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백혈병으로 투병중이던 진정필 전 대전고 코치가 유명을 달리했다. 대학 1년 선배이기도 한 진 코치는 학창 시절부터 술 좋아하고 사람 좋기로 남들이 다 알아주던 매우 순박한 사람이었다. 오랜 투병 생활 끝에 갑자기 세상을 등졌기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진 코치는 대학 시절 주량이 너무 엄청나서 별명이 ‘진정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당시 진 코치는 술자리에 꼭 날 불러내곤 했는데 이유는 그나마 내가 제일 오랫동안 버텨주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내가 김두한이나 시라소니 일대기 등의 책을 구입해 읽을 때마다 진 코치한테 “형이 그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최소한 김두한하고 원터치는 쪼갰을 거야”라고 말하곤 했었다. 실제로 싸움 실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야구부 진정필 하면 길에서 마주쳐도 공손하게 인사하고 지나갈 정도였다.
학교 주변의 ‘미아리’나 ‘신설동’ 건달들이 가끔 학교 앞에 놀러와서 술자릴 할 정도니 길게 설명 안해도 짐작할 것이다.
또 의리하면 ‘진의리’다. 특히 후배들을 잘 챙겨주고 많이 살려(?)줬다. 내가 2학년때 술이 한가득돼서 숙소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신 최남수 감독이 그날 마침 숙소를 급습해 선수 전원을 집합시켰다. 당시 난 ‘헬렐레’한 상태로 걸음도 제대로 못걸을 정도였다.
내 상태를 파악한 감독은 “주장, 방망이 가져와”하고 불같이 화를 냈다. 난 술이 확 깨서 “오 마이 갓”을 외치고 있는데 술을 먹지도 않은 진 코치가 나오더니 “감독님, 사실은 병훈이랑 제일 친한 친구이자 저하고도 친한 후배가 교통 사고로 죽는 바람에 제가 달래려고 술을 먹였으니 절 때려주십쇼”하는 게 아닌가. 최 감독은 그게 사실이냐고 나한테 물었고 나는 순간적으로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네”하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최 감독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기운차리라고 위로하기까지 했다.
만약 그날 진 코치 아니었으면 난 최소한 ‘중태’였다. 또 한 번은 숙소 사물함에 담배를 넣어놨는데 그날도 감독이 급습을 해서 담배를 찾아냈다. 당연히 난 감독 앞에 불려가서 죽을 준비를 하고 있는데 또다시 진 코치가 ‘짠’하고 나타나서는 “감독님, 사실은 제가 감독님 올라오시는 걸 보고 겁이 나서 병훈이 사물함에 담배를 넣어뒀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이건 술 사건하곤 상황이 달랐다. 실제로 담배 피우다 감독한테 걸려서 ‘짤린’ 선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진 코치가 자기 술 파트너를 위해 총대를 맨 것이다. 난 지켜볼 수가 없어 내 담배라는 걸 이실직고했고 내 고백을 들은 최 감독은 우릴 번갈아 쳐다보더니 귀싸대기를 때리고는 나가 버렸다.
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격해서 진 코치한테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날 저녁 학교 앞에서 소주를 마시며 “왜 그랬느냐”며 진 코치한테 물어봤다. 진 코치 왈, “병훈아, 우리 집이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감독님이 날 짜를 수가 없어. 전에도 한 번 날 짜르면 자살한다고 했거든.”
정필이 형, 당신이 그립습니다. 그리고 삼가 명복을 빕니다.
SBS 해설위원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