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기간 시계 멈춰…‘살인죄’ 아직 살아있다
19년만에 잡힌 범인의 살인사건 현장검증 모습. 대구지방경찰청 제공 영상 캡처.
A 씨는 경찰조사에서 “C 씨가 주차장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따라갔더니 본인 트럭에서 괭이를 꺼내 나를 내리치려 했다”며 “그걸 피해서 C 씨를 넘어뜨렸고 목을 졸라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C 씨를 살해한 A 씨는 C 씨 트럭 조수석에 C 씨의 시신을 싣고 직접 트럭을 운전해 이동했다. A 씨가 도착한 곳은 범행현장에서 약 11㎞ 떨어진 옥포면 구마고속도로 변이었다. A 씨는 C 씨의 시신을 고속도로 옆 수로 안쪽에 넣고 시신을 불태웠다.
경찰에 따르면 범행 다음날 A 씨는 창원시에 사는 A 씨의 누나를 찾아갔다. 여기서 A 씨는 누나에게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실토했다. 누나는 A 씨가 용돈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해 10만 원을 주고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도 A 씨는 누나에게 전화해서 “누나가 관리하고 있는 내 통장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A 씨 누나는 통장을 A 씨에게 전달했고 이후 A 씨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통장기록도 97년 1월 A 씨가 돈을 인출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당시 파출소에서 근무하던 A 씨의 누나는 의심을 품고 이 같은 내용을 창원경찰서에 설명했다. B 씨 역시 비슷한 시기에 종적을 감췄다.
한편 C 씨의 아버지는 C 씨가 실종되자 달성경찰서에 가출신고를 했다. 시간이 지나도 C 씨가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이 돈 문제로 C 씨를 살해한 게 아닌지 알아봐달라”며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달성경찰서 역시 관련 수사를 시작했으나 수로에 있었던 C 씨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시신은 다음해인 97년 6월 한 등산객에 의해 발견됐다. 오랫동안 비가 오면서 시신이 30m 가량 흘러내려와 수로 바깥으로 나온 것. 경찰 수사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당시 시신을 발견한 달성경찰서는 변사사건으로 처리해 조사에 들어갔고 앞서 A 씨 누나의 제보를 접했던 창원경찰서는 이를 살인 및 시체유기사건으로 인지했다. 결국 창원경찰서는 A 씨와 B 씨를 전국에 지명수배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했지만 결국 범인을 검거하진 못한 채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2011년 12월 7일부로 해당 사건은 공소시효까지 완료됐다.
그런데 공소시효가 완료되고 수사가 종결된지 4년여 만에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해 11월 초 한 남녀가 주상하이 대한민국총영사관에 밀항했다고 자수한 것. 영사관 측은 여권이 없었던 이들에게 “중국 공안으로 가서 강제추방 당하면 한국에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공안에서 약 2개월 동안 구류처분을 받은 후 한국으로 강제추방당할 예정이었다. 강제추방 하루 전인 12월 29일 중국 공안은 한국에 상황을 설명했고 국내 경찰은 이들의 인적사항을 조사했다.
대구지방경찰청.
다음날 대구지방경찰청 소속 형사들이 인천국제공항으로 파견됐다. 형사들은 공항 내 의자에 앉아있던 A 씨를 밀항단속법 위반혐의로 긴급체포했다. A 씨는 처음 경찰조사에서 밀항 사실은 시인했지만 살인혐의에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A 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맞섰지만 경찰 역시 당시 통화 기록 등 증거를 내세웠고 결국 A 씨는 살인범임을 시인했다. 이어 지난 1월 6일 국내 경찰의 요청으로 B 씨도 한국으로 송환됐다. B 씨는 살해사건과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A 씨는 첫 진술에서 밀항 날짜를 1997년 1월이라고 말했으나 이후 2014년 4월이라고 번복했다. 경찰은 이를 공소시효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피의자가 외국에 나가있는 기간은 공소시효 기간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96년에 일어난 이 사건은 15년의 공소시효를 적용받아 사건이 종결됐지만 이들이 97년에 밀항했다면 공소시효 적용을 받지 않는다. 경찰은 A 씨가 97년 이후 각종 세금과 공과금을 납부한 기록이 없는 등 한국에서의 흔적이 없다며 밀항시기를 97년 1월로 보고 있다. 피의자들은 2014년에 밀항했다고 주장할 뿐 그동안의 한국과 중국에서의 생활에 대해서는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
사건 당시 B 씨에게는 각각 5살, 3살 난 자식들이 있었고 사건 이후 친척집에서 자라왔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이들을 위해 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경찰은 기자에게도 “나중에 자식들이 기사를 보고 혹시 자기 부모님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으니 성을 쓰지 말고 영문 이니셜로 표기해주길 바란다”고 부탁했다.
한편 19년 전 해당 사건을 맡았던 이근두 전 창원경찰서 형사는 “철저하게 수사했으나 A 씨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며 “구마고속도로를 지나가면 항상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 생활 하면서 미제사건으로 남겨 놓은 유일한 사건인데 드디어 해결돼서 기쁘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