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한 ‘요물’ 때문에 꽃청춘도 깜빡깜빡
살면서 누구나 이런 경험은 수없이 해봤을 것이다. 분명히 아는 사람인데 이름이 기억이 안 난다거나 혹은 열쇠를 어디다 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아 답답했던 경험 말이다. 나이가 들면서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하지만 연령대에 따라 나타나는 기억력도 다르다는 사실을 아는지. 가령 20대에 나타나는 건망증과 60대에 나타나는 건망증 증상은 다르다. 가령 20대의 경우에는 IT 기기의 발달로 인한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고, 50대의 경우에는 비록 건망증은 심해질지 몰라도 ‘퀴즈 천재’라도 된 듯 낱말풀이를 척척하기도 한다. 영국의 <데일리메일> 온라인판이 소개한 각 연령대별 나타나는 기억력 감퇴 현상에 대해 살펴봤다.
휴대전화, 컴퓨터, 기타 전자기기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 인간의 뇌는 정보를 적절히 처리하고 저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사진은 영화 <인턴>의 한 장면.
# 20대: ‘IT 때문에 자꾸 깜박 깜박’
인간의 뇌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다가 25세가 되면 정점을 찍는다. 이때가 되면 뇌의 능력은 최고에 달한다. 또한 뇌의 무게 역시 가장 무거울 때이며, 더불어 저장 능력, 상호 연관 능력, 정보 기억력도 최고조에 달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20대는 그 어떤 다른 연령대보다 처음 만난 사람의 이름이나 전화번호를 잘 기억하며, 숫자를 머릿속에 오랫동안 저장하기 때문에 암산도 잘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곱 명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현대 사회를 사는 청년들 가운데 기억력 감퇴를 호소하는 경우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다. 이런 증상은 주로 너무 많은 일을 동시에 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난다.
이를테면 휴대전화, 컴퓨터, 기타 전자기기를 동시에 사용할 경우 정보를 적절히 처리하고 저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는 뇌의 해마 영역 때문일 수 있다. 해마는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주의가 산만할 때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게 된다.
대개는 나이를 불문하고 건망증 증상이 나타나는데 건강한 성인의 경우, 나이와 성별, 지적 능력에 상관없이 일주일에 6회가량 깜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예: 커피병을 냉장고에 넣고 잊는다).
# 30대: ‘출산 후 건망증’
아직은 동안일지 몰라도 무언가를 기억하는 뇌의 능력은 이미 서서히 쇠퇴하고 있다. 이는 자연스런 노화 과정으로, 뇌세포 사이에 정보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의 분비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30대가 되면 뇌의 크기에도 변화가 일어나는데 10년마다 약 2%의 비율로 점차 작아지게 된다. 이는 기억력과 사고력을 관장하고 학습 능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전두엽의 세포가 죽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새로운 기술이나 외국어를 배우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며, 새로 알게 된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더 힘들어진다.
깜박하는 증상은 여성들에게서 특히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유는 바로 출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보통 ‘베이비 브레인’ 증상(아이를 낳은 후 종종 깜박하거나 주의가 산만해지는 증상)을 겪게 된다. 이는 임신과 출산, 그리로 모유 수유로 인한 급격한 호르몬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런 현상이다. 바로 출산이나 모유 수유를 할 때 많이 분비되는 옥시토신의 농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임신한 여성들과 임신을 하지 않은 여성들로 나누어서 진행한 브래드포드대학의 실험도 이를 증명했다. 피실험자들에게 열쇠를 어디다 두었는지, 또는 자동차를 어디에 주차했는지 등을 기억하도록 한 결과, 임신한 여성들의 경우에 기억을 더 못했다.
또한 이런 경우 출산한 지 3개월 후에 호르몬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와도 기억력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상심할 필요는 없다. <뉴사이언티스>에 실린 분석 자료에 따르면, 엄마가 되면 비록 기억력은 감퇴하고 주의가 산만해지긴 하지만 감정이입, 공감하는 능력, 추리력, 분별력은 더 향상됐다. 이는 모두 아기를 보호하고 돌보는 데 필요한 능력이다.
