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에서 생활한 지 벌써 9개월이 지났네요. 이젠 익숙해질 만도 한데 마음대로 되지 않아요. 요즘 저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인터넷입니다. 지난번 군 입대와 피스컵대회 참석차 네덜란드를 떠났다가 인터넷 요금이 연체됐었나봐요. 집에 와 보니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더라고요.
밀린 요금을 지불하고 다시 개통 신청을 한 지 3개월이 다 돼가는데도 아직 감감무소식입니다. 답답해서 전화를 하면 ‘원래 그런 거니까 기다리라’는 대답만 들려올 뿐이에요. (이)영표형이 결혼하기 전에는 형네 집에 가서 ‘인터넷 동냥’을 자주 했었는데 지금은 형수님이 계셔서 인터넷 핑계로 들락거리기가 좀 미안해지더라고요. 한국 소식도 친구들과 전화 통화를 해야 겨우 알 수 있을 정도니….
에인트호벤은 저녁엔 사람의 그림자조차 보기 어려울 만큼 암흑의 도시입니다. 한국(특히 서울)의 밤거리에 익숙한 사람은 여기에서 하루 이틀 견디기도 어려울 겁니다. 어둠이 내리면 마치 모든 게 정지된 듯한 기분이에요. ‘어둠의 도시’에서 정보 부재의 갑갑함을 느끼다보면 마치 저 혼자 무인도에 표류해서 살고 있는 것처럼 착각이 들 때도 있어요.
요즘 전 골에 대해 초연해지기 위해 무척 노력중입니다. 골에 집착하다보면 게임이 더 안 풀린다는 걸 느꼈기 때문에 득점에 대한 부담을 떨쳐내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어요. 그동안 저한테 익숙한 포지션은 미드필더였어요. 에인트호벤에서 맡고 있는 처진 스트라이커와는 좀 차이가 있죠. 이전에는 골보다 어시스트에 주력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의 상황이니까요.
아직은 포지션에 제대로 적응이 안된 것 같아요. 익숙한 플레이를 버리고 새로운 것에 절 맞춰야 하는데 조금씩 나아지곤 있지만 아직도 제 스타일을 확 바꾸진 못했거든요. 사실 골이 안 터질 때의 답답함을 당사자 아니고는 잘 모르실 거예요. 관중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훈수’를 두며 선수의 플레이에 잘잘못을 따질 수 있지만 직접 경기를 뛰어보면 결코 바람대로 흘러가지는 않거든요.
지난 월드컵 이후 한국 축구가 침체를 겪고 있다는 안타까운 비판의 소리가 이곳에도 들려왔어요. 아시안컵이든, 올림픽이든, 태극마크를 달고 있는 대표팀 선수들이라면 유럽의 어느 선수들과 비교해도 개인 능력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 대표팀 운영 시스템과 감독 전술을 얼마만큼 이해하느냐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겠죠. 체계적인 관리 시스템을 꾸준히 유지하고 선수들을 단단하게 결속해 이끌어간다면 박지성이 빠지든, 이천수가 빠지든 대표팀의 모양새는 크게 변하지 않을 거라고 봐요. 쿠엘류 감독의 능력을 인정해서 믿고 뽑았다면 그분이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낼지 조용히, 그러면서 주의 깊게 지켜봐줘야 할 겁니다.
10월9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