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폐쇄적인 대표팀 감독선임 문제 등으로 궁지에 몰린 축구협회가 올림픽 메달을 통해 분위기 반전을 노리기 위해 정치적인 판단을 감행했다는 그 내용을 알아본다.
기자와 친분이 있는 기술위원 A씨는 지난 14일 한숨 섞인 고민을 털어놨다. 최근 기술위원들의 마음이 올림픽대표팀쪽으로 쏠리고 있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언론에서 올림픽호에 와일드카드를 몰아줘야한다는 여론을 형성해줬으면 하는 눈치였다. 어차피 외국인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성인대표팀의 경우 오는 7월 아시안컵에서 성적이 나쁘더라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라고 단서를 달았다. 성인대표팀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승을 하더라도 바로 다음 달 열리는 올림픽에서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다면 국민들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푸념이었다.
하지만 그는 두 대표팀 중 어느 곳의 손을 들어주든 여론의 비난을 들을 것은 뻔하지만 올림픽대표팀에 와일드카드를 몰아줄 경우 여론악화가 더 심하지 않겠냐는 우려도 덧붙였다. 성인대표팀은 아버지(감독)와 어머니(감독대행)까지 다 빠져 한마디 불평도 못하는 상황인데 쉽사리 발표를 하지 못하겠다는 전언이었다.
그러나 이틀 뒤 기술위원회는 올림픽호의 엔진 업그레이드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와일드카드를 올림픽대표팀에 배정하겠다는 뜻을 표명한 것. 예상보다 올림픽팀에 대한 지원 발표가 빨라진 배경에는 김호곤 올림픽대표팀 감독의 위험스런 발언이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김 감독은 노골적으로 기자들을 상대로 올림픽호에 지원을 해달라며 축구협회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 지난 3월 올림픽예선 중국전에 나선 선수들. | ||
하지만 올림픽팀 올인 전략은 축구협회의 정치적인 판단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술위원회는 지난 7일 회의를 통해 와일드카드를 우선 아시안컵에 출전시키겠다고 천명한 바 있었다. 기술위원회는 당시 성인대표팀과 올림픽대표팀에 균등하게 선수들을 배치시키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다 9일 만에 이를 백팔십도 뒤집고 올림픽호로 무게중심을 이동시킨 것이다. 해외파의 경우 소속구단에서 두 대회 모두 선수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적인 판단도 가미됐다.
2002한·일월드컵 때 정점을 이룬 대한축구협회의 인기는 오만 쇼크와 몰디브전 졸전으로 인해 추락세를 보이더니 메추 감독 선임문제가 터지면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축구협회가 이를 뒤집기 위해 내세운 카드가 바로 올림픽팀 올인 전략인 것.
일반 국민들이 아시안컵에 대해서는 생소한 데 반해 올림픽에는 열광한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아시안컵 4강보다는 올림픽에서의 메달 획득이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에는 더욱 매력적이다. 축구협회 내부에서도 우선 매(아시안컵)를 맞고 올림픽에서 동메달이라도 딴다면 분위기 상승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조삼모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아시안컵에서 참패한다고 해도 아우들이 동메달이라도 딴다면 분위기는 바뀔 수 있다”며 “와일드카드를 성인대표팀에 남겨둔다고 해도 아시안컵 우승은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어차피 우승을 하지 못할 바에는 올림픽팀을 전적으로 밀어주는 게 낫다는 설명이다.
각국 축구협회의 최대 지원 대상은 성인대표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성인대표팀이 2선으로 밀리고 올림픽대표팀에 대한 지원이 공공연히 선언되고 있다. 결국 축구협회의 정치적인 회생을 위해 성인대표팀이 희생되고 있는 것이다.
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