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에서부터)정민태,박정태,정수근 | ||
‘현대맨’이 당연시(?)되는 정민태(현대), FA자격을 얻고 잠시 흔들렸던 박정태(롯데), 새 유니폼을 입으며 대박을 터뜨린 정수근(롯데), 그리고 무려 다섯 번의 이적으로 트레이드 최다 기록을 갖고 있는 최익성(삼성) 등 각기 다른 ‘출신 성분’을 지닌 선수들이 쏟아낸 프로야구 선수의 ‘돈’과 ‘명예’에 대한 생각들을 대담형식으로 꾸몄다.
지금까지 프로야구에서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된 선수는 박철순(OB·21번), 선동열(해태·18번), 김용수(LG·41번), 이만수(삼성·22번), 그리고 86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영신(OB·54번) 등 다섯 명이 전부다. 김영신을 제외한 네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 입단한 구단에서 은퇴식을 갖고 명예롭게 퇴장했다는 것.
하지만 각 구단의 이해관계에 따라 트레이드가 이뤄지고 최근에는 FA제도까지 시행되면서 ‘스타’ 선수는 있어도 ‘프랜차이즈’ 선수가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강한 연고의식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국내 프로야구의 정서상 팀은 고향 같은 존재이지만 팀을 옮기는 것에 대한 선수들의 부담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사회: 최근 프로야구에서는 어떤 팀 하면 마땅히 떠오르는 선수가 없다. 프랜차이즈 선수의 의미가 퇴색한 건가.
정민태(정): 그런 경향이 있다. 하지만 지금 ‘삼성=이만수’와 같은 등식이 성립되지 않는 건 선수들의 이동 여건이 그만큼 좋아졌기 때문이다. 소속감만큼이나 기량에 걸맞은 대우도 중요하다. 선수들에게는 자존심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박정태(박): 그렇다. 프랜차이즈 선수는 필요하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아직 국내 프로야구의 역사가 짧아서 팀을 옮기면 팬들은 충격을 받는데 선수가 상품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생각하기 나름이다.
사회: 그래도 프로야구는 강한 연고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골수팬들도 유난히 많은데 한 구단에 ‘말뚝’을 박는 게 더 명예로운 것 아닌가.
정수근(근): 프로 선수에게 돈과 명예는 어느 하나만 앞세울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다. 선수는 상품이고 곧 비즈니스다. 선수의 이익을 무시하고 희생만을 강요할 순 없다.
사회: 결국 ‘돈’이 문제라는 건데 팬들 입장에서는 ‘배신’으로 보일 수도 있다.
박: 몸값은 선수들에게는 자존심이다. 별 차이가 없다면 한 팀에서 끝까지 남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보면 때론 ‘배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정수근 선수와 한솥밥을 먹게 돼 무척 기쁘다.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까지 갈등이 꽤 컸을 것 같다.
근: 솔직히 떠나는 기분이 안 좋더라. 나 스스로 두산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기업의 이미지 제고에도 한몫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익성(최): 자, 자, 조금씩 진정하고. 다섯 번이나 팀을 옮기면서 한 번도 자발적으로 선택한 적이 없는 내 입장에서 ‘말뚝’ 박는 데 대해 언급하는 게 좀 그렇지만 무작정 선수들 탓만 할 수도 없다. 구단 스스로가 프랜차이즈 선수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구단에서 인정해 주면 선수는 남아 있게 돼 있다. 정민태 선수도 그래서 ‘영원한 현대맨’이길 원하는 게 아닌가. 지금 수백억을 준다고 해도 움직이지 않을 것 아닌가.
정: 하하, 좋게 봐줘서 고맙다. 물론 지금은 (나의) 야구 인생이 그리 길게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 엄청난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도 움직일 가능성이 극히 적다. 물론 자금 사정 때문에 구단에서 나를 판다면 순순히 받아들이겠지만(웃음). 그러나 젊은 나이였다면 동일 조건에서 다른 유니폼을 입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 잠깐, 나도 한마디 해야 겠다. 두산 팬들은 많이 섭섭해하겠지만 나 역시 9년 동안 정든 팀이다. 그런데 두산에서 내건 조건은 ‘밥만 먹고 야구는 하지 말라’는 것과 같았다. ‘미스터 롯데’로 불릴 수 있는 박정태 선수도 지난해 흔들리지 않았나. 내 맘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박: 또다시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드는구먼. 자랑은 아니지만 (나의) 팬들 중에는 광적인 팬들이 많다. 팬들이 결사반대한 게 마음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됐다.
사회: 비록 선수는 아니지만 나 같으면 말뚝 박겠다.
선수 이구동성: 처음으로 입은 유니폼을 입고 은퇴하는 게 선수들의 공통된 소원이다. 다만 금전적인 문제도 무시할 수 없는 게 선수들의 입장이다.
최: 사회자는 요즘 선수들의 소속감에 대해서 자꾸 의심하는 발언을 하는데, 그건 내가 보장한다. 일방적으로 트레이드되는 선수들도 어느 팀에 가건 소속감은 잃지 않는다. 하물며 자신이 팀을 선택하는 FA선수들은 더하지 않겠는가.
김남용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