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장부 들고 입국…MB정권 거물들 떨고 있다
‘노드시스템 사기사건’ 피의자 이 아무개 씨가 베이징공항에서 국내 송환절차를 밟고 있는 모습. 이 씨는 미등기 주식을 불법 유통해 투자자 1만여 명에게 2500억 원가량을 가로챈 혐의다. 사진제공=경찰청
[일요신문] 이명박(MB) 정부 시절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노드시스템 사기사건’ 피의자 이 아무개 씨(45)가 체포됐다. 이 씨는 비상장 벤처업체 노드시스템 대표였던 2004~2009년 대형 해외계약을 수주했다고 속이는 방법 등으로 투자자 1만여 명에게 2500억 원가량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2009년 중국으로 밀항해 6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 지난해 10월 22일 공안에 붙잡혔고, 올 1월 8일 국내로 송환됐다. 이 씨 신병 확보에 정치권이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은 대형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에서다. 이 씨와 그의 측근들은 지난 정권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했고, 2007년 대선 때는 MB 캠프에 직·간접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또 이 씨는 사법당국 수사망이 좁혀오자 금품로비 장부 등을 활용해 적극적인 구명에 나섰다고 한다. 일각에선 이 씨 밀항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나오고 있다.
이씨가 2000년 세운 노드시스템은 벤처기업으로 승승장구했다. 설립 초기 셋톱박스 등 방송·통신 관련 장비 개발과 서비스를 제공하며 업계에서 주목받던 회사였다. 2003년부터는 기술을 해외로 수출하며 급성장했다.
노드시스템이 과거 언론을 통해 공개한 실적은 눈부셨다. 2006년 최첨단 시청률 측정시스템 1200억 원 판매 계약, 2007년 러시아와 금장 휴대전화 1500만 대 수출 계약, 2007년 러시아가 추진하는 2조 원대 와이브로 사업 독점권 획득 등이 알려졌다. 언론은 이를 ‘벤처신화’, ‘쾌거’ 등의 수식어를 써가며 수많은 기사를 쏟아냈다. 자연스레 회사 가치는 가파르게 올라갔고 장외시장에서 300원에 거래되던 주식은 2000원대로 치솟았다.
그러나 노드시스템이 자랑했던 계약들은 모두 허위였다. 이 씨는 체결되지도 않은 계약을 공시해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았던 것이다. 경찰 수사 결과 노드시스템은 생산설비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발행한 주식 역시 가짜로 드러났다.
이 씨는 비상장 회사의 경우 주주명부에 등재돼 있지 않은 미등기 주식을 마구잡이로 발행해도 그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을 악용해 가짜 주식을 유통시켰다. 이 씨에게 속아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는 노드시스템 주식을 산 투자자들은 무려 1만여 명, 확인된 금액만 2500억 원에 달했다. 그러나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도 상당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 규모가 훨씬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증권가에서 노드시스템과 관련된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MB 정권 초인 2008년 2월경이다. 이 씨가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고, 노드시스템의 해외 계약이 실체가 없다는 얘기가 돌았던 것이다. 곧 노드시스템 주가는 100원 아래로 추락했다. 피해자들이 속출하면서 금융당국과 경찰이 조사에 착수했다. 이 씨의 사기행각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증권가 소문과는 별개로 노드시스템 회사에 대한 고소·고발이 계기가 됐다”며 “피해자와 노드시스템 임원 간 폭행 사건도 있었다. 이 씨가 회사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려 한다는 제보도 있었다. 수사 착수 후 너무나 많은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귀띔했다.
<일요신문>이 취재 과정에서 접촉한 수사당국과 노드시스템 관계자, 그리고 피해자들 말을 종합해보면 이 씨와 그의 최측근들은 평소 유력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지난 정권에서 실세로 불렸던 정치인들 실명을 자주 거론했다고 한다. 피해자 중에선 이러한 이 씨 인맥을 믿고 투자했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이 씨 등에게 속아 3억 원을 투자했던 한 피해자는 기자와 만나 “이 씨 오른팔로 불렸던 노드시스템 임원이 MB 정권 실세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뒤가 든든하다’고 했다. MB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데 이 씨가 공을 세웠다고 했고, 그 증거들을 보여줬다”면서 “어떻게 안 믿을 수가 있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증거에 대해 “노드시스템 임원과 정권 실세가 주고받은 문자들, 거기엔 ‘감사하게 잘 쓰겠다’ 등 금품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이 있었다”라고 보탰다.
경찰 고위 인사 역시 당시 상황에 대해 “공식 수사에 나서기 전에 (이 씨 관련) 첩보가 계속 올라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씨가 MB 정권 실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있다는 것도 그 중 하나였다”면서 “이 씨가 MB 대선 외곽 캠프였던 선진국민연대 출신과 영포라인 인사들을 만난 정황은 포착됐다. 그러나 후에 이 부분에 대한 수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몰라도 이뤄지진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자신의 아버지, 친인척, 측근들이 잇달아 경찰에 소환되는 등 수사당국이 고삐를 죄어오자 이 씨는 정치권 인맥을 십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구명 로비를 하려 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이 씨는 평소 작성해둔 비밀 장부를 히든카드로 사용했다고 한다.
