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룰로는 이기고 중국룰로는 패해
몽백합배 결승전 최종국이 끝난 직후 커제(오른쪽)에게 반 집을 진 이세돌(왼쪽)이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실 12월 30일 시작된 이 결승5번기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었다. 이세돌이 결승에 올랐지만 솔직히 이길 것 같지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18세 커제는 직전 열린 삼성화재배 결승전에서 자국의 스웨를 2-0으로 완파하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으며, 준결승전에서는 이세돌을 역시 2-0으로 완파했었다. 특히 이세돌 9단의 바둑 내용이 좋지 않은 것이 마음에 걸렸다. 뿐만 아니라 결승전을 며칠 앞두고 열렸던 금용성배 예선에서도 이세돌은 커제를 다시 만나 이 역시 지고 말았다. 한 달 사이 커제에게만 3연패.
커제는 인터뷰에서도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였다. “이세돌보다는 삼성화재배 결승 상대였던 스웨 9단이 센 것 같다”거나 “내가 결승전에서 이길 확률은 95%, 이세돌은 5%”라는 등 이세돌을 마구 흔들어댔다. 이에 대해 이세돌은 침묵했다. 고작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 것, 나중에 중국에서 대답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까마득한 후배지만 아직 한 번도 커제를 이겨보지 못했으니까.
그랬는데 결승1국을 이세돌이 승리하면서 흐름이 확 바뀌고 말았다. 2국도 이세돌이 절대 유리했지만 아쉽게 내주고 말았고 3국은 커제, 4국은 이세돌이 나눠가진 가운데 최종국을 맞이한 것이다.
중국랭킹 1위 커제는 백번이 강했다. 결승1국에서 이세돌에게 백으로 패하기 전까지 백번 34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맞은 결승5국. 이세돌의 백이다. 중국룰은 덤이 크기 때문에 누가 백을 잡느냐가 관심사였는데 커제가 돌을 두 개 올려놓았고 맞추면서 흑을 들게 되었다.
<1도> 백1의 지킴이 실전인데 누가 봐도 이세돌답지 않은 옹졸한(?) 수. 너무 웅크렸다. 덤이 7집반이기 때문에 단단하게 지켜두고 후반을 기약하겠다는 심산이 읽힌다. 하지만 국가대표실 신예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다. 이세돌 9단의 제자 신민준 3단도 머리를 갸우뚱한다. “흑이 2로 상변을 지키자 갑자기 7로 끊는 강수를 들고 나왔는데 뭔가 강약이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상변은 상변대로 흑집으로 굳어졌고 삭감하러 들어간 백7~13이 엷어서 부담스러워졌어요.”
그러므로 백은 <2도> 백1로 뛰는 게 좋았다. 우변의 품을 넓히면서 상변 흑모양을 견제하는 수. “이랬으면 흑은 상변을 키울 수 없고 우변 백모양을 깨는 전혀 다른 바둑이 되었을 겁니다.”(신민준 3단)
이후 ‘희망이 없다’고 사실상 사망 선고를 받은 이세돌이었지만 종반 끝내기 단계에서 무서운 뒷심을 발휘, 반집승부로 따라붙는다. 하지만 <3도> 백1이 마지막 희망을 놓쳐버린 수. 흑2는 백3과 교환돼 손해였지만 그래도 백은 반집이 부족했다. 백1로는 4의 곳에 두고 그래도 흑이 2로 손해를 봐준다면 백이 반집을 남길 수 있었다. 이것이 백이 이길 수 있는 마지막 코스였다.
마지막에 해프닝이 있었다. <4도> 흑1의 이음을 마지막으로 계가에 들어가는 것이 한국식 계가방법. 이것으로 이세돌의 극적인 반집승이라는 게 국내 인터넷 바둑 사이트 해설자들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커제가 흑1이 아니라 a의 마지막 공배를 차지하고 1의 곳을 반패로 버티자 일제히 얼굴이 사색이 된다.
