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 15
(중략)
엄마 혼례 때 따라온 자개장 속에서 / 엄마랑 내가 흠씬 젖은 가을 오후였습니다.
(‘가을 구름 물속을 간다’ / 시인 김선우)
1980년대 이전만 해도 자개장은 비교적 흔한 혼수품이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도 자개장이 나온다. 지금은 할머니 댁이나, 나이 드신 이모 댁에나 가야 볼 수 있다. 아파트 쓰레기 처리장에서도 버린 자개장이 가끔 보인다. 이걸 본 한 일본인 청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뭔가 굉장한 것을 버리고 있다”면서 놀랍다고 썼다. 우리만 ‘우리 것’의 진면목을 몰라보는 건 아닌지.
2014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회가 일본 소장자로부터 구입한 고려 나전경함. 연합뉴스
옛사람들은 나전(螺鈿)을 ‘자개’라는 순우리말로 불렀다. 따라서 그 만드는 일을 ‘자개박이’라고 일컬었다. 이 일은 대개 백골장(柏榾匠, 칠을 하기 전의 각종 목물을 만드는 장인)이 만든 목가구에 옻칠을 하고, 삼베를 입히고, 나전(조개껍질)을 붙이고, 다시 칠을 올린 뒤 표면을 연마하여 자개가 드러나게 하는 작업이라는 뜻이다.
나전칠기의 역사는 통일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국 당나라에서 성행했던 나전칠기 기술이 전해졌고, 고려에 와서 꽃을 피웠다. 고려시대의 나전칠기는 정말로 섬세하다. 무늬로 넣은 낱낱 자개 편은 두께가 0.3㎜도 되지 않고, 크기도 1~5㎜ 정도여서 송곳으로 콕콕 끊어가며 작업했다고 한다. 상자 하나에 4000~8000개, 많으면 2만 5000개의 자개 편이 들어갔다. 세밀가귀(細密可貴, 송나라 서긍이 한 말로 ‘그 기법이 매우 정교하고 세밀함은 가히 귀하다고 할만하다’는 뜻)다. 흔히 고려시대 문화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고려청자를 떠올리지만 나전칠기는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던 그 시절 ‘한류’였다.
원종 13년(1272년) <고려사>(高麗史)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원세조(元世祖, 쿠빌라이)의 황후가 나전경함(螺鈿經函)을 만들어달라고 고려에 요청했다. 그런데 고려는 어찌된 일인지 관청을 둘이나 세웠다. 전함도감(鈿函都監)과 전함도감(戰艦都監)이다. 원나라 황후는 고려 미술품에 심취해 나전칠기상자, 즉 전함(鈿函)을 주문하였다. 하지만 고려의 벼슬아치들은 모든 문화의 발상지인 중국의 황후가 그럴 리가 없다고 판단, 전함(戰艦)을 주문한 것으로 오해하였다. 나중에 상황을 파악하였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청 두 개를 모두 세웠다. 원나라 황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당시 상황이 짐작은 간다. 하지만 일면 위안도 된다. 그만큼 나전칠기가 우수했다는 증거인 까닭이다.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의 홍콩경매에서 일본인이 내어놓은 나전칠국당초문합을 한국인이 낙찰받았다. 사진제공=서울옥션
이렇게 뛰어났던 고려 나전칠기이건만 2014년 전까지 국내에는 단 1점밖에 없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중인 ‘나전대모칠국당초문 불자’였다. 그런데 2014년 7월 국립중앙박물관회가 ‘고려나전경함’을 일본 소장자로부터 구입해 들여왔다. 또 지난해 11월 30일 홍콩에서 열린 옥션 경매장에서 일본 소장자가 내어놓은 나전칠국당초문합을 한국인이 낙찰을 받았다. 낙찰가는 4억 9000여만 원이었다. 개인이 소장하게 되었지만 고려 나전칠기 하나가 더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외국에서 소장하고 있는 고려 나전칠기는 알려진 것만 16점이다. 거의 다 일본 소장품이었다. 고려 말 왜구들이 약탈해간 것을 일본 사찰에서 보물로 잘 간직했다고 한다. 때문에 보석을 담았던 모자합(母子盒) 3점 외에는 불경을 담았던 경합(經盒), 염주합(念珠盒), 스님이 손에 쥐는 불자(拂子) 등 불교용품이 대부분이다. 영국 박물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보스턴 박물관, 암스테르담 박물관 소장품들도 모두 20세기 초에 일본에서 구입해갔다고 한다.
나전칠기는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2011년 서울모터쇼에서 BMW는 ‘나전칠기 BMW 750Li’를 선보였다. 일반적으로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마감되던 차량 내장재를 나전칠기로 대신하였다. 나전칠기의 우아함, 세련된 아름다움을 외국의 자동차기업이 알아본 거다. 이외에도 나전칠기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명품 마우스와 KT&G의 명품 담뱃갑에 사용되기도 하였다. 지난해에는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미사에 사용한 성좌(聖座)도 국내 작가가 전통 옻칠을 하고 자개 장식을 달았다.
국내에 환수된 고려 나전칠기 2점은 모두 경매를 통해 구입한 것이다. 문화재의 반출경위를 정확하게 규명하지 못하는 한, 그래서 불법 반출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경매나 기증을 통한 환수가 유일하게 합법적인 경로다. 우리 것을 돈을 주고 사와야 하는 것이 좀 억울하기도 하다. 그러나 문화재는 어떤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김선우. 2000. <내 혀가 입속에 갇혀있길 거부 한다면>. 창비사. 유홍준. 2011. <유홍준의 국보순례>. ㈜눌와 스킬런드(영국 런던대 교수). ‘세계속에 비친 한국5 – 해외 한국학교수들이 본 코리아’ 동아일보 1981. 4.16. ‘고려 공예의 정수...국보급 나전경함 고국 품으로’ 한국일보 2014. 7.15. [네이버 지식백과] 나전칠기 [螺鈿漆器]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나전 [高麗螺鈿] (두산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시대 (한국 미의 재발견 - 목칠공예, 2005. 3.24., 솔출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