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둑대회 행사장에서 한 컷. 홍시범씨(오른쪽)와 아들 홍 많은샘 7단은 부자가 아니라 형제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 ||
현재는 자원봉사 성격이다. 물론 진행 비용은 실비로 받는다. 요즘 같은 세상에 도대체 누가 자기 시간, 자기 돈 들여가며 아마추어 바둑대회 진행을 자원한단 말인가.
홍시범씨(46)다. 전국구 아마강자 홍맑은샘 7단(22)의 아버지다.
홍맑은샘의 여동생은 홍맑은비(18). 현재 직업이 없거나 벌어 놓은 돈이 많아서 아마바둑대회 진행을 자원봉사하는 것이 아니다. 니트 업계에서 25년째 일하고 있다. 아들딸의 이름을 ‘맑은샘’ ‘맑은비’라고 지을 정도면 일단 보통 사람은 아니다.
바둑 두는 아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수많은 아마바둑대회를 쫓아다니다 보니 여기에 이르렀다. 우리 아마바둑대회는 아마추어리즘과는 거리가 먼 대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바둑대회는 아마추어 바둑 동호인들의 축제 같은 성격이어야 할 텐데, 그런 것이 아니었다. 누가 제일 잘 두느냐, 누가 우승하느냐, 오로지 그것만이 관심이었다. 그러니 막바지에 가면 입상권에 들어간 선수와 대회 관계자 몇 사람만이 썰렁하게 남아 있기 마련이었다.
우승자를 가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진행 방식도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었다. 대회를 치른다는 것 말고는 참가 선수들이나 관전객, 응원객들을 위한 배려 같은 것은 없었다. 심지어는 대진표조차도 대개는 조잡했다. 일반인들은 알아보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 것들은 조금만 신경을 쓰고 연구를 하면 해결될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쳐 보고 싶었다. 바둑의 아마추어리즘, 바둑문화를 정립하는 일에 일조를 하고 싶었다.
홍씨가 바둑대회를 쫓아다닌 지도 어느덧 20년 가까운 세월이다. 바둑대회의 진행 방식을 바꾸고 싶다, 새로운 바둑문화 정립에 일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도 어느덧 10년이다. 그런 연구와 준비 끝에 올 여름 홍씨는 마침내 깃발을 올렸다.
금요일까지는 일을 하고, 주말에는 바둑대회 진행을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국 규모 바둑대회 두 개와 지난번 아시아 바둑선수권전, 국제대회 하나를 치러냈다. 평은 아주 좋았다.
특히 이번에 국내 최초이자 세계 최초로 ‘약자를 위한 진행방식’ ‘참가자 모두를 위한 축제(다양한 이벤트)’의 개념을 도입한 아시아 대회는 참가국 모든 선수단으로부터 “새롭고 바람직한 아마 바둑대회의 방식으로 자리를 잡을 것이다. 유럽의 대회들도 곧 이 방식으로 따라올 것”이라는 찬사와 함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대회진행을 혼자 할 수는 없다. 아마추어리즘을 복원시킨다는 취지에 동감하고, 주말에 자기 돈과 시간을 쓸 수 있는 동지들을 규합하고 있다. ‘클럽A7’의 ‘A7’은 ‘아마추어 7단’을 의미한다. 정상급 아마강자들의 모임이라는 뜻인데, 그보다는 아마추어리즘의 최선의 모습을 지향한다는 그런 뜻이다.
사무실도 따로 신설동에 마련했다. 누구든지 환영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참가하러 시골에서 올라오는 선수들에게는 휴식처로 제공된다. 인터넷 다음(DAUM)에 ‘아바사(아마추어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들)’라는 카페도 운영하고 있다. 바둑 관계 사이트 중에서는 유일하게 아마추어 바둑 소식만을 싣는다.
현재 홍씨를 포함해 세 사람이 주말이면 봉고차에 대회 진행에 필요한 물품과 잡동사니를 가득 싣고 떠난다. 황금 같은 주말에 내 돈 써 가며 봉사하는 일이지만, 즐겁다. 바둑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바둑문화를 만들어 가는 일이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번 겨울에는 아마 강자들과 함께 ‘지하철 이벤트’를 벌일 계획이다. 날씨가 추울 것이므로 지상에서는 곤란하고, 주말마다 지하철역 대합실에서 지도다면기를 펼치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들이 점점 알려지면 동참자도 늘어날 것이고, 아마기사들도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스폰서도 나타날 것으로 본다. 수익도 생기겠지만, 그것은 아마기사들의 몫으로 돌리고, 그래도 남는 것이 있다면 아마바둑 발전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나의 생활, 나의 삶 자체가 축제다. 내 삶을 축제로 만들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사람들의 축제를 위해 일할 수 있겠는가.
이광구 바둑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