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률은 확률일 뿐 호도하지 말라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로또 숫자 제공 업체의 분석 시스템 홍보, 홈페이지에 올라온 1등 당첨 후기, 각종 기관 마크.
“로또 당첨이 간절했어요. 그리고 꿈이 현실이 됐지요.”
포털사이트에서 ‘로또’ ‘로또 당첨’ 등으로 검색하면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로또 당첨자 인터뷰의 한 대목이다. 인터뷰의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어려운 삶을 살아왔다. 사업에 실패를 했거나, 뜻하지 않은 해고로 생활고 겪거나, 불어나기만 하는 대출금에 허덕인다. 그런데 어둡기만 하던 그들의 삶에 ‘인생 역전’이라는 한줄기 빛이 떨어진다. 로또 1등 당첨이다.
앞서의 인터뷰는 기사 형태를 그대로 차용해 얼핏 언론사에서 제공하는 뉴스 같아 보인다. 하지만 글의 마지막 부분엔 “특정 사이트에 들어가면 당첨자의 노하우를 확인 가능하다” “특정 사이트에서 제공 받은 숫자로 1등 당첨 됐다”는 등의 공통적인 문구가 들어 있다. 즉, 모두 ‘광고’다.
앞서의 광고들은 하루에 2~3건 씩 꾸준히 포털에 올라온다. 그만큼 로또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뜻이다. 실제로 기획재정부 등에 따르면 로또 판매량은 최근 10여 년 간 꾸준히 증가세다. 특히 지난 2015년엔 로또 판매액이 3조 4000여억 원을 기록, 지난 2014년(3조 490억 원)과 비교해 12.8% 증가하면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로또 판매량에 따라 호황을 누리는 업체들이 있다. ‘로또 1등 당첨 예상 숫자를 선정해 보내준다’는 로또 숫자 제공 업체들이다. 이들 업체들은 대부분 유료로 당첨 예상 숫자를 제공한다. 등급에 따라 1년에 14만 원부터 100여 만 원까지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이들은 유료 회원들에게 매주 당첨 예상 숫자를 10개에서 20개까지 제공한다.
이들은 앞서와 같은 당첨 후기와 당첨금 영수증 등을 자신들의 홈페이지와 SNS 등에 게시한다. 실제 당첨자의 후기를 올려둔 업체도 있지만, 일부는 ‘익명의 회원이 서비스 가입 후 두 달 만에 1등에 당첨 됐다’ ‘업체로부터 제공 받은 숫자로 2회 연속 로또 2등에 당첨됐다’ 는 식의 확인 불가능한 당첨후기도 올라와 있었다.
대부분의 업체는 가입 자체는 무료지만 다른 정보를 얻으려면 유료 회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안내했다. 로그인을 하면 당첨 후기나 노하우 전문 또는 서비스 정보를 공개하는 방식이다. 회원가입만 해도 전화나 ‘더 좋은 분석으로 보답드릴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 유료회원 전환을 유도했다.
업체들은 “로또 1등 당첨은 운이 아니다”라며 “‘입증된 기술력’으로 예상번호를 추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홈페이지를 보면 통계학 이론과 과학적 분석 방법을 설명한 뒤 “이를 토대로 검증된 로또 숫자 분석 시스템을 개발해 당첨 예상 숫자를 제공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확인 결과 대부분 평균회기분석, 통계패턴분석, 숫자조합분석, 누적통계분석 등이었고 “홀·짝수의 조합과 로또숫자가 6개인 점을 감안, 동양철학의 기본인 주역과 연동해 음과 양의 조화로 분석한다”는 일부 업체도 있었다.
특히 직접 개발했다는 당첨 예상 숫자 ‘분석 시스템’의 이름은 업체마다 달랐지만, 대부분 누적통계분석과 평균회기분석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누적통계분석이란 쉽게 말해 지난 회차에 나왔던 숫자들을 모아놓고 특정 숫자가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하는 방식이고, 평균 회기 분석이란 과거의 1등 번호들을 늘어놓고 많이 나온 숫자와 적게 나온 숫자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즉 “과거 1등 당첨번호를 분석해 다음 주에 당첨될 가능성이 낮은 번호는 과감히 버리고, 가능성이 높은 번호 가운데 6개를 고르면 1등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계 전문가들은 이들 업체들이 주장하는 예측 방법에 대해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다. 한마디로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 통계학 교수는 “로또는 마치 주사위를 600회 던졌을 때 6개 번호가 정확히 100번씩 나오지 않는 이치와 같다. 다음 주 45개 각 번호의 당첨 확률은 독립확률이며, 항상 13.33%로 일정하다”며 “쉽게 말해 이전까지 어떤 번호가 많이 뽑혀 나왔는지에 관계없이 앞으로 나올 번호는 매번 ‘리셋’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1등 당첨자를 많이 배출했다는 일부 업체의 주장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로또 판매소에서 1등이 많이 배출됐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회원이 많아 표본집단이 커져 1등이 많이 나오는 것이지, 당첨 확률 자체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로또 1등 당첨 확률은 814만 분의 1인데, 한 업체가 어떤 업체가 번호 814만 개를 생성해 유료회원 81만 4000명에게 10개씩 골고루 발송했다면 회원 가운데 1명은 1등에 당첨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또 다른 통계학과 교수는 “지난주 686회차까지 총 4222명이 1등에 당첨됐으니 한 회차당 평균 6.15명꼴로 배출한 셈이다. 한 주에 6명이나 1등에 당첨된다는 것에 대해 놀라운 기록으로 볼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로또는 주당 평균 6350만 여 장 판매된다. 매주 평균 6명이 1등에 당첨된다는 것은 확률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결과다. 로또 당첨자 통계는 정확히 확률의 법칙 안에서 흘러간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한 업체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회원수는 20만 명에 불과하다. 1등 당첨자를 많이 배출한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업체의 광고 기사엔 회원수가 ‘200만 명’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여기에 해당 업체는 무료 회원에게도 2건의 숫자를 제공하고 있어, 매주 수 백 만 건의 조합이 나온다.
또한 로또 숫자 제공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부 업체들이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나 특허청 등 공신력 있는 기관의 마크를 홈페이지 등에 게시하는 것은 현행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해당 기관으로부터 로또 번호 추출 관련 기술력을 인증 받았다고 오해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업체는 자신들의 숫자 분석 연구소를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인증기관’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는 인원과 공간 등 인적 물적 조건이 갖춰졌는지를 판단해 연구소 인증을 하고 있다. 숫자 예측 기술력과는 무관하다는 뜻이다. 특허청 마크에 대해서 도 한 법률 전문가는 “상표 등록 사실을 기술 특허 사실인 양 게재하는 등 허위 사실을 고지한 경우에는 형법 제 347조 사기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