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수전 제5국 장면. 흑을 쥔 도전자 최철한 당시 6단이 이창호 9단을 누르고 타이틀을 따냈다. | ||
최철한 7단은 2004년 시즌이 열리자마자 국수전과 기성전, 2개 기전에서 연거푸 이 9단에게 도전장을 띄웠다. 두 기전은 모두 도전5번기, 다섯 번을 싸우는 것인데, 어느 한쪽이 세 번을 먼저 이기면 끝난다. 5번기란 5전 3선승제인 것.
최 7단은 3월5일 열린 제15기 기성전 도전5번기 제2국에서도 흑을 들고 223수 만에 불계승, 제1국의 패배를 설욕하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2003년 시즌에는 청년 이세돌(21)이 이창호 아성의 한쪽을 허물며 기세를 올리더니, 2004년 시즌에는 최철한(19)이라는 또 다른 청년이 이창호 아성의 한쪽을 다시 허물고 있는 것. 국수전에서 기성전으로 이어지는 두 사람의 도전10번기도 현재 최 7단이 4승3패로 리드하고 있다. 단판 승부라면 모를까, 이른바 번기에서 이 9단이 밀리는 것도 유례가 없던 일이다.
지난 1988년 첫 타이틀 쟁취 이후 15년 동안 단 한 번의 굴곡 없이 상승가도를 달려오면서 누구의 도전에도 흔들리지 않았던 이창호 9단이 마침내(?) 2003년 시즌부터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모습이다.
최철한 7단은 1985년생. 이 9단보다는 꼭 10년 아래다. 권갑룡 7단 도장에서 공부하다가 1997년에 입단했다. 입단 7년차. 원성진 5단, 박영훈 5단과 소띠 동갑으로 신예 중에서는 성적이 좋아 ‘송아지 3총사’로 불리는데, 지난 시즌까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가 최근 최 7단이 스퍼트하고 있다. 동료 두 사람보다 한 걸음쯤 앞으로 튀어나온 모습이다.
정말 이창호가 이제는 흔들리고 있는 것일까. 최철한이 과연 그렇게 강한 것일까. 바둑계의 중론은 “이창호가 흔들리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최철한이 이창호에 필적할 실력자로 성장한 것은 사실”이라는 것. “게다가 최 7단의 경우, 이창호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
‘이창호를 이기는 방법’의 일반론은 이렇다. 이 9단은 물론 바둑의 전 부분이 다 강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형세판단과 종반 계산, 끝내기 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따라서 바둑이 중반 이후에도 계가바둑의 양상이 되면, 거기서부터는 이 9단을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그렇다면? 잔바둑, 계가바둑으로는 승산이 없으므로 흥하든 망하든 난전으로 가야 한다는 것. 난전을 벌인다고 이긴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거기에 있다는 것.
2003년 시즌에 이세돌 9단이 이창호 9단에게 LG배를 쟁취할 때, 보여준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그 점에서 이세돌과 최철한은 비슷한 점이 있는데, 바둑계의 관측통들은 “이세돌이 이 9단의 대항마로 빛을 발하기는 했으나, 앞으로는 이세돌보다는 최철한을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난타전이나 흔들기에서는 이세돌의 펀치가 최철한의 펀치보다 날카롭고 파괴력도 높다. 대신 이세돌은 조금 가벼운 면이 있다. 펀치를 적중시키지 못하면 이창호의 두터움에 말려드는 모습을 보게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최철한은 전투도 강하면서 두텁다. 이창호의 두터움이나 계산력에 밀려 허망하게 무너지지 않는 힘이 있다는 것인데, 그게 이창호와의 싸움에서 아주 좋은 무기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은 잘 모르는 것. 타이틀 한두 개에 바닥을 드러낼 이창호의 저력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이창호는 바둑외적인 여건이 썩 좋지만은 않은 것이 사실이기는 하다. 상대가 조훈현 9단이나 유창혁 9단 같은 선배가 아니라 10년 가까운 후배라는 점, 정상에 머문 지가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스스로 느끼는 긴장의 강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 더 이상 추구할 목표 같은 것이 점점 희미해진다는 점, 그런 등등의 것들이 이창호에게는 대개는 마이너스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