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혁(삼성) - 만세타법 | ||
엉성한(?) 타격폼을 갖고도 호쾌한 장타와 날카로운 안타를 누구보다도 잘 쳐내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도리어 이렇게 외친다. “야구에 ‘폼생폼사’란 없다. 공을 잘 칠 수 있는 자세가 바로 최고의 폼”이라고.
분명한 사실은 이들이 지닌 독특한 폼이 보는 이들에게는 ‘비정상적’일 수 있지만 정작 선수들에게는 가장 ‘편하고 이상적인’ 자세라는 것. 이름난 타자들의 튀는 타격폼에 얽힌 비밀을 들여다봤다.
현역 시절 강타자로 명성이 높았던 야마우치 일본 롯데 감독은 지난 83년 윤동균 선수(당시 OB)의 엉성한 타격폼을 처음 보고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2할8푼 이상은 꾸준하게 유지한다는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타격 폼을 그대로 인정했다.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타자, 장훈도 휘하 선수들의 타율에는 관심이 있었지만 타격폼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이렇듯 일본 프로야구의 강타자 출신들은 공통적으로 타격폼에는 ‘여유’가 있었다. 프로야구 선수라면 이미 자신에게 맞는 타격폼에 길들여진 상태이기 때문에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반듯한 자세로 고치는 것이 불가능하거니와 선수 자신에게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타자와 투수의 승부는 한마디로 시간과 공간의 싸움, 즉 타이밍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타자들의 타격폼은 각양각색이지만 공통적으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바로 ‘배팅 포인트’를 맞추는 것. 결국 각자의 타격자세는 선수들의 체형과 자세에 따라서 베팅 포인트를 맞추려는 움직임이 머리, 손, 발, 엉덩이, 방망이 등으로 전이되어 표출되는 셈이다.
▶만세타법
현역 선수 가운데 가장 ‘자세 안 나오는’ 선수로는 당연히 양준혁(삼성)이 꼽힌다. 투수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것까지는 좋은데 방망이를 높이 쳐든 자세가 건들건들하다 보니 불량스럽게(?) 보이기까지 한다.
‘양준혁’식 타격폼의 백미는 뭐니뭐니 해도 스윙을 하고 나서 만세를 부르듯 두 팔을 번쩍 쳐드는 것(일부에서는 체조선수의 착지동작에 비유하기도 한다). 양준혁은 올해 타격폼을 바꿔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다. 9년 연속 3할대를 때려내다 지난해 실패한 이후 자세를 고쳐 현재 3할4푼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 박정태 - 흐느적 타법 | ||
▶흐느적타법
90년대 부산지역 야구 꿈나무들의 폼을 모두 바꿔버릴 정도로 문제(?)를 야기했던 주인공, 박정태의 타법이다. 롯데의 4번타자로 활약했던 호세가 한국에 와서 가장 놀란 것이 바로 박정태의 타격폼이었고 그 다음이 그런 자세로 3할대를 유지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사실 ‘탱크’라는 별명을 무색하게 할 정도로 박정태의 자세는 어수선함을 넘어 ‘안절부절’에 가깝다. 타석에 들어서면 왼손은 아래로 늘어뜨리고 배트를 잡았다 놓았다 하며, 동시에 왼발이 상하좌우로 어지럽게 스텝을 밟기 때문이다.
박정태는 “프로 2년차가 되면서 이런 자세가 무의식적으로 나왔다. 리듬감을 살려 배팅 포인트를 맞춘다는 것이 지금의 자세로 고정됐다”고 밝혔다.
▲ 박용택(LG) - 외다리 타법 | ||
제대로 맞으면 상당한 파워를 기대할 수 있지만, 타이밍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다면 헛스윙하기 딱 좋은 폼이다.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이치로(시애틀)는 이 타격폼에서 들어올린 다리를 시계추처럼 흔들며 타이밍을 맞추는 ‘시계추타법’으로 응용하기도 했다.
극내에선 장성호(기아)와 박용택(LG), 정성훈(현대)이 대표격인데 장성호는 “다리를 올리면 불안해 보일지 몰라도 집중력은 더 높아진다”며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다리를 계속 고집할 뜻을 내비쳤다. 이승엽(삼성) 또한 이 타법으로 홈런왕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무심타법 가장한 까딱까딱타법
심정수(현대)와 김동주(두산)의 스윙은 말 그대로 ‘파워 스윙’이다. 두 선수 모두 묵직한 중량감 때문에 타석에서는 마치 말을 탄 듯한 기마자세를 취한 뒤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발끝에서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존재한다. 배팅 포인트를 찾기 위해 마운드를 향해 있는 발을 쉴 새 없이 까딱까딱 거리는 것.
심정수는 “예전에는 말 그대로 부동의 기마자세로 안정감은 있어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올 시즌 약간의 변화로 성적이 더 잘 나오고 있으니 좋은 일 아니겠냐”며 만족감을 나타냈다.
한편 안경현(두산)은 투수가 공을 던지기 직전, 엉덩이를 두 번 ‘실룩실룩’ 흔들며 마지막 호흡을 가다듬는 버릇이 있는데 “타석에서 몸이 돌아가지 않게 하기 위해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일 뿐 의도적인 연출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