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삼성생명농구단을 찾은 유재영 기자가 체육관에서 새내기 김선혜의 도움으로 스트레칭 을 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럭셔리한 목욕 타월에 몸을 맡긴 뒤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연출하기를 수차례. 담배, 삼겹살 냄새가 찌든 셔츠에 생일 선물로 받은 향수 한 통을 다 쏟다시피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15명의 아리따운 ‘비추미’들의 보금자리인 삼성생명 여자 농구 선수단 숙소로 출발할 수 있었다.
지하철 3호선 교대역에서 내린 후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서초동 주택가를 헤맨 지 30분 만에 삼성생명 숙소 건물을 발견했다. 시간은 해가 중천으로 향하는 10시30분.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심정으로 한달음에 숙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에잉?’ 한참을 두리번거렸으나 ‘미녀’들이 보이지 않았다. 수위 아저씨에게 확인해 보니 오늘 삼성생명 선수들은 숙소 오른편에 위치한 체육관에서 2003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표팀과 연습 경기를 갖는다고 한다.
여자 선수들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마주서 본 느낌은 한마디로 ‘크다’는 것. 기자도 남자로선 작은 키가 아닌 180cm. 하지만 체육관에 들어서는 순간 두 손으로 몸을 가리고 말았다. 180cm가 넘는 선수는 박정은, 변연하를 비롯해 8명. 최단신인 김영화(164cm)를 제외하면 174cm인 주전 가드 이미선이 가장 작은 셈. 190cm 김계령이 다가올 때는 그녀의 품에 안겨 초콜릿 광고를 찍고 싶은 ‘충동’이 엄습했다.
2003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에서 파죽의 10연승(8월3일 현재)을 질주하며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막강 삼성생명은 연습경기에서도 절대 틈을 주지 않은 채 팀 전술과 조직력을 점검했다.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외침이 범벅이 돼 체육관 내에 울려 퍼진다.
몸싸움이 예상외로 치열하다. 팔꿈치에 찍혀 입술이 터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돌아’, ‘나와’. 팔짱을 낀 채 선수들을 독려하는 정미라 코치와 유니버시아드 대표팀 조문주 감독의 카리스마 넘친 호통 소리도 유난히 매섭게 들린다. ‘이렇게 살벌한 분위기인 줄 알았더라면 청심환이라도 먹고 올 걸.’
오전 훈련을 마치고 체육관을 나선 선수들은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금남의 집’ 출입이 부담스러워 숙소 앞마당에서 머뭇거리던 기자를 본 박정은이 ‘구원자’로 나섰다. 박인규 감독과 이기석 트레이너를 제외하고 외부 남자로서 최초로 삼성생명 선수단 숙소에 입성하는 영광을 맞이한 그 순간 무릎을 꿇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점심 시간. 식당 주방에서는 7년째 선수단의 입맛을 책임지는 두 아주머니의 손길이 무척이나 바쁘다. 새내기들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식탁에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예쁜 컵에 우유와 물을 담아 놓았다. 으레 식당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남자선수단과는 자못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밥값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방에 들어가니 아주머니들이 귀한 손님이라며 식당 안쪽으로 손을 잡아끈다. 며느리 삼고 싶은 선수가 있냐고 물으니 “다 좋아요”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한 아주머니는 “선수들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개고기를 먹기도 했어요”라며 기자의 귀에다 특종(?)을 선물하기도 했다. 그러나 “누가 가장 잘 먹죠?”라는 기자의 유도 심문에 아주머니는 “노 코멘트”라며 어느새 ‘원위치’로 돌아갔다.
진수성찬이다. 메뉴는 고등어조림과 콩나물, 배추김치, 계란말이와 어묵찌개다. 여기에 요구르트로 드레싱한 야채 샐러드와 매콤한 떡볶이까지 그야말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 햄버그스테이크와 달콤한 소스가 뿌려진 흰 가래떡은 연습 도중 발목을 다쳐 병원에 다녀온 벨기에 용병 안 바우터스의 점심 메뉴.
처음 본 남자가 떡 버티고 있으니 꽤 어색한 모양이다. 이성 친구에 대한 이야기로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역시나 박정은, 이미선, 변연하 등 20대 중반 고참들이 귀를 쫑긋 세운다. 박정은을 제외하고는 남자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털어놓는다. 숙소 생활을 하다보니 인연을 만나기가 힘들다는 게 공통된 하소연. 자연스럽게 소개팅을 해달라는 ‘압력’이 들어온다.
식사를 마친 뒤 사전 허락을 받고 변연하의 방을 급습(?)했다. 여느 여성들의 방과 다를 바 없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팬들이 보내준 각종 인형과 그림 액자 등이 방안 가득하다.
변연하의 동주여상 4년 후배인 (이)옥경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묘한 분위기를 느꼈는지 방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문이 열린 틈을 타 옆방에 박정은까지 “아직까지 방에 있어”라며 눈을 흘긴다. ‘작업’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 기자가 김아름(왼쪽) 김선혜 선수와 드리블을 연습하고 있 다. 방어선을 뚫을 수 있을까. | ||
오후 2시40분 변연하, 김계령과 함께 체육관을 찾았다. 경기 도중 팔꿈치를 다친 김계령은 컨디션 회복차, 3점 슈터인 변연하는 슈팅 연습을 위해서라고 한다.
변연하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하루에 2백∼3백 개 정도의 슛 연습을 한다는데 쏘는 대로 백발백중이다. 아무리 수비를 앞에 두지 않고 쏘는 슛이지만 눈을 의심할 정도로 성공률이 높다.
몸이 근질근질해지면서 김계령과 변연하에게 각각 1 대 1 대결을 제안했다. 고교와 대학 때 농구 동아리 주장으로 활동한 바 있어 자신 있게 도전장을 내밀고 맞대결을 벌인 기자는 결국 타는 듯한 갈증만 느끼다 코트에 주저앉고 말았다.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골수 팬들이 ‘비추미’들을 위해 ‘위문 공연’을 왔다. 언제나 한 손에 언니들의 입을 즐겁게 해줄 도너츠를, 다른 한 손에는 눈과 귀를 즐겁게 해줄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온다고 한다. 서초동 숙소 여기저기서 ‘꺄르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땀과 눈물이 진하게 배어 있는 농구 코트에서 나름대로의 생존 경쟁을 펼치고 있는 ‘비추미’들이었지만 코트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분명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삼성생명 농구단을 취재하면서 느낀 점 한 가지! 얼굴 예쁜 선수가 농구도 잘한다는 사실, 아니 농구 열심히 하는 선수가 예뻐 보인다는 사실이다.
유재영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