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커플, 밀월 끝 전쟁 시작
▲ 한나라당의 주류-비주류가 공천 주도권을 놓고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진은 15일 부산 출신 의원들 조찬모임. 공천 대책을 논의중이다. 아래는 16일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표(오른쪽)와 이재오 원내대표. | ||
지난해 11월 중순 개정된 당헌·당규에 따라 처음으로 중앙당-일선 시도당 이원체제로 진행되고 있는 공천심사 과정에서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한 주류와 이재오 원내대표를 축으로 한 비주류 간 갈등이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다. 어느 편이 많은 공천자를 내느냐에 따라 당내 세력판도가 달라지고 그 결과가 7월 전당대회 당권경쟁, 나아가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구도를 좌우할 것이란 점이 분명한 만큼 양측은 공천 과정 곳곳에서 충돌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 대표와 이 원내대표의 ‘밀월’이 이제 끝났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당내 ‘투 톱’인 박 대표와 이 원내대표는 외형상으론 엄정하고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 공천 작업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전혀 이견이 없어 보인다.
박 대표가 “지금도 비리와 부패, 금전관계 등 잘못된 공천관행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와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다. 공천 과정에서 한 건이라도 부정부패가 있다면 아주 엄중하게 책임을 묻겠다”(9일 확대당직자회의)고 나서자 이 원내대표는 “깨끗한 인물이 합당한 지역에 공천되도록 하겠다. 좋은 인물이 자기 지역에서 좋은 지방자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으며 이를 위해 박 대표를 비롯해 모든 당직자들이 정치적 사활을 걸고 임할 것이다”(14일 주요당직자회의)고 화답하고 나섰다.
그러나 ‘투 톱’의 언급은 선언적 의미에 그칠 뿐 실제론 도처에서 주류-비주류 간 ‘힘겨루기’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양측의 불협화음은 중앙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 구성(9일)에서도 불거지기 시작했다. 박 대표 주재로 열린 확대당직자회의에서 공심위가 친박(親朴) 인사 위주로 짜여진 데 대해 비주류측이 강하게 불만을 토로하고 나선 것이다.
모두 15명(원내 10명, 원외 5명)으로 발족한 공심위에서 대표적인 친박 중진인 최연희 사무총장이 위원장을, 대구·경북지역 초선들의 ‘맏형’으로 박 대표와 각별한 관계인 김태환 제1사무부총장이 간사를 맡았으며 이들 외에 고흥길 서병수 김석준 최구식 문희 이진구 의원 등 친박 진영 초·재선 의원들이 대거 포함됐다.
여기에 원외 케이스로 포함된 인사들 중에서도 강용석 서울 마포 을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당 페이지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섹시한 박근혜, 막무가내 이명박’이란 표현을 사용해 친박 성향을 드러낸 바 있다. 또 조전혁 자유주의교육운동연합 상임대표(인천대 교수)와 이두아 변호사 등도 박 대표가 총력전을 폈던 사립학교법 무효화 투쟁을 외곽에서 지원했던 경력 때문에 박 대표 쪽에 가깝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심위 구성에 대해 비주류측은 “‘친박 편중’ 수준이 아니라 ‘독식’”이라며 성토하고 나섰다. ‘수요모임’ 소속 한 의원은 “겉으론 ‘공천개혁’을 강조하던 박 대표측이 실제 공심위 구성에선 자기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기본적인 ‘게임의 룰’마저 어겼다. ‘제왕적 리더십’이란 비판을 샀던 이회창 전 총재 시절에도 이번처럼 공심위를 특정 세력 일색으로 구성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주류측이 ‘기초단체장과 광역·기초 의원 후보 공천권이 시도당 공심위에 위임돼 중앙당 공심위가 별반 역할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헌상 중앙당 공심위가 취약-전략-인재영입 지역 선정 권한을 갖고 이들 지역에선 중앙당 공심위가 광역·기초단체장 공천자를 결정토록 되어 있는데 왜 역할이 없다는 말이냐. 주류측이 이제까지 보인 태도로 볼 때 호남·충청권과 여성 배려 케이스의 기초단체장 공천은 박 대표측에 우호적인 인사들에 집중적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당내에선 이 원내대표가 최근 호남·충청권 기반 확대를 위해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자민련 등 다른 야당들과 연합공천 등 선거공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배경이 주류측의 이들 지역 장악을 견제하려는 데 있다는 분석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16일 한 당내 행사에서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올라가고 잘나가니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치려고 해선 작은 선거는 이기겠지만 정말 국민의 민심을 얻기는 힘들다. 호남에선 민주당과, 충청에선 국민중심당, 자민련과 연대하고 필요하면 연합공천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원내대표가 제기한 ‘야권공조론’은 외형상 최근 여권에서 ‘양심세력 대연합론’이나 ‘반(反) 한나라당 전선’ 구축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비롯됐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선거 전에 공조는 성사되긴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실제 목적은 ‘딴 데’ 있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당장 호남·충청권에서 독자적으로 기반 확대를 추진해온 주류측에 맞서 비주류측이 ‘공조 카드’를 내걸어 해당 지역 당원·유권자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주류측이 그동안 “(지방선거에서) 다른 당과의 합당이나 연합공천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박 대표, 1월 26일 신년 기자회견)고 해온 점을 감안, 상대적으로 주류측에 비해 열세인 이들 지역에서 차별화 카드로 어필해 보려는 것이란 풀이도 나온다.