중국룰의 맹점을 깜빡했던 것. 바둑판에 놓인 돌과 관계없이 집수만을 따지는 한국룰(일본도 마찬가지다)과는 달리 중국식 계가법은 바둑판 위에 놓인 돌의 개수와 집수를 같이 세기 때문에 공배를 차지하는 것도 한집이 된다. 이 바둑은 커제가 마지막 공배를 메우고 최후의 반패도 흑이 팻감이 많아, 결국 흑이 두 곳을 동시에 차지하게 되면서 흑의 반집승이 확정되고 말았다. 이세돌로서는 뼈아픈 반집 패배. 지난 2012년 삼성화재배 우승 이후 3년 만에 다시 세계 정상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깝게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대국이 끝난 후 인터넷 게시판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30개국도 아니고 고작 3~4개국이 세계대회의 전부인데 이마저도 룰이 달라 한국식 계가는 이세돌이 이기고, 중국식 계가는 커제가 이긴다는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라는.
옳은 지적이다. 한중일은 바둑에 대한 명칭부터 바둑용어, 바둑규칙 등 어느 것 하나 합의를 이룬 적이 없다. 바둑의 세계화를 위해서는 룰부터 통일시켜야 한다.
유경춘 객원기자
양천대일바둑도장 100단 돌파 화제 ‘입단자 중 반은 여기서 나온다’ 프로기사의 산실인 ‘양천대일바둑도장’(양천대일)이 지난해 12월, 31번째 프로기사를 배출함으로써 프로기사 100단을 돌파하는 위업을 쌓았다. 31번째 프로기사는 이어덕둥 군(19)으로 2012년 양천대일에 입문해 치열하게 실력을 쌓은 후 내신으로 입단에 성공했다. 1999년 9월 개원한 양천대일은 명불허전 ‘명문 도장’으로 꼽힌다. 프로기사 100단 돌파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양천대일은 지난 2002년 첫 프로기사로 김은선 프로(4단)를 배출했다. 개업 3년 만에 이룬 업적이라 감회가 남달랐다. 그러나 이후로 4년 동안 단 한 명의 입단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양천대일 김희용 원장은 당시가 최대 위기였다고 회고한다. 김 원장은 “2002년이 월드컵이 있던 해라 더 기억이 난다. 당시 똑똑한 아이들이 줄줄이 다른 도장으로 빠져나갔다. 13명 정도 됐을 거다. ‘내가 할 것이 아닌가 보다’라는 생각도 들었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어둠 끝에 빛은 있었다. 2006년 당시 중학교 2학년인 김승재가 드디어 입단에 성공한 것이다. 김승재 입단 후 2007년에는 강유택과 김윤영이, 2008년에는 안형준, 한웅규, 이호범, 안성준이 줄줄이 입단했다. 한 번 탄력을 받으니 봇물이 터지듯 입단이 쏟아진 셈이다. 연간 프로기사 입단자 중에서 반은 양천대일 출신이라는 얘기가 이때부터 나왔다. 현재까지 1년에 3명 정도의 프로기사는 꾸준히 배출하고 있다. 발군의 실력을 갖춘 유망주들도 적지 않다. 양천대일은 ‘스파르타식’ 교육으로도 유명하다. 양천대일식 스파르타 교육은 단순히 엄하다는 것을 벗어나 체력적인 강인함을 키워준다는 데서 비롯됐다.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집중력이 강해진다는 신념 때문이다. 양천대일 문하생들은 일주일에 최소 2~3일은 뜀박질을 한다. 11km를 한 시간 안에 들어와야 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대부분의 문하생들이 통과를 한다고 한다. 김 원장은 “달리기는 도장을 시작하면서부터 늘 해왔던 것이다. 매일 아이들에게 사활 문제를 풀게 하고 시험도 본다. 문제를 틀리는 개수에 따라 팔굽혀펴기를 할 때도 있다”라고 전했다. 양천대일의 프로기사 100단 돌파까지 김 원장은 부인 이분옥 씨의 공을 빼놓지 않는다. 이 씨는 양천대일이 문을 열기 시작했을 때부터 문하생들에게 삼시세끼 밥을 챙겨주며 내조를 해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