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제공=SK 와이번즈 | ||
차임벨이 울리자 지정된 접견실의 불이 켜지면서 오렌지색 수의를 입은 한 남자가 나타났다. 야구장에서 유니폼 입은 모습만 봤던 탓에 그의 옷이 너무나 생경스럽기만 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죠?” “아, 예. 어떻게 여기까지?” 예상과는 달리 밝은 얼굴로 나타난 그는 다름 아닌 병역비리혐의로 구속기소된 메이저리그 출신 SK 와이번즈의 조진호(29)였다. 조진호의 가족과 함께 접견을 하다보니 7분이란 시간이 너무 짧았다. 결국 6일 조진호를 다시 접견했고 이날 조진호는 고단한 구치소 생활과 마운드에 다시 서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드러냈다.
지난 3일 조진호는 검사용 소변에 약물을 타 병역을 면제받은 혐의로 징역 8월을 선고받았다. 가족들에 의하면 집행유예로 풀려날 것을 예상했던 조진호가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어렵게 고생하면서도 한국 선수의 자긍심을 잃지 않고 국위선양에 앞장선 부분이 판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기대했다가 실형이 선고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던 모양이다.
“지금 오른쪽 팔꿈치가 너무 아파요. 이미 오래 전부터 아팠고 수술을 할 계획이었는데 여기 이렇게 있으니까 정말 미치겠어요. 나갈 줄 알았는데, 풀려날 거라고 믿었는데, (한숨을 쉬며) 참 힘드네요.”
서울구치소로 옮겨온 지 어느덧 두 달을 넘어서고 있다. 처음 한동안은 2평 남짓한 좁은 방에서 7명의 수감자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 안에서 씻고 밥 먹고 용변을 보는 등의 생활이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처음엔 정말 많이 울었어요. 야구선수에서 범법자로 전락한 제 신세가 너무 처량하더라구요. 속이 타다 못해 재가 됐을 거예요. 제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무기력증에 빠지게 했어요. 여자친구 아니었으면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조진호에게는 내년 봄에 결혼을 약속한 여자친구가 있다. 경찰서에 출두하기 전 고민을 거듭하다가 수갑이 채워지기 전날 병역비리 혐의로 경찰서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털어놓았다고 한다. 그때 여자친구는 마치 군대 가는 애인에게 하는 말처럼 “다녀와라”하고 가볍게 반응했고 조진호도 무거운 마음을 털고 경찰서에 들어갔는데 그 즉시 수갑이 채워져 유치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 친구 때문에 버틸 수 있는 힘이 생겼어요. 오래 만난 건 아닌데도 절 많이 이해하고 사랑해줘요. 메이저리그에서 잘나갈 때 만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국내 복귀해서 한참 힘들 때 만나 지금은 더 힘들어졌네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한 부분에 대해 조진호는 무척 괴로워했다. 그러면서도 여자친구의 소식이 뜸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고 한다. 지금 상태에선 어떤 약속도, 어떤 희망도, 또 어떤 기대를 전할 수 없는 현실로 인해 조진호는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싶으면서도 만약 떠난다면 잡을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희망이 없다는 사실이 정말 두렵더라구요. 여기서 나가면 다시 운동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더욱 머리가 복잡해지죠. 나이도 있잖아요. 하지만 쉽게 포기할 수는 없어요. 빨리 수술해서 몸 만들어 다시 야구하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지금.”
조진호는 구치소에 수감된 이후 한번도 어머니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경찰서에 출두하기 전 대전 집으로 내려가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오려고 했다가 경찰 관계자의 출두 명령을 받고 곧장 경찰서에 가는 바람에 어머니를 만날 수가 없었다. 조진호의 어머니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아들을 야구선수로 키운 자신을 탓하며 “공부도 잘한 아들인데 평범하게 키웠더라면 이런 악몽은 꾸지 않았을 것”이라고 눈물을 쏟았다.
“여기선 어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아요. 나가서 봬야죠. 무슨 좋은 모습이라고 어머닐 만나겠어요. 국가에 대한, 사회에 대한 원망도 생기고, 한창 운동할 나이에 이런 곳에 갇혀있다가 나가면 과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 물론 잘못된 방법으로 군대 면제를 받은 죄는 백배 천배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근데 운동선수라면, 그런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선수가 누가 있을까 싶어요. 돈만 있다면 말이죠.”
조진호는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얼마전 현역 판정을 받은 절친한 SK 김영수에 대한 걱정을 놓지 않았다. 현역 입대하기 전 자신이 출소해 꼭 만나고 싶다는 바람도 곁들였다.
곧 접견이 끝났음을 알리는 차임벨이 울릴 시간이다. 조진호가 급히 마지막 말을 이었다.
“전 꼭 다시 마운드에 설 거예요. 조진호의 야구인생이 여기서 끝나면 너무 억울하잖아요. 그리고 이 말 좀 꼭 전해주세요. 실망시킨 팬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