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 16
관음보살이 물방울 모양 광배(光背) 안에 서 있어 ‘물방울 관음’이라 불리는 ‘수월관음도’. 일본 센소지 소장. 연합뉴스
하지만 우리는 고려불화의 존재조차 모르고 있었다. 1967년 일본의 미술사가 구마가이 노부오(熊谷宣夫)는 일본 내에 있는 불화 약 70여 점이 고려와 조선 초기 불화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후 현재까지 고려불화가 속속 발견돼 160여 점 정도가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그중 대부분이 일본의 사찰과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고려불화를 잘 보관했다. 일본이 약탈했기 때문에 원형의 아름다움을 유지하게 됐다는 역설에 가슴이 먹먹하다. 우리는 제사용 초상화 등이 100년, 200년이 지나 벌레가 먹고 습기가 차서 떨어지게 되면 새로 임모본(臨摸本 : 베껴서 쓴 책이나 서화)을 만든 뒤 불태워 없애버렸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개칠(改漆 : 한번 칠한 것을 다시 고쳐 칠함) 외에는 고쳐 써온 전통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많은 고려불화가 남게 됐다.
고려불화는 일본 외에 미국과 유럽 박물관이 각 1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불화가 한 점도 없었으나, 삼성미술관 리움, 호림박물관, 아모레 퍼시픽 미술관 등 사설 박물관과 개인 컬렉션이 외국에서 사들여왔다. 현재 고려불화 12점, 오백나한도 8점을 소장하고 있다.
고려불화는 우아하고 기품 있는 형태, 화려한 원색, 빛나는 황금 색채 그리고 정교하고 유려하면서도 힘 있는 선 등으로 정평이 나 있다. 당대 불화의 대표 주자였던 원나라 문헌에 “화려하고 섬세하기 그지없다”라는 기록이 남겨져 있다. 거의 모두 잦은 외적의 침입과 내부 혼란으로 고통 받던 14세기 전반기(1300~1350년)에 만들어졌다. 왕실과 호족 중앙귀족 등 권문세가들이 국가의 안녕과 나라의 발전, 그리고 가문의 번창을 기원하며 성행했다. 사찰이나 저택에 지어놓은 개인 원당(願堂)격인 암자에 걸어놓았다. 그래서 족자 형태로 된 고려불화의 도상은 전부 구복(求福)과 관련된 아미타신앙에 국한된 것이 특징이다. ‘아미타여래도(阿彌陀如來圖)’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지장보살도(地藏菩薩圖)’ 등이 대종을 이룬다.
이 가운데 고려불화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것은 수월관음도다. 수월관음도는 보타낙가산의 금강대좌에 반가부좌하고 앉아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그렸다. 압권은 붉은 법의에 걸친 흰 사리의 표현에 있다. 얼마나 정교한지 속살까지 다 비친다. 고려불화의 특징적인 제작기법인 복채법(伏彩法)으로 그렸다. 복채법은 신체나 옷 등에 주로 사용하는데, 뒤에서 백색 안료를 칠한 뒤 앞면에서 다시 붉은색이나 황토색 계열 안료를 엷게 칠하여 부드러운 살색을 연출하거나, 붉은색을 화면 뒤에서만 칠해 은은한 파스텔톤의 색감을 연출했다. 비단바탕에 붉은색, 녹색, 청색을 중심으로 흰색, 황색이 주로 사용했다. 원색을 그대로 사용했으나 석채(石彩: 돌을 연마해서 만드는 특수한 광물질 채색 원료)를 안료를 썼기에 우아한 빛을 띤다. 여기에 조화를 이루는 금니(金泥 : 잘개 부순 금박(金箔)을 아교에 개어 만든 안료)는 질감에 따라 굵거나 얇게 사용했다. 채색을 제거하면 멋진 금선묘(金線描)의 그림이 될 만큼 윤곽선에 금을 많이 썼다. 고려불화만의 특징이다.
일단 해외로 반출된 문화재는 되돌아올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하지만 유물의 출처를 밝히는 길은 문화재를 제자리에 돌리는 데 매우 중요한 일이다. 약탈문화재라는 게 분명해지면 훔쳐서 들여왔다고 해도 반환을 늦출 수도 있다. 2012년 국내 도둑들이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섬(對馬島) 간논지(觀音寺)에서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불(金銅觀音菩薩坐像佛)을 훔쳐 들여왔는데, 법원은 3년간 불상의 반환을 금지하도록 가처분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전공자들의 연구와 문화재에 대한 국민적 관심, 그리고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과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
참고문헌 ‘서산 부석사 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의 의의와 왜구에 의한 대마도로의 유출’, 문명대, 「서산문화춘추」 8집. 유홍준의 국보순례, 유홍준, 눌와, 2014 잃어버린 불상을 찾아서, 이숙희, 미진사, 2015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미의 재발견 - 불교회화, 솔출판사, 2005. 1. 10 [동아쟁론] 대마도 불상 2점 반환 논란, 동아일보, 2013. 03. 29 [문화유산을 보는 눈] 보살의 ‘시스루 패션’… 700년전 섬세美, 문화일보, 2005. 03.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