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가 있는 곳은 인천국제공항 3층 출국장입니다. 어제(18일) 불가리아전을 마치고 수원 집으로 갔다가 아침 일찍 서둘러 이곳에 나왔어요. 비행 시각은 오후 1시30분인데 아버지께서 워낙 급하게 움직이시는 바람에 공항에 도착하니 오전 11시밖에 안됐네요. 그래도 여유있게 출국 전 일기를 올리고 돌아갈 수 있어 마음은 한결 편안합니다.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까 예상대로(?) 불가리아전을 놓고 아주 다양한 평가와 지적들을 해놓으셨더라고요. 신문 제목만 보고 일부러 내용은 안 읽어봤어요. 골을 넣지 못했기 때문에 그다지 기분 좋을 만한 기사가 없을 것 같아서요.
첫 골을 낼 수 있었던 전반 초반의 상황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을 겁니다. 골키퍼와 1대1 상황에서 어떻게 공을 차야 성공확률이 높을지 찰나에 판단해 킥을 했는데 골키퍼가 잘 막은 건지 제가 찬 볼이 위력적이지 못해서인지 정말 머리를 칠 만큼 안타까웠답니다.
불가리아전에서도 마음에 담아둘 만한 몇 가지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어요. 그러다보니 패스할 때 자신감이 떨어졌고 그 영향은 패스 미스 등의 에러로 나타나곤 했어요. 주위에선 자신감 회복이 우선이라고 지적하지만 정말 이 부분은 부단한 노력과 시간밖에는 이렇다할 해결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요. 첫 골만 들어갔더라면… 어쩌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해결됐을 텐데 말이죠.
대표팀의 ‘연습량 부족’은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K-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이 곧바로 합류해서 다음날 2시간 정도 발을 맞춰봤는데 솔직히 훈련이라기보다는 컨디션 조절밖에 할 수가 없었어요. 유럽의 경우에도 보통 이틀은 운동하고 하루는 컨디션 조절을 할 수 있게끔 스케줄이 짜여지거든요. 어쩜 이렇게 촉박하고 다급하게 리그 일정과 A매치 대회 일정을 잡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만약 이런 식의 스케줄이 반복된다면 결국엔 축구팬들이 원하는 수준의 경기와 결과는 보여줄 수 없을 겁니다.
외국에선 A매치 대회 때 리그 일정을 잡지 않아요. 물론 협회나 연맹의 고충과 말 못할 속사정이 있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어요. 수익 창출과 홍보 등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선수와 좋은 경기를 보고 싶어하는 팬이라고 생각해요. 그 두 가지 부분에 역점을 두고 일정을 잡는다면 이번과 같은 ‘살인적’이고도 무모한 스케줄은 나오지 않을 거라고 봐요.
지금 네덜란드로 돌아가면 전 정말 ‘죽습니다’. 22일(이하 한국시간) 네덜란드 정규리그 NAC와의 원정경기를 시작으로 26일 AS 모나코(모나코)와의 유럽챔피언스리그 경기, 그리고 29일 정규리그 FC 즈볼레전 등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거든요. 다음 일기에서 어깨에 힘주고 큰소리칠 수 있도록 열심히, ‘천방지축’ 달려보겠습니다.
-11월19일 인천공항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