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임덕 막고 퇴임후 대비 ‘다목적 카드’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박근혜정부 후반기 우병우 수석을 정점으로 재편된 사정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 사진제공=청와대
“우병우의 청와대다.”
얼마 전 기자와 만난 박근혜 대선 캠프 출신 원로 인사의 말이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이 우 수석의 업무 능력과 일 처리 태도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모 3인방(이재만·정호성·안봉근)을 제외하고는 가장 신뢰하는 측근이다”며 “3인방이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이후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는 것을 감안하면 현재 가장 영향력이 센 청와대 인사는 우 수석이다. ‘왕수석’으로 통하지 않느냐. 김기춘 전 비서실장에 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 수석은 지난 2014년 5월 민정비서관에 발탁된 뒤 불과 7개월 만인 2015년 1월 수석으로 초고속 승진하며 현 정부 실세로 급부상했다. 지난해 3월 이완구 전 국무총리가 선포한 ‘부패와의 전쟁’ 역시 우 수석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검찰의 해외 자원 개발 수사 도중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목숨을 끊고, 여기에 연루된 이 전 총리가 사퇴하면서 우 수석은 위기를 맞았다. 여권 내에서조차 사정 드라이브를 기획한 우 수석에 대한 책임론이 나왔을 정도다. 우 수석 거취를 둘러싼 친박 인사들 간 파워게임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우 수석은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 아래 건재했고, 지금은 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함께할 ‘순장조’로 분류된다.
지난해 12월 단행된 검찰 인사는 우 수석 ‘힘’이 여실히 반영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우 수석이 사석에서 ‘형님’으로 부른다는 김수남 현 검찰총장이 몇몇 핵심 친박 인사들의 지원을 등에 업은 박성재 서울고검장을 제치고 검찰 수장으로 발탁된 게 대표적 사례다.
또 우 수석과 함께 일한 이영상 전 행정관이 대검찰청 범죄정보1담당관으로 임명됐다. 이 자리는 검찰의 수사 첩보를 총괄하는 요직으로 검찰총장 직속부대로 꼽힌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인사는 “범죄정보1담당관의 경우 여러 라인에서 밀었던 후보가 막판까지 경합했는데 이 전 행정관이 낙점 받았다. 우 수석이 손을 썼다는 게 검찰 내 중론”이라고 귀띔했다.
검찰 특수수사 라인 역시 우 수석과의 친분이 눈길을 끈다. 폐지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역할을 맡게 될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의 김기동 단장은 우 수석이 아끼는 후배로 알려져 있다. 특별수사단은 산하에 2개 팀을 꾸려 과거 중수부가 담당하던 대형 비리 사건을 진행할 예정으로 박근혜 정부 후반기 사정드라이브의 ‘선봉장’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검찰청만 놓고 본다면 첩보와 수사, 그리고 이를 ‘직보’ 받는 검찰총장까지 모두 우 수석과 가까운 인사들이 기용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진두지휘하는 이동열 3차장 역시 우 수석과 각별한 사이다. 한때 서초동 주변에서는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와 대검 특별수사단이 힘겨루기를 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지만 우 수석이 무난하게 교통정리를 할 것이란 반론이 더 우세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2월 5일 최윤수 부산고검 차장검사가 국내정보를 총괄하는 국정원 2차장으로 발탁된 것 역시 우 수석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는 “현직 검사장급이 국정원 2차장으로 간 것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최 차장은 공안 경력이 전무하다. 그렇다면 이번 인사는 정치적 의미가 내포된 것이고, 그 배경엔 우 수석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차장 임명은 우 수석을 비롯한 친박 핵심의 정치적 의도가 담긴 ‘코드 인사’라는 얘기다. 최 차장과 우 수석은 서울대 법대 84학번 동기다. 사법연수원은 우 수석(19기)이 최 차장(22기)보다 선배지만 검찰 내에선 친구처럼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최 차장이 지난해 2월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임명될 때에도 비슷한 논란이 있었다. 그후 서울중앙지검이 해외 자원개발, 포스코, 농협, KT&G 등 지난 정권을 겨냥한 수사를 잇달아 착수하자 ‘우병우-최윤수’ 라인은 끊임없이 도마에 올랐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이 진행한 대부분 수사는 용두사미로 그쳤다. 청와대 하명에 따른 부실수사라는 지적이 나왔다. 그런데도 최 차장은 지난 연말 검사장으로 승진했고, 올해 국정원 2차장으로 임명됐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수사 실적만 놓고 보면 최 차장 인사는 납득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검찰 내에서도 ‘보은성 인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치권과 사정당국 주변에선 박근혜 정부 후반기 우 수석을 정점으로 재편된 사정기관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검찰-국정원 친정체제 강화에 숨겨진 친박 핵심부의 노림수를 예의주시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여야 간, 또는 여권 내부 반응이 엇갈린다.
우선 친박계는 박 대통령 레임덕 방지에 무게를 둔다. 앞서의 친박 원로는 “대통령 임기 말 권력기관들의 기강이 해이해지거나 다음 정권에 줄을 대는 현상을 막는 게 최우선 목표다. 통상 정권 말에 실세들이 연루된 게이트가 자주 터지곤 하는데 이를 방지하겠다는 얘기다”며 “임기가 끝날 때까지 일을 하기 위해선 우선 내부 단속부터 해야 한다. 믿을 수 있는 인사들을 검찰과 국정원 요직에 배치하는 이유다. 이 과정에서 우병우 수석이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반면 여권의 비박계와 야권은 의심의 눈길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친박 성향으로 ‘세팅’된 사정기관들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비박계는 친이계 인사들을 겨냥한 표적 수사가 다시 추진될 가능성에 긴장감이 역력하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이명박 정부와 관련 있는 기업들에 대해 동시다발적 수사를 진행했지만 별다른 실적을 거두진 못했다.
그럼에도 올 들어 ‘미니 중수부(부패범죄특별수사단)’까지 새롭게 갖추며 다시 사정 드라이브에 시동을 걸고 있다. 친이계의 한 의원은 “지난해엔 성완종 전 회장 죽음이라는 변수가 생기면서 수사가 유야무야됐지만 이번엔 우리 쪽을 제대로 벼른다는 얘기가 파다하다”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소식을 접한 몇몇 친이계 정치인들이 있다”고 전했다.
야권에선 사정 정국에 대한 경계심과 함께 총선 및 대선용 인사라는 의혹도 제기한다. 최윤수 차장 임명 후 더불어민주당이 논평을 통해 “최 내정자가 과연 국정원 2차장의 고유 업무인 대공수사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우리 당은 총선을 앞두고 국정원이 국내정치에 개입하는 정황이 조금이라도 드러난다면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차원에서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 퇴임 후를 대비하는 작업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급 의원은 “이번 인사를 통해 청와대는 국정원과 검찰을 효율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됐다. 이는 두 기관이 생산한 정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얘기”라며 “대통령이나 그 친인척, 또 정권 실세들과 관련된 내용은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정권 말이나 다음 정권에 흘러나오기 마련이다. 그 전엔 윗선으로 보고가 되지 않는 것도 적지 않다. 이를 사전에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동력을 마련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