# 40대: ‘나도 혹시 알츠하이머 초기일까?’
은행의 ATM 창구 앞에서 카드 비밀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망설였던 적이 있는가? 아마 이런 경우 몹시 당황스러울 것이다. ‘혹시 벌써 치매는 아닐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치매는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이런 깜박거림은 40대에 흔히 나타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증상이다.
메이요클리닉의 연구진이 30~95세 성인 1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경우 40세 무렵에 기억력이 감퇴한 경험을 했다. 주된 이유는 해마의 크기가 30세부터 60대 중반까지 서서히 작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뇌세포를 연결하는 신경이 손상돼 두뇌 속에 저장된 정보를 불러내는 데 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40세가 될 때까지 이미 상당한 양의 정보를 뇌 속에 저장해두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뇌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불러내는 작업이 거대한 도서관 안에서 원하는 책을 찾아내는 작업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주 단순한 일도 기억하는게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는 뭘까? 문제는 현대 사회의 정보 과부하 때문이다. 바로 인터넷, 스마트폰, 그리고 수없이 많은 TV 채널을 통해 쏟아지는 정보들이 그렇다. 이렇게 넘쳐나는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저장하기 위해서는 단기 기억 공간에 저장되어 있는 불필요한 정보를 버려야 한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정보들은 자연스럽게 잊히는 것이다.
이밖에 키보드를 두드리는 습관도 기억력 감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무언가를 작성할 때 손으로 쓰는 대신 컴퓨터나 스마트폰 키보드를 사용하는데 이렇게 작성한 정보는 뇌에 깊숙이 저장되지 않는다. 이와 관련, 노르웨이 스타방게르대학의 연구진은 같은 정보도 키보드보다 손으로 쓸 경우 더 오래 기억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편 멜버른대학의 마이클 샐링 교수는 “‘작업 기억(뇌가 여러 정보를 머릿속에 동시에 입력하여 처리하는 능력)’의 용량은 한 번에 일곱 가지다”면서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 기기들은 완벽한 저장 능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도 완벽한 기억력을 보유해야 한다는 기대감이 생기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런 기대감 때문에 조금이라도 건망증이 나타나면 치매부터 걱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중년이 되면 우뇌와 좌뇌 모두를 점차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와 관련, 에딘버러대학의 알렉사 모콤 박사는 “40대가 되면 기억력이 점차 나빠지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만의 법칙을 개발해낸다. 가령 열쇠를 동일한 장소에 두는 식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
# 50대: ‘퀴즈 천재가 된다’
물건을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갔는데 무슨 물건을 가지러 들어왔는지 잊어버린 적이 있는가? 아마 이런 경우에는 치매의 초기 증상이 아닐까 걱정하며 덜컥 겁부터 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억력 감퇴는 50대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일반적인 증상이다. 이는 아마 뇌의 전전두엽 피질(단기 기억을 저장하는 뇌의 영역)이 나이가 들면서 지속적으로 작아지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뇌동맥이 좁아져 뇌로 흐르는 혈류가 예전만큼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50대의 뇌가 전혀 쓸모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습득한 지식을 통해 ‘퀴즈 전문가’가 된다. 일반 상식을 기억해내는 능력과 정확한 낱말을 맞히는 능력은 45~55세에 절정을 이룬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진 바 없지만 세월과 함께 사용하는 어휘가 점차 축적되고, 이렇게 쌓인 어휘를 반복적으로 사용한 결과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어휘량은 아주 고령이 되기 전까지는 감소하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남성의 경우 여성보다 빨리 나타난다. 남성들은 50대에 정점을 찍는 반면, 여성들은 60대 초반에 절정에 달한다. 이는 여성들의 기억력이 대부분 51세 무렵 폐경기와 함께 일시적으로 저하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령 <폐경기에 대한 자연 치유법>의 저자인 마릴린 글랜빌은 “병원에 찾아오는 여성들은 대부분 책의 한 페이지를 읽고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읽는다고 말한다. 이런 현상은 폐경기 여성들 사이에서 흔하게 나타난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 수치가 감소하기 때문이다. 에스트로겐은 집중력, 기억력, 감정을 조절한다. 또한 글랜빌은 “여성들의 뇌에는 에스트로겐 수용기가 있는데 에스트로겐 수치가 떨어지면 인지 능력이 저하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이다. 2009년 <신경병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여성의 호르몬은 폐경기 후에 다시 안정을 되찾으며, 기억력도 예전 수준으로 회복된다.
