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찬호(위), 디아즈 | ||
올 시즌 메이저리그를 빛낼 한국 투수들과 각 팀 포수들이 어떤 호흡을 보여줄지, 그리고 그들의 궁합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지 미리 살펴보자.
지난 몇 년간 박찬호(31·텍사스 레인저스)에게는 늘 ‘전담 포수’가 배정됐었다. LA 다저스 시절에 주전 포수 폴 로두카 대신 후보인 채드 크루터가 그의 공을 받았고, 텍사스로 이적 후 부상으로 인한 부진이 계속되자 팀에선 크루터를 데려오는 궁여지책을 쓰기도 했었다.
그러나 올 시즌 재기를 노리는 박찬호에게 더 이상의 전담 포수는 없다. 대부분의 경기를 주전 포수인 에이나 디아즈(32)와 호흡을 맞춰야 한다. 이미 스프링캠프의 불펜 피칭에서부터 디아즈가 주로 박찬호의 공을 받으며 서로를 익혀가고 있는 중이다.
외향상 디아즈는 박찬호가 선호하는 포수는 아니다. 다른 투수들도 마찬가지지만 박찬호는 특히 큰 체격의 포수를 선호한다. 공을 던지는 데 체격이 좋은 포수의 미트질이 훨씬 안정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아즈는 177cm의 작은 키에 포수로서는 다소 왜소한 체구를 지녔다.
제구력이 그다지 뛰어난 편이 아닌 박찬호에게는 ‘투구 타깃’이 작다는 점이 아쉬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구단에서는 볼배합이 좋은 디아즈가 피칭 스태프에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레인저스 투수진의 작년 방어율은 5.47로 2002년의 5.20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디아즈는 8, 9번 타자에 기용될 정도로 타격 역시 허약하다. 수비력과 볼배합 능력이 좋은 수비형 포수로 분류되면서도 작년에 도루 저지율이 31%에 그치는 등 잦은 부상 이후 수비력이 정상급은 아니다. 박찬호로서는 오히려 마이너리그의 유망주인 제랄드 레어드가 빨리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편이 낫다.
작년 시즌 종반에 빅리그 게임에 19번 기용되는 등 레인저스가 희망을 걸고 있는 레어드는 187cm의 키에 당당한 체격을 지녔으며, 공격력도 디아즈보다는 한 수 위로 평가된다. 올 시범 경기에서 레어드가 좋은 모습을 보인다면, 박찬호에게 또 다른 전담 포수가 생길 가능성도 있다.
디아즈가 되든 레어드가 되든 필요한 것은 박찬호가 적극적으로 포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친하게 지내면서 팀워크와 호흡을 맞춰 가는 일이다. 크루터가 포수 마스크를 쓰면 박찬호가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던 것도 둘이 자주 만나고 함께 식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신뢰를 쌓아갔기 때문이었다.
▲ 김병현 배리텍(왼쪽), 서재응 필립스 피아자 | ||
특히 블로킹 능력이 아주 뛰어나 메이저리그에서 다소 생소한 서브마린 스타일인 김병현이 마음 놓고 공을 던질 수 있으며, 송구력도 정확하고 어깨도 강한 편이다. 도루 저지에 약점을 지닌 김병현에게는 다행이지만, 결국 도루는 포수의 책임보다는 투수의 책임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김병현의 노력이 더욱 필요한 부분이다.
배리텍은 타석에서도 김병현의 큰 도우미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시즌 배리텍은 25홈런 85타점 등 생애 최고의 기록을 올리며 바야흐로 타격에 눈을 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번 타자로 주로 기용되면서 이런 성적을 올렸다는 것은 대단한 기록으로, 특히 결정적인 순간에 적시타와 홈런을 많이 때렸다.
스위치 타자로 타율도 꾸준히 향상되고 있는 배리텍은 김병현과도 자주 호흡을 맞췄으며, 김병현이 멋진 마무리로 세이브를 기록하면 가장 먼저 달려나와 축하해주는 팀 플레이어다.
김병현 역시 조금 더 인간적으로 배리텍과 친해지면서 상호 신뢰를 쌓는다면 올 시즌 선발 전업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수가 바로 포수 배리텍이다.
뉴욕 메츠의 4선발 서재응(27)은 포수 복이 많은 선수다. 현존하는 최고의 공격형 포수인 마이크 피아자와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찰떡 궁합으로 알려진 제이슨 필립스 등 두 명의 포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3개월 이상을 쉰 피아자는 2004년 시즌에는 반드시 재기할 것이라며 훈련에 몰두하고 있다. 칼턴 피스크가 보유한 포수 최다 홈런인 3백51개에 4개 차로 따라붙은 피아자는 일단 메이저리그 최고 기록을 세우면 1루수로 전향한다는 소문이지만 본인은 여전히 포수를 고집하고 있다. 35개 이상의 홈런에 1백 타점 이상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녀 타석에서는 서재응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피아자는 일반적으로 볼 배합 능력이 시원치 않고, 송구 능력은 최악의 수준이라 수비 측면에서는 평균치 이하의 포수로 평가된다. 그렇지만 서재응은 “피아자가 포수로 나서면 오히려 성적이 더 좋았다”며 호흡을 맞추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피아자가 시즌 초반 한두 경기를 제외하고는 서재응의 스타일과 장점 등을 파악한 후부터 아주 편안한 투수 리드를 해주었다는 것.
필립스가 포수 마스크를 쓴다면 서재응에게는 더욱 좋은 일이다. 작년에도 하우 감독은 서재응의 경기에 주로 필립스를 포수로 기용했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계속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둘은 눈빛만 봐도 상대의 의중을 꿰뚫을 정도로 통한다.
필립스는 공격력과 수비력을 겸비한 선수다. 피아자의 파워를 지니지는 못했지만 20∼25홈런에 70∼80타점을 올릴 수 있으며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녔다. 루키였던 작년에 14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기도 했고, 메츠 팀 역사상 5천 번째 홈런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었다.
필립스는 수비력이나 송구 능력, 볼배합 등에서 모두 수준급으로 평가돼 정상급의 포수가 될 가능성을 지녔다. 필립스가 마스크를 쓰면 서재응이 마운드에서 고개를 젓는 모습을 보기 힘들 정도로 서로 잘 통하기 때문에 서재응에게 최상의 시나리오는 필립스가 포수를 하고, 피아자는 1루수에 기용돼 공격력을 발휘해주는 것이다.
하우 감독은 올 시즌 피아자를 1루에도 종종 기용할 것으로 보인다. 작년에도 서재응의 경기에는 필립스가 마스크를 쓴 경우가 많아 최상의 시나리오가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은 아주 높다.
민훈기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