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동열 코치(40)는 지난 13일 삼성 코치 입단식을 치를 때만 해도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현역 복귀설을 놓고 벌어진 다양한 시나리오의 ‘완결판’이 나오는 순간 무성한 소문들도 일시에 가라앉을 거란 기대도 한몫했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상황’은 종료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광환 LG 감독이 사퇴와 함께 2군 감독으로 내려가면서 야구 지도자들의 퇴진과 연쇄 이동이 마치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인 양 몰아가는 여론이 확산되자 상당히 당혹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역시 ‘국보’는 국보다웠다.
지난 15일 <일요신문>과의 전화인터뷰를 통해 선 코치는 최근 야구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태와 관련해 “모든 일들이 나에 대한 엄청난 기대와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세간의 소문과 의문에 대해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어찌 보면 혹독한 여론의 뭇매를 맞는 상황이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과 당당함이 깃들어 있었다. 다음은 선 코치와의 일문일답.
―프로야구계가 한동안 무척 시끄러웠다. 특히 선 코치의 거취 문제로 인해 다른 지도자들의 입지가 천당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형국이었다. 이런 사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코치 입단식 때 수많은 취재진들이 모여든 걸 보고 나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나의 행동에 대해 여러 가지 추측 기사들이 쏟아지는 걸 보고 무척 심란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신문에 소개된 것 중 진실은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난 어느 누구한테도 내 자리를 위해 길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없다. 그런데 마치 나에게 길을 만들어주기 위해 자리에서 물러나는 듯한 모양새로 비치는 것은 정말 부담스럽다.
기자분도 알다시피 날 원하는 팀은 많았다. 하지만 원한다고 해서 다 갈 수는 없었다. 세상에는 실력과 능력만으로는 넘어서기 힘든 ‘벽’들이 많다. 삼성행은 당시의 내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래도 김응용 감독님 밑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면 여러 가지 ‘벽’들 중에서 몇 가지는 해소되는 셈이었고 감독님도 그런 내 심정을 잘 받아주셨다.
―지난 11일 저녁 삼성 신필렬 사장과 김응용 감독을 만나기 전 점심 무렵 LG 어윤태 사장을 만나지 않았나. 당시 한때 LG행을 결정했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난 단 한 번도 어윤태 사장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 LG와 협상을 벌이며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가 ‘윗사람’과의 직접적인 접촉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른 팀은 구단주나 사장 등 팀 최고위층이 직접 발 벗고 나서는데 LG와 접촉할 때는 단장 외엔 만난 사람이 없었다. 솔직히 윗 사람이 나서서 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선택의 갈림길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의사 결정권자와 직접 대면을 해야 내가 제시한 조건에 대한 가부가 그 자리에서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LG행을 확답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짧은 기간 동안 두 팀의 감독, 코치 후보에 올랐다가 전격적인 삼성행을 발표했다. 급하게 결정을 내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내 거취 문제를 놓고 다른 팀 감독, 코치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소리에 마음이 급해졌다. 하루 빨리 결정을 내려야 다른 분들한테 영향을 덜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선동열 사단’에 이름을 올려놓았다가 소속팀에서 물먹은 코치들에 대한 이야기가 분분하다. 그리고 협상 때마다 ‘포기할 수 없는 카드’로 요구했던 한대화씨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왜 꼭 한 코치와 동승하려 했는지 무척 궁금하다.
▲먼저 나와 한 배를 타려다가 소문이 나는 바람에 소속팀에서 잘렸다는 정회열, 김평호 코치에 대해서는 다소 오해가 있는 것 같다. 두 사람은 ‘선동열 사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기 전에 이미 소속팀에서 정리 대상에 올랐던 것으로 안다. 즉 소속팀 사정에 의해 물을 먹은 것이지 나 때문에 잘린 게 아니다. 한대화 코치는 타격코치로서 능력이 뛰어나다는 판단에 욕심이 났을 뿐이다. 평소 지도자 생활을 하면 같은 팀에서 뜻을 펼쳐 보자고 약속했던 게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김응용 감독의 임기가 끝나는 2년 후 삼성 감독에 오를 것이라는 예상에 대해선 어떤 입장인가.
▲2년 후의 일을 어떻게 지금 알 수가 있나. 항간에는 고위층과 이면계약이니 밀약설이니 하는 이상한 말들이 떠돈다는 걸 들었다. 절대 그렇지 않다. 2년 후 내가 왜 삼성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미래의 일은 함부로 얘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선 코치의 입단을 반대하는 삼성 팬들도 있다. 특히 그들은 미국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이만수 코치를 당장 데려와야 한다며 사이버 시위를 벌이기도 한다. 이 코치가 친정으로 돌아올 경우 선 코치의 입지가 곤란해질 수도 있을 거란 지적이 있는데.
▲코치는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구단 고위층과 감독님이 정할 문제다. 나도 코치인 주제에 다른 코치 영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할 입장이 아니다. 내가 1군에 있을지, 2군 선수들을 지도하게 될지조차 모르는 상태다. 그리고 나에 대한 안티팬이 있다면 앞으로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평가를 통한 비난이라면 달게 받겠다.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