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선수 중에도 불쌍한 사람이 꼭 있다. 만원 관중 앞에서 중요한 찬스때 투수 앞 땅볼 치고 1루까지 뛰어가는 타자. 이때는 1루까지의 거리가 십리만큼 멀게 느껴진다. 멋진 안타 치고 나가 기껏 하이파이브까지 해놓고선 곧바로 투수 견제구에 걸려 죽어 들어올 때, 1루에 있다가 장타가 나왔을 때 홈까지 뛰다 하체가 꼬이는 바람에 중간에 넘어질 때, 그리고 1년에 안타 10개 정도 치는 선수가 모처럼 안타성 타구를 날렸는데 상대 수비수가 기가 막힌 수비를 해서 잡아낼 때도 불쌍해지는 순간이다.
왼손타자 한 명만 잡으라고 내보낸 왼손 투수가 공 1개 던진 것이 역전 홈런이 돼서 마운드를 내려올 때의 얼굴. 또 있다. 엄청난 실수로 인해 팀을 연패에 빠트린 선수가 숙소에 가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감독과 단 둘이 있는 상황. 이때는 다음 층에서 타주시는 분이 정말 고맙다.
이런 몇 가지 상황들은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당사자들은 무지 ‘쪽팔린다’. 이걸 쓰다보니까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전 해태 투수코치 방수원씨다. 방 코치는 프로야구 ‘5대 추남’ 초대회장(?)이다. 그런데 얼굴은 ‘측은’하지만 모든 선수들한테 존경받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였다.
해태 시절 때의 일이다. 당시 2군의 A감독과 방 코치의 인솔하에 전주 원정 경기를 위해 버스로 이동중이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갑자기 A감독이 코치를 포함해서 전원 버스에서 내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영문을 모르는 우리들이 당황해 하자 A감독 왈, 선수들이 차 안에서 잠을 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황당한 일이었다. 야구선수는 눈을 보호하기 위해 차 안에서 신문이나 책을 봐서는 안된다. 잠이 오질 않아도 눈을 감고 있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잠을 잤다고 뛰어가라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리들은 한적한 국도에 내려서 뛰기 시작했는데 방 코치는 화를 내는 대신 선수들한테 “내가 힘이 없어 너희들을 고생시킨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우리들은 자존심이 상했을 방 코치한테 ‘공기 좋은 데서 뛰는 것도 괜찮은 게 아니냐’며 열심히 뛰었다.
그런데 한참을 뛰고 있을 때 방 코치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아뿔싸! 다리에 힘이 빠진 방 코치가 주먹만한 돌을 밟아 발목이 심하게 돌아간 것이었다. 그 무더운 날 우리는 교대로 방 코치를 부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보았던 방 코치의 얼굴은 자존심이 상한 데다 통증이 심해 ‘불쌍함’의 극치를 이뤘다. 그때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멋쟁이 방 코치님, 보고 싶습니다.
야구 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