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과 네덜란드 또는 제3국을 바쁘게 오가는 정신없는 나날이 될 것 같아요. 아마도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 중 ‘가장 비행기를 많이 탔던 해’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왜냐고요? 올림픽대표팀과 성인대표팀에 발탁되는 바람에 네덜란드 ‘본가’와 ‘처가’(?) ‘외가’를 경기 중요도에 따라 열심히 오가야 할 테니까요. 사실 작년엔 부상으로 제일 한가한 시간을 보냈잖아요.
김호곤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대표팀에는 처음 합류하는 거라 사실 좀 걱정이 돼요. 발 한 번 맞춰 보지 않은 선수들과 조직력을 극대화시키며 좋은 플레이를 보여준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더욱이 (이)천수와 제가 들어가면 올림픽대표팀이 달라질 거라는 기대가 굉장히 부담스럽네요. 그래서 나름대로 양쪽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고 잘 굴러갈 수 있는 박지성의 생존 방법을 연구해봤어요.
올림픽대표팀에선 제 존재를 보여주기보다는 팀에 적응하는 걸 우선 목표로 삼았습니다. 처음 보는 선수들과의 인간관계는 물론 코칭스태프와도 제대로 호흡을 맞춰 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성인팀은 서로 훤히 꿰고 있는 형들이 있어 오히려 부담도 덜 되고 마음도 편해요. 그래서 적응이 아닌 저의 베스트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성인팀에서 제 플레이가 살아나야 네덜란드 리그 경기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뛰겠습니다.
참, 올림픽에서 뛰던 선수들이 성인팀에 합류하면 본의 아니게 선배들 눈치를 본다는 지적이 있는데 그건 겪어보지 않고는 그 심정 모를 거예요. 저 또한 성인팀에 처음 발탁됐을 때는 이런저런 일로 적잖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어요.
예를 들어 마사지를 받기 위해 의무실에 누워 있으면 형들이 뼈있는 농담을 던졌거든요. “야, 네가 마사지 받는 걸 보니까 오늘 운동 많이 힘들었나보다”하고 말하는데 배짱 좋게 누워 있을 후배는 아마 없을 거예요.
해외에선 그런 ‘위계질서’는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곳 에인트호벤팀은 나이 많은 고참들이 식판 들고 돌아다녀도 ‘쫄다구’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앉아 먹던 밥을 다 먹을 수 있답니다. 신기한 것은 한국만 들어가면 제 몸이 저절로 위계질서에 동참하게 된다는 사실이죠.
연이은 국제대회에서 한국의 성적은 물론 개인 성적까지 잘 챙길 수 있는 ‘현명한’ 박지성이 될 수 있기를 소원하며 이만 인사드립니다. 조만간 한국에서 뵐게요.
1월30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