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레바논전이 끝나자마자 숨 쉴 틈도 없이 네덜란드로 날아온 덕분에 이제야 조금은 시차적응도 되고 호흡도 고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한국에서 대표팀 선수로 생활하는 동안 정말 오랜만에 행복함을 만끽했어요. 최근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풀타임을 뛴 지가 까마득하기 때문에 대표팀의 출전 자체가 행운이었고 소중한 또 다른 경험으로 작용했어요.
2001년, 2002년 월드컵을 위해 참으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던 선수들과 눈빛만으로 모든 언어가 전달되는 그라운드의 빠른 전개 상황 속에서 절묘한 패스로 연결되는 플레이들이 짜릿한 흥분을 안겨주었거든요.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요. 이번에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축구팬이나 대표팀을 위해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대표팀 경기를 통해 내 자신을 추스르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고 급박하다는 조금은 개인주의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만큼 경기장에 서는 게 절실했고 또 그리웠어요.
J리그 교토 퍼플상가의 끈질긴 구애를 물리치고 에인트호벤으로 올 때만 해도 주전 자리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가고 싶었던 훌륭한 팀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에 모든 초점을 맞췄었죠. 어떤 형태로든 유럽 축구의 맛을 조금이라도 보고 싶었던 거예요.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은 아시아나 유럽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비슷한 수준인 것 같으면서도 유럽 선수들한테는 우리가 갖지 못한 ‘뭔가’가 있더라고요.
결론은 어렸을 때부터 접하는 축구 환경이었어요. 흙과 잔디, 스파르타식 훈련과 자율훈련, 수동과 능동적인 축구 환경이 결국엔 성인이 됐을 때 ‘뭔가’가 있고 없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환경 탓만 하며 포기하고 있다면 그 또한 바보나 마찬가지겠죠. 환경은 부럽지만 타고난 환경을 이길 수 있는 길은 노력과 끈기 외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더라고요. 축구가 노력만으론 되는 운동이 아니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게 노력이기도 해요. 그래서 다른 재능이 없어도 ‘한노력’하고 ‘한끈기’하는 전 자신이 있습니다.
앞으로 12경기를 마치면 후기리그가 끝나요. 그 시간이 지나면 박지성의 앞날도 가닥이 잡히리라고 봐요. 그 가닥이 꿈을 이어가는 가닥일지, 아니면 잠시 후퇴해서 돌아가는 방향이 될지는 두고 봐야겠죠. 제발, 부디, 전자이길 간절히 바라고 소원하면서 펜을 놓습니다.
2월22일 에인트호벤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