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 관행 시민들 피해…경찰의 적은 경찰”
장신중 전 강릉경찰서장은 SNS에 경찰인권센터를 운영하며 경찰 내부 개혁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찰조직의 어두운 그늘이 결국 시민들에게까지 드리워진다는 이야기다. 지난 5일 강원도 강릉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신중 전 서장은 곧은 자세와 강렬한 눈매를 가졌고,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오랜 세월 다져온 듯 굳은 신념이 인터뷰 내내 묻어났다.
인터뷰에 앞서 그동안 기자가 만난 일부 지방청 및 일선 경찰서의 경찰관들은 “직원들끼리 경찰 내부의 이야기를 할 때 장 전 서장의 이야기가 단골로 등장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 지방청의 경위는 “그동안 조직 내부의 일이라 쉬쉬했던 민감한 일들이 장 전 서장을 통해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가끔은 통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청의 경감은 “경찰관의 인권과 처우 개선에 대한 이야기에 공감하는 직원들이 점점 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이들이 장 전 서장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곳은 SNS다. 현재 장 전 서장은 SNS에 ‘경찰인권센터’를 만들어 후배 경찰들의 인권 신장에 나서고 있다. 센터는 개설 두 달 만에 회원수가 1만여 명을 넘었다. 이 가운데 90%는 현직 경찰관이다. ‘간부가 행사 자리에 직원들을 강제로 동원한다’는 경찰 조직의 부끄러운 관행에 대한 이야기부터, 경찰 고위 인사의 성추문까지 한 달에 100여 건씩 SNS 메시지나 이메일, 문자 등으로 쏟아진다.
장 전 서장은 이러한 ‘내부 고발’을 하나씩 읽고 현직 때 관계를 쌓은 현장 경찰관들을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그런 뒤 조직 내부의 구조적 문제는 SNS에 글로 쓰고, 개인적인 문제는 직접 찾아가 도움을 주거나 해결 방안 등을 조언해주기도 한다.
장 전 서장은 지난 1982년 29살의 늦은 나이에 순경으로 경찰에 임용됐다. 이후 경찰청 인권보호담당관, 양구경찰서장, 충북청 홍보담당관 등을 역임하며 총경까지 올라 지난 2013년 10월 강릉경찰서장으로 명예 퇴직했다. 그는 31년 동안 경찰 조직에 몸담으며 경찰 조직의 구조적 문제와 경찰대 출신들에 대한 비판, 수사권 조정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에 대해 거침없는 직언을 쏟아냈다. 그는 “현직 시절 사이버경찰청에만 1000여 건의 내부 비판 글을 올렸다. ‘그렇게 싫으면 스스로 떠나라’는 비난과 압력이 따랐지만, 잘못된 것은 고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장 전 서장은 지금도 치열한 논란이 오가는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에서도 중심에 서 있었다. 검찰의 수사지휘를 수차례 거부한 ‘장신중 경정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장 전 서장에 따르면 해당 사건은 지난 2005년 12월 발생했다. 춘천지검 강릉지청에서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던 피의자가 긴급체포 됐는데, 당시 수사검사가 강릉경찰서 형사 당직팀에 전화를 걸어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하라”고 지시했다.
장신중 전 서장의 저서 <경찰의 민낯>.
이후에도 비슷한 일이 계속되자 장 전 서장은 결국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돼 징역 4월에 선고유예를 받았다. 이 문제는 당시에도 민감했던 검·경 수사권 논란과 맞물려 파장을 낳았다. 결국 검찰은 지난 2015년 9월 의뢰입감 관행을 깨고 이 업무를 직접 하기로 했다. 장 전 서장은 “경찰의 수사권 독립은 경찰의 권한을 높여주는 것이 아니라 수사와 기소를 분리해 시민의 인권을 철저히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며 “시민이 경찰과 검찰에 두 번 수사 받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고 말했다.
장 전 서장은 또 ‘경찰의 적은 경찰’이라고 표현했다. 여기서도 시민의 인권을 강조했다. 경찰의 비합리·비효율적인 관행과 내부 문제는 시민들의 피해로 돌아간다는 것. 대표적인 예가 경찰의 ‘성과주의’다. 장 전 서장은 “경찰에게 실적을 강요하면 시민들의 인권이 침해되는 것은 경험적으로 충분히 증명된 명제”라며 “범죄 입건 건수를 늘리기 위해 얼마든지 훈방 가능한 사소한 행위까지 마구잡이로 입건한다. 교통 단속 실적을 요구하면 도로 구조상 중앙선을 넘을 수밖에 없는 곳에 숨어 있다가 단속하는 ‘함정단속’이라든지, 신호 위반을 적발해서 안전띠 미착용으로 단속하는 편법적 행태가 벌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경찰은 이에 대한 시민들의 항의와 불만을 ‘법을 지키면 된다’고 일축해 버린다”고 덧붙였다.
장 전 서장은 “경찰의 노동자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경찰의 노동자성이 인정되면 공무원 중 가장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는 경찰의 고충 해소와 근무 여건이 개선된다는 것. 직무 만족도가 개선되면 대민 서비스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다는 이야기다. 장 전 서장은 “경찰은 직원들에게 ‘시민의 안전을 위해 언제라도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면서 그에 대한 처우는 신경 쓰지 않는다. 사흘에 한 번씩 밤샘 근무를 하는데다 승진은 물론 보수, 수당, 퇴직금, 공사상 보상금 등 전 부문에 걸친 경제적 보상은 다른 기관에 비해 최소한도다. 사명감만으로 감내하기에는 너무 참담하다”고 말했다.
장 전 서장은 “현장 경찰들의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을 위해 경찰인권센터를 사단법인으로 키우고 싶다. 나아가 경찰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져 경찰인권센터의 의미를 흡수해 인권센터가 사라지는 것을 희망한다”고 했다. 일부에선 ‘직장협의회도 없는 경찰 내부에서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주장도 따르지만, 그는 “잘못된 관행을 개선해 시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경찰을 만들자는 데 내부에서 공감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쓴소리를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재임시절부터 퇴직 이후까지 경찰 조직 개혁을 말하며 수뇌부 비리까지 고발한 <경찰의 민낯>이라는 책을 펴냈다. 일부 출판사로부터 출간 거부를 당하기도 했지만 발간 보름 만에 5판 인쇄에 들어갈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장 전 서장은 “현직 경찰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높아 스스로도 놀랐다. 이 책이 경찰 내부의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고 권력의 경찰에서 서비스를 지향하는 시민의 경찰로 되돌리는데 일조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