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표형네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왔어요. 자주 가냐고요? 신혼집인데 어떻게 제 마음대로 가겠어요. 형수님(이영표의 아내)이 불러주시면 콧노래 흥얼거리며 달려가는 거죠. 음식 맛도 좋지만 서로 어울려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분 좋아요.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혼자 먹으면 영 맛이 안 나거든요.
오늘은 ‘스포츠 스타의 빛과 그림자’라는 다소 거창한 주제로 일기를 써볼까 해요. 스포츠 스타로 살면서 ‘빛’을 느낀다면 많은 축구팬들이 박지성이란 선수를 좋아해 주고 열렬한 응원을 보내준다는 사실이죠. 반면 ‘그림자’라고 하면 가끔 절 축구선수가 아닌 남자로 대하는 여자분들을 만날 때예요. 전 성격상 그런 반응을 접할 때마다 당황하거나 쑥스러워지거든요.
운동선수는 경기장에서, 연예인은 카메라나 무대 위에서 제일 좋은 ‘플레이’를 선보일 때 팬들의 사랑을 받는 거잖아요. 제가 만약 축구를 포기하고 다른 일을 한다면 절 선수로 좋아하든, 남자로 좋아하든, 그 팬들이 계속해서 절 좋아해 줄까요? 남자 박지성이 아닌(사실 별로 잘생긴 얼굴도 아니고 유머가 많은 것도 아니고 정말 남자로만 평가한다면 그리 후한 점수를 못받을 것 같네요) 축구선수 박지성으로 좋아해줬으면 고맙겠어요.
제 일기 담당 기자 누나가 한 얘기인데 이번에 21연승으로 세계 최다 선발승을 차지한 정민태 선수의 배우자 조건이 ‘매니큐어도 안 칠하고 전화하면 항상 집에 있고 긴 치마만 입는 정숙한 여자’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물었어요. 그분 결혼하셨냐고. 세상에 그런 여자분이 있나봐요. 만약 제가 결혼할 때쯤 그런 조건을 내세우면서 배우자를 찾는다면 이상한 소리 많이 들을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 현모양처형의 여자가 있으면 당장 결혼할 것 같아요.
요즘 저의 고민 중 하나가 오른쪽 무릎에서 여전히 빠질 줄 모르는 ‘물’입니다. 의사 말에 따르면 저절로 빠질 때까지 지켜봐야 한다는데 아직 통증은 없지만 눈에 보이고 만지면 물컹거리는 그 부분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에요. 마치 비닐 봉지에 물이 차 있는 것처럼 보이거든요. 오른쪽 다리가, 멀쩡한 왼쪽 다리처럼 물도 다 빠지고 온전하게 될 날은 과연 언제일까요.
무더운 여름도 지나고 지금 이곳은 언제 여름이 있었냐는 듯 을씨년스럽게 추워요. 곧 추석일 텐데 몇 년 동안 외국에서만 생활하다보니 사실 추석에 뭐하고 지내는지조차 잊어버렸어요. 보름달이 뜨면 달 보면서 소원 비는 거 아닌가요? 하여튼 민속명절인 만큼 즐겁고 화목하게 보내시길 바라고요, 남는 송편 있으면 지성이한테도 좀 보내주시고 그러세요. 여기선 송편 구경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나 마찬가지니까요. 9월5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