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박정희 대통령. 우리 국민에게 있어서 그는 애증의 존재다. 아마도 이 인물처럼 명과 암이 뚜렷했던 이가 또 있었을까. 무엇보다 그는 개헌 이래 가장 강력한 헌법적 지휘를 누린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긴급조치’는 박정희 대통령의 당시 우월한 헌법적 지휘를 가장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다. 한편으론 반민주 행태의 상징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42년 전 오늘인 1974년 1월 8일, 박정희 대통령은 ‘긴급조치 1호’를 공포했다.
이는 1972년 선포한 ‘유신헌법’ 제53조(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가 중대한 위협을 받거나 받을 우려가 있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에 규정된 사안이다.
1974년 1월 8일, 공포한 ‘긴급조치 1호’의 세부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③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④ 전 1, 2, 3호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⑥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
⑦ 이 조치는 1974년 1월 8일 17시부터 시행한다.
실제 긴급조치 위반자도 발생했다. 이 당시 장준하 선생과 김지하 시인은 긴급조치 1호 위반혐의로 각각 징역 15년의 중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긴급조치를 통해 재판에 기소된 사례만 589건에 달했다. 음주 및 수업중 대통령 비판, 유신반대, 간첩사건 등 종류도 각양각색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재임시 ‘긴급조치 1호’를 비롯해 모두 아홉 차례의 긴급조치를 공포했다.
‘긴급조치’ 규정은 박정희 대통령의 하야와 함께 막을 내린다. 박 대통령 하야 이듬해 개정을 통해 ‘긴급조치’ 규정은 삭제됐다. 2010년 대법원은 ‘긴급조치 1호’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우리 헌법사의 어두운 단면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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