비주류의 불만은 시도당 공심위 구성과정에서 한층 더 에스컬레이트되고 있다. 주류측이 시도당 위원장들이 공심위원장을 맡는 것을 반대해온 비주류측의 의견을 묵살하고 ‘겸직’을 허용하면서다. 특히 영남권에선 부산 경남 대구 3곳에서 친박으로 분류되는 현역 위원장이 공심위원장을 겸하고 울산·경북도 박 대표와 가까운 정갑윤 이인기 의원이 공심위원장를 맡게 돼 비주류로선 공천심사 과정에서 사실상 배제될 위기를 맞게 됐다는 평가다.
여기에 당내 역학구도를 가를 핵심지대인 경기도의 경우도 친박 성향인 원외의 홍문종 도당 위원장이 공심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서자 비주류의 불만은 그야말로 폭발 일보 직전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비주류 핵심인 심재철 의원이 17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홍 위원장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점을 들어 겸직의 부당성을 공개적으로 설파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원내대표와 소장파의 리더인 원희룡 최고위원이 직접 ‘겸직 금지’와 중앙당 차원에서 시도당 공심위가 ‘일방통행’하려는 경향을 제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비주류 내에서 “이대로 가면 주류측의 의도대로 공천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이 원내대표는 “선거를 총지휘할 사람이 공천이나 하고 있으면 되겠나. 나는 반대다. 당규에는 의원들 간 호선한다고 돼 있지만 그래도 내규를 정하든지 해서 그렇게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원 최고위원도 “시도당의 공천 결과에 문제가 있을 경우 최고위원회의가 사후에 반려하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만큼 운용의 묘를 살려 최고위원회의에서 중도에라도 공천심사를 지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움직임들은 친박 진영에서 시도당 공심위를 대부분 장악하는 상황을 막겠다는 의도라는 게 당내의 분석이다.
그러나 비주류측의 이러한 요구에 대해 주류측은 “한마디로 자가당착”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부터 적용되는 중앙당-시도당의 이원적 공천방식은 비주류측이 당 혁신을 내세워 요구해 당헌에 넣은 것인데 이제 와서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하자 엉뚱한 소리를 한다는 것이다.
영남권의 한 중진은 “현행 당헌에 규정된 공천방식은 박 대표를 견제하는 차원에서 시도당에 공천권을 주고 중앙당은 관리만 하도록 하기 위해 비주류측의 홍준표 박형준 의원 등이 만들어낸 것 아니냐”며 “사정이 이런데 자신들의 당내 세력이 커졌다고 이제 와서 ‘시도당에 모든 걸 맡겨서는 문제가 있다. 중앙당이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이해관계에 따라 자신들이 만든 당헌을 무력화시키려는 파렴치한 짓이다”라고 비판했다.
주류측은 또 비주류측이 경기도지사 후보 당내 경선 출마 의사를 밝힌 이규택 김영선 최고위원의 사퇴를 요구한 것도 문제 삼고 나섰다. 수요모임 소속인 정병국 당 홍보기획본부장 등이 “시도당 공천결과를 최종 의결하는 최고위원회의 구성원이 거꾸로 의결의 대상이 되는 것이 맞지 않는다”는 논리를 펴고 나섰지만 실제로는 박 대표와 각별한 관계인 두 최고위원을 최고위원회의에서 축출해 공천심사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고 주류측은 분석하고 있다.
주류측은 이와 함께 2월 22~24일 진행되는 국회 대정부 질문자 선정 결과를 놓고서도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광역단체장 출마를 선언한 홍준표(서울시장) 김문수(경기도지사) 권철현 의원(부산시장) 등 비주류 핵심 중진들이 모두 질문자로 선정된 배경에 당내 비주류의 ‘수장’(首長) 격인 이 원내대표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시각에서다.
박영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