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전당대회 앞두고 민주당·청와대 힘겨루기 양상…정 대표, 친명계 불출마 압박에도 연임 도전 전망

이 대통령 순방 환송행사에 전부 참석했던 정 대표가 지난 9일 출국길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청와대에서 정 대표를 부르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이례적으로 김민석 국무총리가 나와 환송했다. 현직 총리가 대통령 순방길에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다. 김 총리 참석 역시 이번이 처음이다. 정치권에서는 이 대통령이 여당 당권경쟁에서 김 총리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쏟아졌다.
순방 마중 자리에는 김 총리와 정 대표가 모두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공군 1호기에서 내려 대기하고 있던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나눴다. 김 총리가 가장 앞에 있었고, 정 대표는 행정안전부 차관에 이어 3번째에 위치했다.
김 총리는 이 대통령에 허리를 굽혀 인사했고, 이 대통령은 별다른 언급 없이 악수를 나눴다. 이어 정 대표는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이에 이 대통령은 정 대표와 악수하며 “수고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무표정으로 뒤에 대기 중이던 인사들과 빠르게 악수를 나눈 뒤 바로 차량에 탑승해 서울공항을 떠났다. 김 총리와 정 대표 등 환영인사들이 이 대통령을 뒤따라 왔지만,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과거에는 차에 탑승하기 전 뒤를 돌아보고 다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를 두고 이재명 대통령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나왔다. 여권 한 관계자는 “이 대통령 귀국 전부터 민주당에서 ‘정 대표가 청와대로부터 환영행사 참석 연락을 받지 못했다’ ‘부르면 나간다’는 말을 먼저 내보냈다. 당청 갈등이 다시 부각되자 청와대에서 강유정 수석대변인이 이례적으로 환영행사 참석 명단을 발표했다”며 “정 대표 측에서 계속 싸움을 거는 듯한 모습을 보여오는데 이 대통령이 편할 리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친명계’ 이건태 의원은 정 대표의 90도 인사는 잘못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원은 18일 본인의 소셜미디어(SNS)에 “내가 알기로 이 대통령은 이런 의전을 원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색하고 싫어한다. 정 대표도 그걸 모를 리 없을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90도 인사는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담긴 정치기술이고 정치행위”라고 꼬집었다.

이어 “야당이 군대나 창에 가깝다면, 여당은 농사와 그릇에 가깝다고 생각한다”며 “집권여당은 신념을 버리지는 않되 신념의 언어보다는 ‘책임의 언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여당의 열정은 ‘우리 진영’이 아니라 ‘국민 전체’를 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에선 친명계를 중심으로 정 대표에 향한 전당대회 불출마 목소리가 나왔다. 김영진 의원은 1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출마 여부가 당원에 달려있다, 국민에 달려있다는 건 한가한 이야기”라며 “본인이 2년차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한 당대표 적임자인지 아닌지를 깊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헌 의원은 6월 17일 본인의 SNS에 “집권여당 당대표는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국정운영에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때론 억울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더라도 정부의 성공을 위해 한 걸음 물러설 수 있어야 한다”며 “지금은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정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기꺼이 불쏘시개로 내놓는 결단을 깊이 고민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이번 전당대회 불출마는 정치적 퇴장이 아니라 더 큰 책임을 선택하는 일일 수 있다”고 충언했다.
하지만 정청래 대표는 뜻을 굽히지 않고 연임 도전 결심을 굳힌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 마중을 다녀온 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어디 있겠습니까. 흔들리면서 젖으면서 가는 게 인생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대표는 8월 전당대회에서 실시되는 ‘1인 1표제’를 고리로 연일 당원 주권론을 강조하고 있다. 1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인 1표제가 시행되면 당내 계파가 소멸할 것”이라며 “무슨 계파로 명명되는 것을 반대하고 싫어하지만, 나는 굳이 구분한다면 당원파이고 개혁파”라고 강조했다. 친명계의 전대 불출마 압박에 대항하기 위해, 지지 기반인 강성 지지층을 향한 메시지를 던지며 ‘당심’ 잡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친명계 한 관계자는 “민주당에 친석계(김민석계)가 어디에 있나. 정청래 대표 측에서는 불과 얼마 전까지 ‘친청’이라는 표현도 부정하지 않았나”라며 “지난해 전대처럼 ‘찐명’ 대결로 가기엔 김 총리에 밀릴 것 같으니까 갑자기 친청과 친석으로 프레임을 전환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명심’이 김 총리에게 실려 있다는 신호가 계속 나오자, 정 대표 측에서는 ‘당무개입’ 등을 언급하며 대통령의 행동반경을 제약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채널A 보도에서 정 대표 관계자는 “불출마하면 청와대 압박 때문에 포기한 걸로 보여 대통령 당무개입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며 “정 대표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폐를 끼칠 순 없단 생각이 강하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6월 1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정 대표가 “국민을 이기는 정권은 없다”며 “국민은 영원하고 정권은 짧다”라고 말했다. ‘친청계’로 분류된 이지은 전 대변인도 이 대통령을 윤 전 대통령에 빗댄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앞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와 측근들의 발언이 이 대통령과 민주당에 도움이 되느냐. 바로 국민의힘에서 대통령 당무개입 논란, 탄핵 얘기가 나오고 있다. 본인의 정치적 욕심을 위해 이 대통령을 벼랑 끝에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 안팎에서는 친명-친청의 갈등이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가고 있다는 경보음이 울리고 있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과 당 지도부 사이에 가교 역할을 청와대 정무라인이 하는데, 그 기능도 사실상 멈췄다. 청와대가 정무라인을 통해 메시지를 전달해도 정 대표 측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 대통령도 이런 상황이 답답해 계속 직접적인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여당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언급했다. ‘명·청 갈등’에 대해 “당·청 관계에 대해서 당도 정부에 대해서 필요한 쓴소리를 할 수 있다. 좋은 소리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민주당과 정부는 엄청난 갈등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더 잘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론가, 이상가, 사상가, 운동가는 주장만 잘하면 된다”며 “그러나 정치는 동조자, 공감하는 사람을 많이 모으는 게 마지막 결론이다. 그래서 정치는 언제나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부에서는 왜 우리 편 안 쓰고 남의 편을 쓰냐, 같이 싸워온 우리 편은 섭섭하다 그런 얘기도 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우리 편 안 쓴 것 아니다. 다른 쪽도 써야 한다. 잘하고 있지 않느냐”며 “유능한 인재를 쓰나, 자기 편 챙기나 국민들이 지켜본다. 능력 있는 사람을 써서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유시민 작가의 ‘집권할 때는 내란 청산 정치 연합으로 집권했는데, 저쪽(보수) 사람들 데려다가 장관으로 다 쓰고 왼쪽에 있는 작은 정당들은 (기용) 안 한다’는 발언을 겨냥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왔다.
앞서 정 대표는 6월 12일 자신의 SNS에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라는 짧은 메시지를 올리며 강성 지지층 결집을 노렸다. 1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아직도 수사권에 미련 못 버린 검찰이 있다면 꿈 깨라”며 “보완수사권 전면 폐지는 너무나 당연하다”고 못을 박았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검찰 보완수사권 논란에 대해 “보완수사는 안 하는 게 맞지만 악용될 여지가 없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까지 모두 봉쇄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최소한의 보완수사는 필요하다고 정 대표와는 상반된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보완수사권에 대한 공은 국회에 돌리겠다는 원칙도 거듭 밝혔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