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6월 월드컵 지역예선전 모습. | ||
3년 전 설기현이 2002월드컵이 끝나고 국민적인 영웅으로 태어났을 때 그의 강릉 고향마을을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동네 어른들은 “정말 고생 많이 하면서 컸다”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설기현의 담당기자로 4년을 보내며 언제나 친동생처럼 예의바르고 한 계단씩 꿈을 위해 성장하는 그를 통해 인간적으로 많은 교훈을 얻는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진출을 위해 현재 챔피언십리그인 울버햄프턴에서 뛰고 있는 설기현이 직접 전하는 잉글랜드 생활을 정리해 본다.
2002년 7월27일 태어난 인웅이는 한국 나이로 네 살이다. 나와 아내(윤미)를 닮아서인지 또래 영국아이들보다 키가 크고 덩치도 커 뿌듯하다. 참고로 내 키는 187cm, 아내는 170cm이다. 울버햄프턴으로 옮기고 나서 인웅이는 유아원에 다니고 있다. 한국말도 잘하는 편이다. 집에 있을 때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항상 “아빠 이게 뭐야?”라고 물을 때는 너무 귀여워 훈련 가서도 귓가에 인웅이 목소리가 떠나지 않을 정도다. 자식 자랑하면 팔불출이라 웃음거리가 되겠지만 상관없다.
▲ 설기현이 울버햄프턴 구단이 선정한 1월의 선수가 됐다. 사진은 구단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1월 월페이퍼. | ||
얼마 전 장모님이 집으로 소포를 보냈다. 이것저것 밑반찬하고 내 보약을 챙겨 보내셨는데 우편배달부가 집안을 기웃거리며 “혹시 여기가 세올의 집이냐”고 물었단다. 나중에 근처에 올 일 있으면 사인 좀 받으러 오겠다며 내 사인을 부탁했다고 한다. 영국 남자들은 거의 축구팬이라고 하는데 울버햄프턴의 남자들도 마찬가지다.
아내와 장을 보러 가면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와 달리 사인해달라는 팬들에게 둘러 싸이는 일이 다반사다. 얼마 전에는 골을 넣고 나서 너무 기쁜 나머지 코치인 줄 알고 대기심을 껴안는 해프닝을 저질러 본의 아니게 더 유명해졌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팬들과 동료들은 “세올은 참 순수하다”며 좋아해준다. 너무 내 자랑을 늘어놓으니 쑥쓰럽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항상 인터뷰 요청이 있다. 따로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웬만하면 거절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울버햄프턴 언론담당관은 “기자들의 인터뷰가 쇄도하고 있다. 시간을 내주라”고 부탁하지만 “노”라고 대답하는 편이다. 자칫 잘못하면 과묵하고 건방져 보일 수도 있는데 속내는 따로 있다. 영어가 짧은 편이라 괜히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본전도 못 건질 거란 염려 때문이다. 항상 똑같은 말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벨기에에서는 통역을 썼는데 이곳에서는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 통역을 두지 않았다. 정말로 영어 실력을 키우고 싶으면 혼자서 모든 것을 처리하라는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다. 고생스럽기는 해도 귀가 뚫릴 때까지 혼자서 해 볼 생각이다. 또 울버햄프턴에는 한국인들도 별로 없어 통역을 부탁할 만한 사람도 없다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있다.
▲ 잉글랜드에서 활약중인 설기현의 인기가 치솟자 가족들도 ‘즐거운’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사진은 설기현 미니홈피의 가족사진. | ||
넘을 수 없는 ‘벽’으로만 여겨졌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그것은 결코 꿈으로만 끝나지 않을 것 같다.
정리=변현명 스포츠투데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