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희섭이 연일 홈런포를 가동하며 플로리다 말린스의 주전 1루수로 자리를 굳혔다. 스포츠투데이 | ||
팀내 입지도 콘크리트가 굳어가듯 탄탄해지고 있다. ‘빅초이’는 더 이상 ‘리글리필드의 커브스’(애송이)가 아니다. 프로플레이어스타디움을 누비는 말린스(청새치) 주전 멤버로서 연봉 31만달러의 몇 곱절에 해당하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최희섭과의 인터뷰는 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세련된 빅리거의 달변을 기대하긴 어렵지만, 여전히 순박한 웃음으로 한국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준다. 최희섭의 착한 심성 때문인지, 그를 볼 때마다 솔직하게 ‘이 친구가 정말 야구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지난 16일 푸에르토리코 산후안 이람비톤스타디움에서 열린 몬트리올 엑스포스와의 원정 마지막 경기가 끝난 후 최희섭을 만나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다음은 최희섭과의 일문일답 내용.
─초반 성적이 좋다. 지난해 커브스 시절과는 심리적인 상태부터 달라 보인다.
▲말린스는 작년 월드시리즈 우승팀이다. 그때 분위기가 계속 이어져서 그런지 클럽하우스에 여유와 웃음이 넘친다. 시카고 커브스는 우승에 목마른 팀이기 때문에 타석마다 반드시 안타를 쳐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여기는 그런 게 없다. 커브스에는 답답할 정도로 나이 든 선수들이 많았지만 여기는 젊고 항상 웃음이 넘친다.
─이제 주전 1루수의 입지를 완전히 굳힌 것 같다.
▲시범경기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다. 1루 요원들이 많았는데도 나를 거의 전 경기에 출전시키는 걸 보면서 밀어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주전에 대한 걱정은 처음부터 없었다.
─안타수에 비해 홈런이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닌가.
▲날더러 어떡하라는 말인가(웃음). 안타 치겠다고 마음먹고 휘두르면 홈런이 나오는데. 이런 경우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별로 없을 것 같다. 항상 얘기했듯이 타석에선 홈런보다는 라인드라이브 타구를 많이 날리겠다고 마음먹는다.
─서재응(뉴욕 메츠), 김선우(몬트리올) 등 한국인 투수와 대결할 기회가 많은데.
▲한국인 선수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서로를 한 명의 메이저리거라 여기기 때문에 특별한 감정은 없다. 재응이형과 선우형도 마찬가지일 거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재응이형 공보다는 선우형이 던지는 볼이 무브먼트가 좋기 때문에 치기 어렵다. 선우형의 공을 어떻게 하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더니) 한마디로 지저분하다(웃음).
▲(자주 듣는 질문이지만) 오히려 같은 동양인 선수들이라서 잘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친근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다른 팀에 친한 일본인 선수도 꽤 있다.
─때때로 슬럼프를 겪을 때면 어떻게 대처하나.
▲메이저리그는 한 시즌에 1백62경기를 치른다. 게임은 많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여유를 갖는 게 중요하다. 특히 이 팀은 그런 여유를 갖고 뛸 수 있는 환경이라서 좋다. 커브스에선 한 번의 찬스에서 못 치면 클럽하우스에서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분위기였다.
─프로플레이어스타디움에서 몇 경기 뛰지도 않았는데 관중들로부터 기립박수와 ‘희섭 초이’를 외치는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작년 이맘때쯤 리글리필드에서도 여러 번 겪은 일이지만, 말린스에 와서 이처럼 빨리 적응할 줄 몰랐다. 타석에 섰을 때 관중이 내 이름을 외치는 걸 듣고는 ‘사람들이 나를 아는구나’라고 생각했다(웃음). 물론 기분 좋은 일이다.
─말린스 선수들이 얼마 전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나눠받았는데 부럽지 않았나.
▲더그아웃에서 박수만 쳐주고 있었다(웃음). 팀 동료들이 반지를 받는 걸 보면서 나도 욕심이 났다. 작년 커브스에선 플레이오프 때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했다. 올 시즌에는 나도 열심히 해서 꼭 반지를 받고 싶다.
─팀 동료들과의 관계는 어떤가.
▲미구엘 카브레라와는 마이너리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한 사이다. 여기 와서는 라몬 카스트로(포수), 브래드 페니(투수) 등 많은 선수와 친해졌다. 원래부터 알고 있던 선수들이 꽤 있기 때문에 팀 분위기가 낯설지 않았던 것 같다.
─좋은 활약을 펼친 덕분에 팀 동료들의 시선이 달라졌을 텐데.
▲투수들이 나에게 고마워하는데 이유는 설명 안해도 알 것이다(웃음). 1루에서 송구를 잘 잡아주는 편이라 그런지 다른 내야수들도 편안해 한다.
─시카고에 있을 때 더스티 베이커 감독으로부터 적극 지원을 받았는데, 말린스에 와서는 잭 맥키언 감독의 총애를 받고 있는 듯하다.
▲할아버지 같은 감독이다. 맥키언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부터 나에게 찬스에서 땅볼이라도 굴려서 주자를 진루시키거나 점수를 올리는 걸 주문했다. 그래서 찬스 때 나가면 삼진 당하지 않으려 집중한다.
─당초 ‘플로리다에 주택을 구입하겠다’고 했었는데.
▲아파트 말고 주택을 구입하려고 했는데 원정경기가 잦다 보니 여의치 않았다. 대신 바닷가쪽 아파트를 빌렸다. 여동생(최승희씨)이 시카고에서 이사를 왔다. 조만간 부모님도 이쪽(플로리다)으로 넘어오실 것이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뭘 하나.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 메이저리거는 체력이 필수조건이다. 내 뒷바라지 때문에 고생하는 여동생에게 맛있는 걸 많이 사주고 싶다.
─한국의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홈런을 칠 때마다 한국에 계신 분들이 많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해서 기쁜 소식을 많이 전하겠다.
김남형 스포츠조선 미주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