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세 칸세코의 자서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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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의미에서 약물문제가 스포츠계에 본격적으로 대두된 시점은 1952년 오슬로 동계올림픽 때부터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탈의실에서 주사기와 성분 미상의 앰플들이 발견되면서 일부 선수들의 ‘약물복용설’이 제기된 것.
이후 동·하계 올림픽이 열릴 때마다 약물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이어졌다. 특히 스포츠를 통해 체제의 우월성을 다투던 냉전시대, 동독과 소련을 중심으로한 사회주의국가에선 국가가 직접 나서 선수들에게 은밀히 약물복용을 강권했다는 풍문까지 나돈 바 있었다.
급기야 88서울올림픽 육상 100m 우승자인 벤 존슨(캐나다)은 약물복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금메달을 박탈당하고 만다. 당시만 해도 일부 선수들만 약물을 복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았으나 지난해 7월 벤 존슨이 “88올림픽 때 거의 모든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기도 했었다. 특히 당대 최고의 스프린터이자 벤 존슨의 금메달을 ‘승계 받은’ 칼 루이스(미국) 역시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미국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약물을 복용했으며 미국육상협회가 이를 묵인해줬다는 의혹이 아직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고환암을 극복하고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대회 6연패를 이룩한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미국)도 지난해 불거진 약물복용설로 아직까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암스트롱의 전직 물리치료사가 “지난 98년 암스트롱으로부터 주사기 바늘을 치워달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증언을 하면서 불거진 의혹이다. 물론 암스트롱 본인은 부인하고 있으나 프랑스 지방법원이 정식으로 사건을 심리할 방침이라 앞으로 큰 파문이 예상된다. 법원의 움직임과는 상관없이 이미 몇몇 후원업체와의 계약이 끊기는 등 암스트롱으로서는 금전적인 손해도 막심한 편.
지난해 US오픈 테니스 여자단식 우승자인 스베틀라나 쿠츠네초바(러시아)도 지난 1월에 열린 호주오픈 때 약물복용 혐의로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다. 호주오픈을 코앞에 둔 지난해 12월 벨기에에서 열린 시범경기에 참가했다가 도핑테스트에서 ‘에페드린’ 성분이 검출된 것. 본인은 “감기약을 복용했을 뿐”이라고 항변했으나 호주 오픈대회 내내 의혹의 눈초리를 감수해야 했다.
거친 몸싸움과 강인한 체력을 전술의 근간으로 삼는 유럽프로축구도 당연히 약물 스캔들의 단골 진원지다.
▲ 홈런왕 베리본즈 | ||
지난해 12월 지도자 자리에서 완전히 은퇴한 마쥔런 중국 랴오닝성 체육부 부서기장(60)도 스포츠계 약물스캔들의 대표적인 뉴스 메이커.
한때 ‘마군단’으로 세계 육상계를 호령하던 바로 그 ‘마(馬) 감독’이다. 지난 93년 독일에서 열린 세계 육상선수권대회에 중국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한 마 감독은 왕쥔샤 등 자신이 조련한 선수들을 앞세워 800m, 1,500m, 5,000m에서 잇따라 세계신기록을 경신, 일약 세계육상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마 감독은 선수들의 기록경신 비결에 대해 자신이 직접 고안한 ‘혹독한 훈련법’을 들었으나 조사결과 금지약물(EPA)의 힘을 빌린 것으로 밝혀져 한순간에 명예를 잃고 말았다. 약물로 일어나 약물로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
약물스캔들이 끊이지 않던 지난해 아테네올림픽 때는 영국 BBC방송이 ‘경기력 향상을 위한 합법적인 비법’을 추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약물을 복용하느니 차라리 ‘행운의 부적’을 몸에 지니는 것이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다준다는 웃지 못할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약물에 의존할까? 일단 약물을 복용할 경우 그 이전보다 눈에 띄게 성적이 호전되는 경우가 많은 것만큼은 사실이다. 자신의 선수생명 및 건강보다는 눈앞의 성적이 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 좋은 예가 바로 메이저리그 약물파동의 주역 중 한명인 ‘홈런왕’ 배리 본즈(41·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다.
지난해 약물복용 사실을 시인한 배리 본즈는 사실 약물 복용을 하기 이전인 2001년까지의 기록만으로도 ‘불멸의 스타’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 본즈는 지난 2001년 한 시즌 73개의 홈런포를 양산하면서 메이저리그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1986년 데뷔 이후 2000년까지 15시즌 동안 모두 4백94개의 홈런(연평균 32.9개)을 날린 본즈로서는 약물의 힘을 빌려 생애 평균기록의 2배를 순식간에 달성해 버린 셈이다. 본즈는 2001년 이후 지난 시즌까지 4시즌 동안 모두 2백9개의 홈런(연평균 52.2개)을 날렸다. 사람들은 불혹에 접어든 본즈가 홈런포를 펑펑 작렬하는 모습에 환호를 보냈지만 그럴수록 이 영웅은 어두운 구석에서 약물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준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