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사진 있다” 안까도 될 것을 깠다가…
프렌치 데이비스는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2 생방송 직전에 인터넷에 떠돌지도 않던 가슴 노출 사진을 제작진에 고백했다가 ‘자격 미달’로 탈락했다. 작은 사진은 데이비스의 브로드웨이 공연 모습.
2003년에 열린 <아메리칸 아이돌>의 두 번째 시즌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지닐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과 논쟁거리를 보여준 샘플 같은 쇼였다. 시청자 투표의 공정성에 대한 시비가 있었고, 심사위원의 독설도 문제가 되었다. 참가자의 과거에 대한 검증 문제도 불거져 나와 결국 코리 클라크가 생방송 기간에 자격 미달로 탈락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그럼에도 시청률은 고공 행진을 했고, 파이널 같은 경우는 북미 전역에서 3800만 명이 보았고 16.8%로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언제 터질 줄 모르는 지뢰밭처럼 숱한 위험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방송사로선 포기할 수 없는 쇼였던 셈이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어느새 그런 엔터테인먼트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때 참가한 프렌치 데이비스는 당시 24세(1979년생) 여성이었다. 2000년부터 연기를 시작했고, 독일의 프라이리히트슈필레 극단에서 <공포의 가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의 뮤지컬 무대에 섰다. 2003년 1월 <아메리칸 아이돌> ‘시즌 2’의 오디션에 참가한 그녀는 압도적이었다. 함께 경쟁한 참가자들은 물론 쇼의 관계자 대부분은 그녀가 생방송 무대에서 설 거라고 예상했다. 와일드카드까지 합해 생방송으로 갈 수 있는 인원은 총 36명. 그 대상자들은 폭스 TV에서 요구하는 서류를 작성해야 했는데, 여기엔 부적절한 과거에 대한 항목들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과거를 감추기 마련이지만, 데이비스는 당당했다. 그녀는 19세 때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란제리를 입고 가슴을 드러낸 사진을 찍은 적이 있었던 것. 그 사진이 인터넷에 떠돌지도 않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조용히 있었다면 아마 지금까지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었을 텐데도, 프렌치 데이비스는 제작진에게 자신이 그런 사진을 찍은 적 있다고 이야기했다.
“자신을 찍었던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르다.” 데이비스의 거침없는 태도에 일단 방송사 측은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달 뒤 시작된 생방송 출연자 명단에 그녀의 이름은 없었다. 폭스 TV의 입장은 간단했다.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프로그램에 그런 과거를 지닌 사람이 출연할 순 없다는 것. 제작진 가운데 데이비스가 찍었던 사진을 본 사람은 없었다. 사실 5년이 지난 시점에서 그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지만, 결국 데이비스는 쫓겨나야 했다.
하지만 4년 뒤인 2007년, 이 일은 재조명된다. ‘시즌 6’ 참가자 중 한 명인 안토넬라 바바가 찍은 섹시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돌기 시작한 것. 풀 누드는 아니었지만, 분수의 물줄기를 배경으로 흰 스웨터에 끈 팬티를 입고 찍은 사진은 세미 누드에 가까웠다. 데이비스에게 적용된 룰에 의한다면 바바 역시 탈락해야 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침묵했고, 그녀는 ‘톱 16’까지 올랐다. 이에 프렌치 데이비스는 4년 만에 자신의 씁쓸했던 과거를 다시 끄집어내며 <뉴욕 포스트>와 인터뷰를 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바바를 대하는 태도와 나를 대했던 태도를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4년 전에 당했던 일을 바바는 당하지 않았고, <아메리칸 아이돌>이 어떤 식으로든 진화하고 있다는 점에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만약 이 쇼의 룰이 변했다면, 나에게 필요 이상의 모욕을 주었던 과거의 그 상황을 바로잡을 어떤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인터뷰가 나오자 논쟁이 시작됐고, 급기야 2007년 3월 6일 <더 뷰>라는 TV 토크 쇼의 주제가 되었다. 진행자 중 한 명인 엘리자베스 해셀벡은 그 목적을 지적했다. 데이비스의 사진은 팔기 위한 것이었지만 바바는 재미로 찍은 사진이라는 것. 그러기에 데이비스가 자격을 박탈당하고 바바는 자격을 유지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다른 진행자인 로지 오도넬은 “이것은 인종주의적 문제이며, 데이비스가 흑인 여성이기에 생긴 문제”라고 지적했다. 토크 쇼가 방송된 후 이슬람 인권 운동가인 나지 알리도 코멘트를 했다. “<아메리칸 아이돌>은 인종적 편향이 강한 쇼다. 유색 인종에게 처해졌던 조치가, 똑같은 상황에 처한 백인 참가자에겐 ‘쇼의 원활한 진행이라는 명목으로 처해지지 않는다.”
<아메리칸 아이돌>이 상처를 주긴 했지만, 프렌치 데이비스는 승승장구했다. 2003년 브로드웨이 뮤지컬 <렌트>에서 멀티 캐릭터로 활동했고, 2004년 <드림 걸스>의 서부 지역 순회공연에선 에피 역을 맡기도 했으며, 2007년엔 위대한 가스펠 싱어 마할리아 잭슨의 삶과 노래를 담은 뮤지컬 <마할리아>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0년 뮤지컬 <신데렐라>엔 할머니 요정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그리고 2011년, 데이비스는 또 한 번의 오디션에 참가한다. 그 해 ‘시즌 1’을 맞이한 <더 보이스>였고, 첫 무대에서 케이티 페리의 ‘I Kissed a Girl’을 불러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선택을 받은 데이비스는 “참가자들 중 가장 힘 있는 목소리”라는 평을 받으며 8강까지 올랐다. 2012년엔 가수로 첫 솔로 곡 ‘Love’s Got a Hold on Me’를 발표해 빌보드 댄스 차트 12위까지 올랐고, 2014년엔 헬스클럽에서 벌어지는 루저 코미디 <덤벨스>를 통해 영화배우로도 데뷔했다. 바이섹슈얼로 커밍아웃 한 후 액티비스트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