또 다른 노드시스템 전직 관계자이자 이 씨 핵심 측근은 “장부엔 이 씨가 금품을 건넨 대상과 액수, 날짜 등이 적혀있다. 쉽게 말하면 로비 리스트를 기록해둔 것이다. 이 씨는 장부가 언젠가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더욱 꼼꼼히 적었던 것 같다”면서 “경찰이 수사에 나선 후 이 씨는 유력 인사들에게 민원을 넣었다. 그래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자 장부를 들고 다니며 ‘협박’까지 했다고 들었다. 이 씨가 ‘그 양반이 어떻게 이럴 수 있어?’라는 말을 여러 번 했다. 로비가 잘 통하지 않았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가 한창이던 2009년 초 이 씨는 중국으로 밀항해 종적을 감췄다. 사법당국이 핵심 피의자 신병을 소홀히 관리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피해자들은 여기에 정치권의 비호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피해자는 “이 씨가 정권 실세를 통해 외국으로 도피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었다. 그래서 우리가 빠른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 씨가 중국으로 도망간 후 수사는 정체에 빠졌고, 피해자들 역시 발만 구를 수밖에 없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에 대해 MB 정권 시절 청와대에 근무했던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우리도 이 씨 사건을 예의주시하며 체크하고 있었다. 이 씨가 몇몇 실세들과 친분이 있었다는 것은 확인됐다”면서도 “로비 장부, 밀항 지원설과 같은 시중의 의혹은 실체가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 씨는 지난해 10월 22일 한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왕징에서 공안에 의해 체포됐고, 1월 8일 송환돼 조사를 받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 씨 수사 결과에 따라 대형 게이트로 번질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박근혜 정부가 후반기 들어 다시 한 번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상황에서 이 씨 사건이 정치권으로 불똥 튈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친박계 의원은 “현 정부가 포스코 등 지난 정권을 겨냥해 여러 건의 수사를 진행했지만 제대로 된 건은 없었다. 그런데 이 씨 송환을 계기로 MB 실세들의 ‘판도라 상자’가 열릴 것이란 얘기가 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이 씨는 로비 장부는 물론 이중으로 작성된 주주명부 등을 갖고 국내로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경찰 피해자도 수두룩 돈 때문에 모친 살해한 그때 그 경찰 간부도… 동기들 중에서도 선두주자로 꼽혔던 이 씨가 이처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것은 금전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돈 때문에 갈등을 빚었던 이 씨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당시엔 구체적 이유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일요신문>은 취재 과정에서 이 씨 형편이 악화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노드시스템 때문이었다는 내용을 접할 수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 씨가 노드시스템에 투자했다 거액을 날렸다. 그래서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 씨뿐 아니라 대전 지역에 근무하는 경찰 중에선 유독 노드시스템 피해자가 많았다고 한다. 노드시스템 대표였던 이 씨의 한 친인척이 대전에서 경찰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를 통해 투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드시스템에 투자했다 수천만 원을 날린 한 피해자는 “아는 경찰을 통해 투자했다가 낭패를 봤다. 알고 보니 그 경찰이 다녔던 경찰서 대부분 직원들이 자신의 동료였던 이 씨 친인척을 믿고 투자했다더라. 이게 소문이 나서 대전 지역의 많은 경찰들이 투자를 했다”고 귀띔했다. [동] |
범죄자들 주요 밀항지 변화 한중 수사공조 강화 후 중국보단 필리핀으로… 그동안 중국은 국내 범죄자들이 밀항지로 가장 선호하는 나라였다. ‘단군 이래 최대 사기범’ 조희팔이나 노드시스템 사기범 이 아무개 씨가 향했던 곳도 중국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일단 땅이 워낙 넓고 인구가 많아 추적이 어렵다. 마음먹고 숨으면 어떻게 찾을 것이냐. 또 공안에 의존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경찰은 중국 공안과의 공조 체제를 강화했다. 경찰은 2013년 이후 중국 공안과 도피사범 명단을 교환해오고 있는데, 이 씨 송환 역시 그 성과다. 중국 공안은 지난해 6월 탈북자 등 200여 명에게서 158억 원을 가로채고 중국으로 도피한 탈북자 한 아무개 씨를 검거했고, 같은 해 11월엔 보이스피싱 조직 일당 7명을 잡는 등 한국인 도피사범을 한국 경찰에 넘기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범죄자들 도피처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한 밀항 브로커는 “중국이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인식은 지난해부터 이미 퍼졌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보다는 필리핀을 원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중국으로 갔다가 다시 필리핀 쪽으로 옮기는 것”이라면서 “필리핀의 경우 입국해서 돈만 주면 얼마든지 다시 여권을 만들어 생활할 수 있다. 또 중국보단 공조가 덜 돼 있다. 그래서 한국인 범죄자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했다. [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