누군가의 얼굴을 보고 이름이 생각날 듯 말 듯 하는 일은 30세 이하 성인들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60대가 되면 하루에 한 번꼴로 나타난다.
이런 증상을 가리켜 ‘노인성 건망증’이라고 한다. 이런 증상은 60대에 특히 더 자주 나타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보통 습득한 정보는 뇌의 여러 영역에 저장되는데 이렇게 저장된 정보들이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데다, 필요한 정보들을 기억해내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깜박한다고 해서 모두가 알츠하이머로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65세가 되면 1000명 가운데 채 한 명도 안 되는 사람이 알츠하이머로 발전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
이밖에도 어떤 사건이나 번호, 이름을 잊는 것은 집중력을 방해하는 어떤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노인들의 뇌 활동을 살펴본 결과, 노인들은 주어진 작업(가령 요리법을 읽거나 질문지에 응답하는 작성)에 방해를 받은 후 다시 집중하는 것에 더 어려워했다. 또한 방해 요인을 무시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 70대: ‘내비게이션이 필요해’
70대가 되면 목록을 작성하는 것이 매우 필요해진다. 한 기억력 검사에 따르면 평균 연령 79세의 노인에게 서로 연관성이 없는 단어 10개를 한 번 읽게 한 후에 기억해보라고 말하면 대부분 다섯 가지 정도만 기억했다. 반면 25세의 경우에는 거의 대부분을 다 기억해냈다.
때문에 70대가 되면 익숙한 길을 갈 때에도 내비게이션을 더 많이 이용하게 된다. 한 연구에 따르면 70대에는 길을 찾는 시각 기억이 30%까지 저하된다.
또한 70대의 노인들이 가장 많이 불평하는 점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어제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보다 10년 전의 일을 기억하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이다. 이는 격렬한 감정에 휩싸이는 강렬하고 중요한 일상의 사건이 뇌리에 더 깊이 박히기 때문이다. 이런 사건은 뇌의 편도체를 자극해 장기 기억에 저장된다.
사실 인생을 되돌아보면 가장 정확하게 기억하는 시기는 대부분 20대다. 아마도 이 무렵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요크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앨런 배들리는 “이런 현상을 가리켜 ‘회상 절정’이라고 부른다. 20대 때는 대학에 입학하거나 첫 직장에 들어가거나 사랑에 빠지는 등 다분히 인상적인 사건들이 많이 일어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40대, 50대, 60대에는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 또한 보통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는 반복적으로 더 많이 생각하게 되기 때문에 더 부각되는 것이다”라고도 말했다.
# 80대: ‘기억하고 있는 것에 집중하라’
80대가 되면 기억력이 급속히 감퇴한다. 이는 뇌의 혈류 공급과 산소 공급이 예전만 못한 까닭이다. 영국의 ‘알츠하이머병학회’에 따르면 80세 이상의 노인들 여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치매에 걸리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기억력 감퇴를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치매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치매 환자들의 대부분은 심각한 변화를 인지한 주변 가족들이 병원에 데리고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정작 치매 증상이 나타난 본인은 기억력이 나빠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다. 정상적인 80대 노인은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지만, 치매 환자는 그 열쇠의 용도를 잊는다.
다행히 기억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많이 있다. 복잡한 비디오 게임을 배운다거나 운동을 꾸준히 하면 뇌의 혈류를 빠르게 하기 때문에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또한 기름진 생선을 많이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전문가들은 80대가 되면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즐길 것을 권장한다. 가령 자전거, 수영, 테니스 등 한 번 배우면 평생 잊지 않는 ‘절차 기억’을 활용한 취미 활동을 즐긴다. ‘절차 기억’은 나이가 들어도 감퇴하지 않으며, 이는 동작을 수행하는 방법을 기억해내는 데 뇌의 여러 영역이 사용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