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걱정하셨죠? 저도 참으로 힘들었습니다. 트리플A로 향하기 전 며칠 동안 술도 좀 마시고 방황도 하면서 마이너행을 두고 불면의 나날을 보냈더랬어요. 그러나 버지니아주에 있는 이곳 노포크로 향하면서 일말의 불편함과 불만, 걱정거리들은 모두 뉴욕에 놓고 다시 해보겠다는 마음 한 가지만을 갖고 왔습니다. 지금은 많이 편해지고 익숙해진 상태예요. 해안가에 위치한 이곳 풍광들도 아주 마음에 들고요.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음을 새삼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끝없이 도전할 ‘꺼리’들을 제공하고 만들어가면서 고이지 않고 넘쳐흘러가도록 채찍질하고 유도해가는 것 같아요. 반항만 하고 살기엔 시간이 너무 없더라구요. 순응하고 적응하며 감당해 가는 모습 또한 절대적으로 필요한 세상살기의 노하우라는 걸 깨닫는 중입니다.
사실 이 일기를 쓰면서 많이 망설였어요. 팬 여러분들에게 항상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거든요. 저의 부족한 점, 알려드리기 싫은 약점들이 지면으로 노출되는 것 같아 이곳을 다시 찾는 데 한참을 주저했어요. 제 일기를 담당하는 기자분께서 속 많이 타셨을 거예요. 저랑 연락이 닿지 않았으니까. 지름길 놔두고 굽이굽이 산길을 돌아내려왔는데 더욱 솔직한 모습, 꾸미지 않은 인간 서재응의 고뇌를 여러분에게 제대로 보여드릴 것을 약속드립니다.
아, 참, 오늘 한국에서는 제 에이전트였던 무라드와의 결별 소식이 보도되었더라고요. 결별했다기보다 무라드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구단주로 자리를 옮겨 가면서 자연스럽게 헤어진 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라드와는 인연을 이어가지 못하지만 소속 에이전트사는 이전과 달라질 게 없어 제 신상의 변화는 없다는 걸 꼭 강조하고 싶습니다.
항간에서는 제가 마이너행으로 내려간 것은 투수 코치인 릭 패터슨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던데 제 입으로 직접 말씀 드릴 게요. 솔직히 약간의 불화는 있었습니다. 그분이 강조하는 투구폼과 제가 던지고 싶은 투구폼엔 차이점이 있었거든요. 더욱이 그 코치가 절 버리고(?) 다른 팀의 두 선수를 선발로 데려왔을 때는 그 코치한테 ‘물 먹었다’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의 시나리오일 뿐입니다. 선수인 저로선 그분의 가르침을 따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더 이상 코치와 저와의 관계를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으셨음 해요.
오랜만에 다시 트리플A로 내려오니까 애들이 더 잘해 주네요. 메이저리그 2년 반의 경력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노땅’ 대접도 해주고 다들 열심히 하니까 저 또한 자극 받고 훈련에 더욱 집중하고 몸 아끼지 않고 뛰어다녀 모처럼 유쾌 상쾌 통쾌한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중입니다.
제 통역 겸 ‘메이저리그의 동반자’인 대니얼 김이 있기에 마이너에서의 생활이 그리 힘들지 않은지도 몰라요. 가끔 뉴욕이 그립기도 한데 지금 저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다 값지고 알차게 쓸 수 있도록 발바닥에 땀띠 나도록 뛰어 볼게요. 여러분도 무더위에 지치지 마시고 힘내십시오.
8월7일 노포크에서
온라인 기사 ( 2024.12.08 18: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