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2월드컵 이후 조기축구회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웃지 못할 일들 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두 축구동호회간의 경기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2002월드컵 4강신화를 이룬 지 1년. 아침마다 각 동네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쫓아 땀을 흘리는 동호인팀, 즉 조기축구회 회원들이 부쩍 늘어났다. 현재 서울시 국민생활체육축구연합회에 등록된 팀만도 4백여 개에 이른다. 비등록팀까지 합치면 서울에서만 1천여 개를 넘어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조기축구회 열기가 달아오르면서 웃지 못할 일들도 벌어지고 있다는데…. 상상을 초월한 조기축구회 관련 해프닝을 추적해봤다.
지난달 21일 새벽 강남에 위치한 K 고교 운동장.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학교 운동장에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30여 명의 건장한 청년들. 그들은 곧바로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축구화를 신은 뒤 축구 경기를 시작했다.
전 후반 25분씩으로 치러진 경기가 끝나자 청년들은 다시 조용히 학교를 빠져나갔다.
이날 경기는 강남의 두 조직폭력배들이 친선 경기를 가진 것. 경기에 참가했던 강남 신흥폭력조직 D파 행동대원 김아무개씨(24)는 “월드컵 직후 ‘식구’들끼리 팀을 만들었다. 운동을 통해 체력단련도 하고, 단결력도 기르기 위한 것”이라며 “가끔씩 인근 팀과 친선경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이들 조직폭력배들의 축구경기는 소위 ‘군대 축구’와 비슷하다. 신참들이 열심히 뛰지 않거나, 라이벌 조직과의 경기에서 패할 경우 ‘얼차려’가 펼쳐진다. 또 조직의 ‘큰형님’은 직접 경기에 나서진 않고 지켜보기만 한다. 부하들과 함께 축구공을 쫓기에는 자존심과 체면이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같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축구동호인들의 모임인 조기축구회는 여전히 순수하게 축구를 즐기는 모임이 대다수이지만 일부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
강남의 유흥업소도 예외는 아니다. 현재 강남 유흥업소 사장들이 주축이 된 조기축구팀이 10여 개에 이른다. 이들은 같은 지역 업소들끼리 팀을 구성, 경기를 치르고 있다. 일부 유흥업소 중심 조기축구팀은 승리를 위해 축구 실력이 뛰어난 종업원을 스카우트하기도 한다.
강남역 인근에 위치한 A룸살롱 종업원 P아무개씨(21)는 “일반 조기축구회가 주말을 이용해 경기를 갖는데 비해 우리는 영업이 끝나는 평일 새벽 4~5시에 모여 경기를 한다”며 “보통 인근 유흥업소와 게임을 갖고 사장들이 몇백만원씩 상금을 걸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남뿐 아니라 조기축구회 경기에 거액의 돈이 걸린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액수도 ‘재미’ 수준을 넘어선다. 보통 한 경기당 3백만~5백만원선이다. P씨는 또 “경기에 걸린 돈은 룸살롱이나 단란주점에서 회포를 푸는 데 주로 쓰여진다”고 밝혔다.
이처럼 거액의 돈이 걸리다보니 승부는 더욱 가열된다. 따라서 일부 조기축구회에선 거액이 걸린 경기에는 현역 선수를 ‘스카우트’ 하는 편법을 쓰기도 한다. 주로 친분을 이용해 대학선수 등 현역선수를 조기축구회 회원으로 둔갑시키는 것. 하지만 상대팀도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같은 방법으로 대응하는데 그러다보니 ‘판돈’이 클 경우 팀당 공격수 한 두 명이 현역선수로 채워질 때도 있다.
현역선수들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출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만원의 ‘출전수당’을 받기도 한다. 학생 신분인 선수들에게 쏠쏠한 아르바이트인 셈. 그러나 거액이 걸리다보니 경기가 과열되면서 조커로 출전한 현역선수가 아마추어의 거친 태클에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조기축구회 경기에 여러 번 출전했던 Y씨(24·S대 주전 선수 출신)는 “부상을 당하지 않기Y씨 복면인터뷰 위해 신경을 쓰지만 조기축구회의 경우 워낙 거칠기 때문에 무릎을 다친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조기축구회의 다양한 변신은 경기 장소에서도 감지된다. 일반적으로 조기축구회는 동네의 학교 운동장을 빌리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강 둔치 등의 유료 잔디구장이나 효창운동장 등 정규 경기장을 활용하는 경우가 급증했다. 특히 경기의 비중이 클수록 정규 경기장이 선호된다.
실제 학생축구의 메카로 불렸던 효창운동장에서는 매일 아침 7시부터 9시까지 조기축구회 대항전이 벌어지고 있다. 효창운동장 관계자는 “올해 말까지 예약이 끝난 상태”라며 “참가선수 1인당 평일에는 2천1백원, 주말에는 2천7백30원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또 “3월부터 10월까지는 정규대회가 펼쳐지기 때문에 아침시간에만 아마추어 팀들이 이용하지만 비시즌에는 낮에도 경기가 펼쳐진다 “고 덧붙였다.
안순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