6개월간 방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고민 끝에 은퇴하려 했는데 가족들이 필사적으로 뜯어말렸다.”
가족의 사랑이 힘이 됐는지 올 시즌 장대일은 예전의 기량을 어느 정도 회복하며 부산 수비의 선봉장으로 맹활약중이다.
올 9월 선문대 감독으로 정식 부임하는 90년대 최고 왼쪽 공격수 고정운. 그도 은퇴 후 시련의 나날을 보냈다. 프로팀 코치 자리가 나기만을 기다렸지만 이 또한 현실의 벽에 부딪혀 실패를 거듭했다. 특히 지난해 대전에서 코치 영입 의사를 보여 내심 쾌재를 불렀다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몇 달간 쓰린 속을 주체하지 못했다고.
고정운은 “은퇴 후 코치 자리를 보장받는 선수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수요는 적고 공급이 많아 프로팀 코치 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나 마찬가지”라면서 “요즘엔 전남 코치로 가 있는 (황)선홍이가 제일 부럽다”고 말한다.
유재영 월간축구 베스트일레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