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생각 같아선 소주 한잔 하며 곡절 많았던 배영수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싶었지만 “지금 소주를 마시면 죽지 싶은데요”라는 반응에 가볍게 맥주 한 잔으로 대신했다. 일본에서 지난 4일 벌어진 이종격투기 K-1월드그랑프리대회 방송을 봤다는 그는 야구 다음으로 좋아하는 운동이 이종격투기라며 흥분지수를 높여갔다.
그래서 “야구 그만두면 이종격투기로 전업할 생각이 있냐?”고 묻자 “만약 그리 되면 죽도록 맞지 싶은데요”라고 말한 뒤 한참을 웃는다. 자신은 맞으면 맞을수록 흥분하는 다혈질이라 몸 사리지 않고 덤비다가 인생 종 칠 수도 있다고 말한다.
올해처럼 상을 많이 받는 해도 없을 것이다. 한두 개 정도만 받아도 감지덕지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각종 시상식의 상은 죄다 배영수 차지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더 걱정돼요. 내년 시즌이. 자칫 잘못해서 지금의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잖아요. 솔직히 요즘 정말 행복하거든요. 그런데 온전한 행복이 아니에요. 불안감이 꼬리를 물고 있으니까.”
지난해 13승을 거뒀을 때도 배영수는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주전 선수로 억대 연봉 대열에 올라선 게 보람이라면 보람이었다. 그러나 17승을 거두며 다승 공동 1위에 오르고 한국시리즈에서 인상적인 투구로 팬들에게 큰 감동을 자아낸 올 시즌, 배영수는 외출하기가 부담스러울 만큼 공인이 돼 버렸다. 연고지인 대구에선 배용준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 배영수는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상을 수상했다. | ||
올시즌 가장 암울했던 시기가 4월이었다. 팀의 2선발로 제 몫을 해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그가 패전처리로 마운드에 오르기도 했었다. 누구보다 배영수를 아꼈던 선동열 감독 입장에선 충격적이었지만 배영수 자신은 충격을 넘어 실신하기 직전이었다고 한다.
“스트레스 정말 많이 받았어요. 체중도 5kg이나 빠졌고 잠을 거의 못 자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나 자신한테 실망이 컸어요. 당시엔 감독님과 코치님들한테 화도 났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다른 선수보다 기량이 떨어진다는 걸 인정하기 시작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4월16일,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이에요. 두산전에 구원투수로 나갔다가 드디어 1승을 거뒀거든요. 부끄러웠지만 기분 좋았어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서.”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배영수는 펄펄 날았다고 한다. 목표로 세운 15승 달성도 문제없어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스프링캠프 때 너무 훈련을 열심히 해서인지 체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신감도 곤두박질쳤다. 자꾸만 초라해지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두산전 이후 차츰 자신감이 붙었어요. 공이 살아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요. 야구는 기다림인 것 같아요. 안 좋을 때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야 다시 기회가 온다는 걸 알았어요.”
올 한국시리즈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야깃거리가 4차전 배영수의 노히트노런 실패다. 10회까지 현대 타선을 꽁꽁 묶어두며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선보인 배용수는 ‘10이닝 동안 정말 재미있게 놀았다’는 표현으로 당시를 회상한다.
“아쉽지만 후회 없는 한판이었어요. 야구하면서 그날만큼 야구에 미친 적도 없었던 것 같아요. 던지고 싶은 볼, 다 던져봤고 그 볼이 제대로 꽂혔고, 우리 타선에서 점수를 뽑지 못했다는 것 외엔 정말 재미있게 게임할 수 있었어요.”
무기력한 타선으로 인해 적잖이 마음고생을 한 부분에 대해서 배영수는 ‘총은 있는데 총알이 없었다’며 미련을 남겨둔다.
배영수는 김응용 감독이 사장에 오른다는 사실을 처음 전해 듣고 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전혀 상상조차 못한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니폼 대신 말쑥하게 양복을 차려 입고 선수들 앞에 나타난 김응용 사장을 직접 목격하고 나선 ‘사건’이 현실이었다는 걸 깨달았단다.
▲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이름이 불리자 두 손을 번쩍 치켜든 배영수. | ||
배영수의 어린시절은 기자들한테도 ‘물음표’로 남아 있다. 특히 가족에 대해선 밝히길 꺼려하는 바람에 어느 인터뷰에서도 가족과 관련된 내용이 소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배영수는 처음으로 기자에게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았다. 즉 배영수의 아버지, 어머니로 알려진 분들은 친부모가 아니다. 큰아버지, 큰어머니를 친부모로 여기고 산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안 계셨어요. 어머니는 집을 나가셨고 아버지도 사정이 있어 집을 떠난 이후 연락을 끊어 버려 할머니 밑에서 누나와 함께 자랐어요. 큰아버지, 큰어머니가 절 친아들처럼 돌봐주셨고 그분들 보살핌 덕분에 운동을 할 수 있었죠. 그렇다고 아버지, 어머니를 원망한 적은 없었어요. 오히려 꼭 성공하고 싶었어요. 반드시 성공해서 뭔가를 보여주고 싶었죠. 돈과 명예가 절실히 필요했어요. 그걸 위해 독하게 마음먹고 뛴 거예요. 솔직히 누굴 원망할 시간도 없었죠.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에. 누굴 탓하기 전에 내 인생을 제대로 꾸려가기가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왔죠. 몇 년 후 경제적인 여유와 힘이 생기면 뒤를 돌아볼 것 같아요. 지금은 아니에요. 그분들을 찾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고. 야구만 생각하고 싶어요.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묻고 싶었지만 너무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더 이상 끄집어낼 수가 없었다. 지금보다 더 안정된 자리에서 주변을 돌아볼 넉넉함이 주어졌을 때는 아픈 상처도 추억으로 회상할 수 있으리라. 아직은 그 시기가 안 된 것 같았다.
“어려서부터 해외진출이 꿈이었어요. 한양대에서 절 데려가려고 애를 쓰셨고 대학에 오면 외국에 보내주겠다는 제안도 받았어요. 막판에 틀었어요. 명예보다 돈이 더 급했거든요. 성공에 대한 집착과 갈망이 컸고 돈의 중요성을 알았기 때문에 고민 끝에 프로를 선택했어요. 후회는 안 해요. 똑같은 기회가 주어져도 전 프로를 선택했을 거예요.”
배영수는 짧고 굵은 것보단 가늘고 길게 선수 생활을 하겠다고 다짐한다. 한 해 20승을 올리고 조로하느니 10승씩 10년을 롱런하며 오랫동안 야구장에 출근하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배영수가 존경하는 선수는 이강철이다. 이강철의 부드러움과 송진우의 빠른 두뇌 회전을 사랑한다는 그는 두 사람의 장점과 자신의 장점을 합하면 통산 3백승도 이뤄낼 수 있을 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아픔이 있었던 선수, 그러나 여전히 ‘오 해피데이’만을 외치는 배영수의 ‘오늘’은 거저 주어진 ‘공짜 인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