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더 잘했지만, 그녀가 더 좋았다” 제멋대로 심사 시끌시끌
뱀부 마날락
<보이스 필리핀>은 2013년 ‘시즌 1’과 2014년 ‘시즌 2’ 두 차례 치러졌다. 네 명의 심사위원은 필리핀을 대표하는 엔터테이너들이었다. 레아 살롱가는 전세계적인 뮤지컬 배우이며 애플 디 앱은 ‘블랙 아이드 피스’의 멤버였다. 20대의 젊은 나이지만 새러 제로니모는 가수와 배우로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인물이다. 그리고 뱀부 마날락이었다. 흔히 ‘뱀부’로 불리는 마날락은 10대 시절부터 음악을 시작해 ‘리버마야’ ‘뱀부’ 등의 밴드를 이끌었고 2012년부터는 솔로로 활동한 뮤지션이다.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인 중 한 명이었다.
‘시즌 1’에서 마날락은 대중에게 비난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2013년 7월 18일 방송에서 마날락의 팀에 속한 리 그레인과 댄 빌바노의 대결이 있었다. 그들은 U2의 명곡인 ‘One’을 함께 불렀는데, 객관적인 관점에서 댄 빌바노의 승리가 확실했다. 마날락은 필리핀의 중견 가수 조이 아얄라를 어드바이저로 모셨는데 그 역시 빌바노를 칭찬했고, 애플 디 앱도 빌바노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결정권자인 마날락은 의외로 리 그레인을 선택했다. 이에 필리핀 네티즌들은 인터넷에서 뱀부 마날락을 거의 가루가 될 정도로 욕하고 비난했다.
댄 빌바노
“그녀는 ‘배틀’에선 졌지만, 다음 라운드로 올라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노래엔 ‘들을 만한 그 무엇’이 있었다.” 마날락의 주장을 요약하면 리 그레인에게서 실력을 넘어선 어떤 가능성을 보았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리 그레인은 “나의 패배를 인정한다”는 코멘트를 했지만, 댄 빌바노는 마날락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리 그레인이 다음 라운드에서도 잘 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레인은 24명이 진출하는 생방송에 나가 16강까지 올라갔다.
다음 해 ‘시즌 2’에서도 뱀부 마날락은 문제를 일으켰다. 이번에도 심사위원에게 주어진 독단적 권력이 문제였지만, 그 수위는 월권에 가까웠다. 비운의 주인공은 조니버 로블레스였다. 그는 블라인드 오디션에서 레이 찰스의 ‘I Don‘t Need No Doctor’를 불러 네 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버튼을 누르는 ‘올 턴’의 주인공이 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수많은 참가자들 중 ‘올 턴’의 영예를 얻은 사람은 ‘시즌 2’에서 단 7명이었고, 로블레스는 일찌감치 우승 후보자로 떠오르고 있었다.
조니버 로블레스
그는 네 명의 심사위원 중 뱀부 마날락을 선택했고, 그는 치열한 배틀을 거치며 생방송 진출권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로블레스가 제외된 것이다. 뱀부 마날락은 로블레스가 개인적인 이유로 더 이상 <보이스 필리핀>에 참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설명했고, 탈락자 중 한 명인 리타 마르티네즈를 로블레스 대신 생방송에 진출시켰다. 그러면서 “참가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외엔 로블레스의 현재 상태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못 박았다.
그런데 로블레스가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런 조치에 대해 자신은 사전에 전혀 들은 바 없으며, 오로지 생방송 무대를 위한 연습만 해왔을 뿐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지와 도움을 요청했다. “저는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전 모든 걸 빼앗긴 겁니다. 저는 인생을 걸고 지금까지 피 나는 노력을 해왔고, 좀 더 큰 무대에 서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지금 저에게 온 기회를 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진 않습니다. 도와주세요!”
네티즌들은 왜 그가 쫓겨나야 했는지 여러 추측을 했지만 명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첫 번째 코멘트 이후 뱀부 마날락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렇게 ‘시즌 2’는 막을 내렸고, 1년 후에 마날락은 짧은 코멘트를 했다. “당시 로블레스에겐 그게 최선이었다. 그의 행운을 빈다. 그를 떠나보내야 했던 건 나에게도 슬픈 일이었다.”
과연 그들 사이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다행인 건 로블레스가 좌절하지 않고, ‘스타 매직’이라는 대형 기획사의 일원이 되는 행운과 함께 현재도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