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표’에 정동영·김근태 갈린다
▲ 지난 2일 있었던 열린우리당 당의장 예비선거를 통과한 후보들. 1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각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왼쪽부터 정동영 김근태 김두관 김혁규 임종석 김부겸 후보. | ||
지난 2월 2일 예비경선에서 여유 있게 선두에 올랐던 정동영 후보측은 판세는 이미 기울었다고 판단한다. 그동안 영·호남과 수도권을 거치는 권역별 합동토론회에서 ‘정동영 대세론’을 확인하며 김근태 후보와의 격차를 오히려 벌렸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다.
정 후보측 캠프는 오히려 ‘전당대회 이후’를 고민하고 있는 모습이다.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여전히 20%대 초반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5월 지방선거와 7월 재선거가 간단치 않은 것이다. 문희상 전 의장이 10·26 재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것이 불과 4개월 전의 기억이다.
이 때문에 정 후보측은 목표를 당선이 아니라 ‘강력한 당의장’으로 수정했다는 후문이다. 당초 흥행을 위해 박빙의 승부를 펼쳐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이제는 2위와의 격차를 최대한 벌리는 것으로 전략이 바뀌었다. 이를 위해 조직적인 표 단속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내 사정에 정통한 한 후보의 핵심 참모는 현장 분위기를 이렇게 전한다.
“정동영 후보 쪽에서 물밑에서는 계파 대의원들에게 ‘배제 투표’를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김근태 후보가 3위로 밀릴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김근태 후보측도 전세의 불리함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전의가 꺾인 것은 아니다. 막판 역전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남아 있다는 것이 김 후보측의 판단이다. 특히 지난 8일 인천에서 고건 전 총리와의 회동 이후 캠프는 상당히 고무돼 있다. 이 자리에서 김 고문은 고 전 총리에게 자신이 주창하고 있는 ‘양심세력 대연합론’에 동참해 줄 것을 공개 제의했고 고 전 총리는 “주파수를 맞춰보자”고 화답했다.
김근태 후보측 대변인을 맡고 있는 우원식 의원은 “고 전 총리가 대연합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김 후보의 제안을 거부하지 않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지방선거 이후 실질적인 논의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 후보의 한 측근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뛰어다니고 있는 김근태의 노력을 대의원들이 인정해 주지 않겠느냐”며 기대를 표시했다.
정동영 고문측도 이날 회동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웠다. 정 고문의 핵심 참모는 “당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은 김 고문에게 감사한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아무런 합의나 성과는 없는 것이 아니냐”며 회동을 폄하했다. 김 후보의 연대론이 이번 당권경쟁은 물론 향후 대권경쟁을 겨냥한 ‘반 정동영 연합전선’의 성격이 짙다는 점도 정 후보측을 긴장시키는 대목이다.
김혁규 후보의 선전도 본선에서의 중요한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예선을 4위로 통과한 김 후보는 이미 김두관 후보를 밀어내고 정동영·김근태 후보와 함께 ‘3강’을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본선의 목표는 ‘3위 이상’이라고 밝혔다. 지난 2월 2일 예선의 현장투표에서 김근태 후보와의 표 차이가 3표에 불과했던 점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김혁규 후보는 지역별로 부산·경남, 충북, 강원, 대전에서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부산·경남은 김 후보의 고정표가 밀집된 지역이고 충북은 홍재형 의원 등 김 후보를 지지하는 의원들이 대거 포진해 있다. 또 강원에서는 도당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광재 의원이 김 후보를 위해 뛰고 있다.
김 후보측 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종률 의원은 “부산·경남을 기반으로 지지세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라며 “대의원들도 전국 정당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김혁규 후보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인식에 동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후보측이 김근태 후보에 대한 ‘배제 투표’를 주문할 경우 김혁규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의 한 당직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정 후보측의 입장에서는 당의장에 당선되더라도 향후 견제를 줄이기 위해서는 2·3위와의 격차를 벌려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혁규 후보와의 연대를 강화해 자신의 득표율을 올리는 동시에 김근태 후보를 견제하려는 것이다. 김혁규 후보도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고 보고 이번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에 적극적이다.”
예비경선 3위였던 김두관 후보는 최근 약간 밀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참여정치실천연대(참정연)에 대한 당내의 ‘왕따’ 분위기도 부담된다. 하지만 부산·경남의 고정표와 참정연의 조직적 지원이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어 3위 수성은 무난하다는 것이 자체 분석이다. 여기에 김근태 후보와의 강한 연대도 김두관 후보를 지탱해 주는 힘이다. 김두관 후보측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 데다 최근 대의원 숫자가 많은 경기지역에서 약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선에서 아무도 최고위원 당선권(4위)에 들지 못했던 40대 재선그룹도 본선에서는 결과가 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임종석 후보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임 후보가 주장하고 있는 ‘중도개혁세력의 대통합’이 지방선거 필승전략에 목말라 있는 대의원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임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염동연 의원은 “이미 당선권 안으로 진입했다는 게 최근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라며 “소신과 젊음으로 충분히 당선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강철 전 대통령 시민사회수석을 지원군으로 맞이한 김부겸 후보는 대구·경북을 발판으로 경기와 호남지역으로 세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김 후보측 관계자는 “대구·경북 지역 대의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뜨겁다”며 “호남에서는 정동영 후보 지지층의 두 번째 표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내 조직력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편인 김영춘 후보는 오히려 ‘어떤 세력에도 들지 않는 무당파’라는 점을 강점으로 삼아 표밭을 훑고 있다.
40대 재선그룹이 당 지도부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후보 단일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가능성은 적다. 당내 마당발로 통하는 한 40대 의원은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의원으로 단일화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각자의 목소리를 낼 것”이라며 “경선 결과에 관계없이 전당대회가 끝나면 40대 재선그룹은 다시 하나로 뭉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