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건’ 쏙 빼놓고 평가했다 하시면…
A. “도대체 이번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졌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가요?”
B. “항상 해오는 평가인데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을까요?”
‘외부 평가’라는 같은 상황 앞에서 검찰(A)과 법원(B)의 반응은 극명하게 달랐다. 대한변호사협회(회장 하창우)는 지난 19일 사법사상 첫 검사 평가 결과를 발표했고, 다음날인 20일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가 법관 평가 결과를 공개했다. 검사는 상·하위 각각 10명이 선정됐지만, 판사의 경우 상위 8명에 하위 18명이나 뽑았다.
지난 19일 대한변호사협회는 사법사상 첫 검사 평가 결과를 발표했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로 검찰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요신문DB
집중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은 검사 평가였다. 아무래도 사법사상 처음으로 시행된 만큼 법조계 안팎의 시선이 집중된 것이다. 단신처리를 해버린 <중앙일보>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 언론들이 검사 평가 발표 내용을 사회면 톱 등에 주요기사로 다룬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법관 평가 결과의 경우 <한겨례>처럼 아예 지면에서 다루지 않거나, 기사를 썼더라도 소박스 정도로 처리한 언론이 대부분이었다. 기사의 비중만 보면 일반인들에게는 ‘나쁜 판사’보다 ‘나쁜 검사’가 더 많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그러니 검찰이 발끈하고 나선 것도 사실상 무리가 아니었다. 검찰의 한 고위 인사는 “변협이 공개한 사례들을 보면 강압 수사, 막말, 인권침해 뭐 이런 사례들이 있는데 그 내용을 잘 보면 본인의 권력을 과시하려는 욕심에서 한 발언들이 주로 보이고 있다”며 “개인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한 발언이 아닌 만큼 오히려 수사를 좀 더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공개된 사례에 따르면 한 검사는 조사받던 피의자가 ‘심장병이 있다’고 호소하는데도 책상을 내리치고 고함을 지르면서 겁을 줬다고 한다. 또 고소인에게 ‘내가 하는 일에 태클을 걸려면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 청와대 법무비서관 정도 동원해야 한다’거나, 사기 피해자 변호인에게 “사기당한 놈이 미친놈 아니냐”고 얘기한 사례도 있었다.
애써 이해하려 한다면 고위 인사의 말처럼 결코 용납하지 못할 정도의 사례들은 아닌 셈이다. 더욱이 판사들의 막말이나 독선적 재판 진행 사례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자 공개된 사례들을 한번 보자.
서울지역에 근무한 A 판사는 원고·피고 변호사에게 “항소 이유를 설명하는데 1분씩입니다. 시간 지나면 다음 사건으로 넘어갑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곤 실제 발언이 1분을 넘기자 A 판사는 “다음 사건 진행하겠다”면서 변호사에게 법정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또 한 판사는 법정에서 변호사에게 “한심하다, 한심해. 무슨 삼류 드라마 같아서 실체적 진실을 찾을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에 같은 사건을 해봐 더 볼게 없다’며 재판 결과를 예고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음주 운전 사건에서 검사가 집행유예를 구형하자 “피고인과 친구냐, 왜 이렇게 봐줘”라는 반말을 일삼는 판사도 있었다. “그래서, 그게 뭐?”라며 반말한 판사, 이혼사건에서 “부잣집에 시집가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지 않았느냐. 도대체 얼마나 더 원하느냐”며 마초적 성향을 과감 없이 드러낸 판사도 있었다.
판사 출신의 한 중견 변호사는 “판사들의 발언을 보면 정말로 심각할 정도로 인신공격이 심하다”며 “오히려 막말이나 인격모독 등에 있어서 검사보다 판사들이 더 ‘저질’인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다른 검찰 고위 관계자도 “8년 동안 평가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서울변회 평가에서 4년간 줄곧 최하위 판사로 평가되고 있는 사람이 법원장 승진 대상이라는 것도 법원이 얼마나 법관 평가를 우습게 보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왜 검찰만 이렇듯 집중포화를 당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검찰 최고위 간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권한이 너무 커지고 있는데 대한 견제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평가’에 대해 검찰이 강하게 반발하는 대신 법원이 여유 있게 대응하는 것도 이런 기류를 잘 읽고 있기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검찰에 미운털이 박힌 것은 그동안 정권 편향적으로 처리한 정치적 사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가정보원 댓글사건이나 청와대 문건 유출사건, 가토 전 지국장 사건 등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들을 처리해온 방식들이 거듭 문제가 돼왔다. 이 때문에 변협도 이번에 정치적 사건에 대한 평가를 집중적으로 하려 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제보가 많지 않았던 데다, 그렇지 않아도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정성 시비가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 평가 항목 중 정치적 사건 부분을 빼버린 것으로 전해진다. 변협의 한 관계자는 “처음으로 검사를 평가하는 것이란 한계가 분명히 존재했던 만큼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라며 “사실 검사를 평가할 때 정치적 사건을 배제한다는 것은 검찰의 본질적 속성을 외면한 채 외형만 평가하는 것과 같다. 평가를 거듭할수록 그 같은 사건들을 평가할 수 있는 노하우를 늘려가는 게 최종 목표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김성훈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