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한 쎈돌, 라이벌 ‘도발’에 그냥 웃지요
이세돌 9단(왼쪽)과 커제 9단이 설 연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리는 하세배에서 다시 맞붙는다. 몽백합배(사진)에서 전 세계 바둑팬을 열광시킨 두 사람이 이번엔 어떤 승부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사진제공=한국기원
일진일퇴 속 최종국까지 가는 치열한 공방. 그리고 마지막 5국은 한국룰이면 이세돌 9단의 승리였지만 중국룰이기 때문에 커제의 반집승이 된 몽백합배 결승전은 끝난 다음에도 한국과 중국 양쪽에서 화제가 이어졌다.
먼저 승리한 커제의 인터뷰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커제는 5국이 끝난 후 가진 인터뷰에서 “삼성화재배 준결승전 때와는 달리 이세돌 9단의 컨디션이 아주 좋았다. 솔직히 이번에는 내 쪽이 컨디션이 좀 안 좋았다”고 말해 국내 팬들의 심기를 자극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데도 이기다니, 한마디로 이긴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라는 것.
“이세돌 9단의 수읽기가 참 뛰어나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뒤늦게 커제가 부연 설명을 덧붙였지만 ‘내가 이길 확률은 95퍼센트, 이세돌은 5퍼센트’라는 도발적인 발언과 함께 ‘커제=건방진 기사’라는 낙인이 또 한 번 국내 팬들에게 찍혔다.
하지만 커제는 다시 자국 내 인터뷰를 통해 “결승전을 앞두고 이세돌을 자극한 것은 일종의 심리전이 맞지만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면서 “사실 몽백합배에서 나의 승산을 95%라고 큰소리쳤던 이유는 스폰서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커제는 또 “내 발언 중 일부는 몽백합배를 후원하는 업체가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일부러 그렇게 말한 부분도 있다. 대회를 후원하는 스폰서가 많아지면 우리 프로기사들한테 다 좋은 일 아닌가. 작년 이광배가 폐지되는 바람에 프로기사들이 모두 마음 아파했고 위기감도 느꼈다. 예전에는 스폰서들이 바둑을 좋아해 기꺼이 후원했지만 지금은 비즈니스 사회다.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회가 흥미를 끌 수 있도록 기사들도 노력해야 한다”며 자신의 발언이 바둑 발전을 위한 비즈니스적 측면이 있었음을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한편 국내로 돌아온 이세돌은 박정환에게 KBS바둑왕전을 내줬지만 명인전 결승에서는 3-1로 승리, 한숨 돌렸다.
이세돌은 3판2승제 바둑왕전에서 먼저 1승을 거둬 타이틀 획득이 유력해 보였으나 내리 2연패를 당하며 몽백합배에 이어 2연속 준우승에 머물렀다. 바로 이어진 명인전 결승5번기에서도 먼저 2승을 따냈지만 3국에서 박정환에게 반격을 허용, 위기에 몰렸지만 4국에서 결판을 내며 오랜만에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다.
이세돌은 커제와의 대결 후 “삼성화재배 준결승에서 졌을 때는 커제에 대해 너무 몰랐다. 하지만 한번 겪어봤기에 몽백합배 결승은 내심 자신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패했지만 얻은 것도 있었다. 최근 특별한 목표나 의욕이 없었는데 이번 결승전을 통해 오랜만에 짜릿한 긴장감을 맛봤다”고 말하며 “커제가 아직 어려서인지 바둑의 깊이는 떨어진다. 깊이가 없는 바둑은 언젠가 꺾이기 마련이다. 커제가 세계대회 3관왕이라고는 하지만 과연 그에 걸맞은 내공을 갖췄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 기세가 좋지만 우리 후배 기사들이 꺾지 못할 상대는 아닌 것 같다”고 커제를 상대해본 소감을 말했다.
하지만 이세돌도 커제의 도발적인 발언에 대해서만은 이해했다.
“나도 어릴 적에는 선배들의 판에 박힌 인터뷰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거나, 한수 배우겠다는 등의 출사표는 팬들의 흥미를 끌거나 시선을 유도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팬들의 재미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인터뷰를 많이 했다. 커제의 발언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한다”는 대범함도 보였다.
설 연휴 기간에 열리는 하세배는 제한시간 없이 30초 안에 1수씩 두어나가는 초속기 기전. 대국 중간 1분씩 10회를 사용할 수 있다. 이는 현재 이세돌 9단이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는 중인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과 같은 방식이다.
하세배에서 한국은 아직 우승컵을 들어 올린 경험이 없다. 중국의 스웨와 퉈자시가 차례로 우승했고, 한국은 이세돌이 3위, 김지석이 준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이세돌과 커제가 이번엔 어떤 이야기 거리를 만들어줄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유경춘 객원기자
바둑 신간 <고수경영> 경영도 바둑처럼 ‘수읽기’를 해라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교수 정수현 9단이 바둑과 경영을 융합한 신간 <고수경영>을 출간했다. 총 10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저자는 바둑 한 판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경영의 핵심원리를 깨치도록 하고 있다. 저자 정수현 교수는 “경영도 바둑처럼 수읽기를 해 미래를 내다봐야 하고 세력과 자원을 효과적으로 살려야 한다”면서 “비즈니스는 바둑과 같다”고 설명한다. 272쪽, 1만 4000원, 더메이커(031-973-8302). [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