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군·내각 앞다퉈 ‘영업’…연간 1000억원 상납중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 북한 식당에서 여종업원이 서빙을 하고 있다.
# 전 세계 12개국 130개 식당 성업 중
북한 당국이 운영 중인 해외식당은 이제 중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등 주변 국가를 여행하는 국내 여행객들에게도 인기 방문 코스가 됐다. 북한 이란 등 미지의 세계를 제3국에서 간접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북한 특유의 담백하고도 독특한 풍미가 느껴지는 음식의 맛과 어여쁜 북한 여종업원들의 서비스는 덤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현재 전 세계 곳곳에서 운영 중인 해외식당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국정원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북한이 해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은 약 12개국 130여 개 정도다. 이 중 중국이 90~100개로 가장 많다. 베이징(北京), 선양(瀋陽) 등 중국 대도시의 경우 한 곳에 많게는 예닐곱 개가 넘는 북한식당이 성업 중이기도 하다. 그밖에도 러시아,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홍콩 등에서 북한식당을 접할 수 있다.
북한은 심지어 2012년 1월, 유럽의 서방국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도 ‘해당화’라는 식당을 개업했다. 네덜란드의 한 사업가와의 동업 형태였지만 여종업원들과 요리사는 북한이 직접 파견하는 형태였다. 개업 당시 세련된 홈페이지까지 구축하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바 있다. 이 식당은 개업 8개월 만에 동업자와의 갈등으로 잠시 문을 닫았었는데 이듬해 갈등을 봉합하고 현재까지 성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 김정은시대 들어 급증…이유는 역시 돈
이러한 북한의 해외식당은 김정은시대 들어 급증 추세다.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한 2012년 이전만 해도 100여 개 남짓했던 식당은 그 이후 약 30%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식당이 돈이 되고, 김정은 시대 들어 각 기관들의 상납 경쟁은 가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130여 개로 추산되는 이러한 해외식당들의 운영 주체는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북한 내 군, 당, 내각의 수많은 기관들이 제각각 능력만 된다면 해외에 영업장을 차리고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 북한 권력기관들의 상납금은 김정은 통치자금의 주요 돈줄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 능력에 따라 기관들의 지위와 내부 간부들의 인사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식당들이 연간 벌어들여 중앙에 상납하는 돈의 규모는 최대 1억 달러까지 추산되고 있다. 물론 이는 대북 전문가들의 추산치에 불과하지만, 최소한 1개 식당에서 연간 30만 달러 이상의 상납금을 올리는 것으로 추측된다.
2012년 1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문을 연 북한식당 ‘해당화’ 홈페이지 캡처.
# 북한 식당도 등급이 존재한다?
재밌는 점은 북한 식당도 나름의 등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각 도시의 입점 지역과 운영 기관의 자금 사정에 따른 것이다. 특히 해당 상권의 고객 수준에 따라 주요 타깃 층을 사전에 조사하여 식당의 규모와 음식의 가격이 결정된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북한 당국도 나름의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셈이다.
기자는 지난해 해외 출장 중 두 곳의 북한 식당을 이용한 바 있다. 지난해 4월께 방문한 한 곳은 중국의 대도시 선양에 위치한 A 식당이다. A 식당은 선양에서도 한인타운이 조성돼 있는 서탑 거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2층 규모의 대형식당으로 한눈에 봐도 어마어마한 홀과 화려한 인테리어를 갖춘 고급식당임이 분명했다. 테이블마저도 대리석 재질의 고급품이었다. 홀 한 가운데는 제법 큰 스테이지가 있었고, 시간이 되면 아리따운 여직원들의 노래와 기예 공연이 펼쳐졌다.
당시 기자가 깜짝 놀랐던 점은 음식의 가격이었다. 메뉴판에는 자연산 송이버섯 구이가 올라와 있었다. 계산할 때 보니 800위안(15만 원)이었다. 기자는 애초 80위안(1만 5000원)인 줄 알고 주문했지만 제 가격을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당시 식당은 북한 식당 중에서도 상류층을 겨냥한 영업장이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8월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출장 중 방문한 B 식당은 앞서의 A 식당과 비교한다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방을 포함해도 5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식당이었다. 간단한 노래방기계를 제외하곤 별도의 공연장도 없고 평범한 테이블이 촘촘히 배치돼 있었다. 음식가격도 1만 원 남짓한 돈이면 한 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한국 대학생들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앞서 번화한 상권에 위치했던 A 식당이 상류층을 타깃으로 한 고급식당이라면 블라디보스토크의 주거촌에 위치했던 B 식당은 대중식당에 가까웠다.
# 여종업원들, 장철구상업대학 출신 많아
해외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 하면 역시 여종업원들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서비스는 물론 기예와 출중한 미모까지 ‘혹시나 해서 가보면 혹해서 나온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이들은 어떻게 선발돼 해외로 나오게 되는 것일까.
북한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전문가에 따르면, 이들 중 많은 인원들이 장철구평양상업대학 출신으로 알려졌다. 해당 대학은 1970년에 문을 연 특수목적 대학이다. 요리, 상업, 피복, 관광 등 서비스업 부문의 전문기술자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김일성의 항일투쟁시기 취사병이었던 장철구의 이름을 땄다.
해당 대학에 재학 중인 인재들 중 미모와 기예가 뛰어난 학생들을 두루 선발하며 서비스와 외국어 등 별도의 당 교육을 통해 해외에 파견된다. 이러한 인재들은 대개 3년 정도 체류기간을 보내게 된다. 물론 선발 과정에서 출신 성분을 많이 따지지만, 최근엔 이와 별개로 적당한 뇌물이 오가는 선에서 인재가 차출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기자가 러시아 현지의 종업원 월급을 따져보니, 1인당 300달러 수준의 돈을 쥐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북한 노동자들의 평균 월급과 비교하면 굉장히 높은 수준의 급여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해외 파견을 원하는 북한 내부 인재들이 꽤 많다는 후문이다.
물론 이러한 여종업원들과 조리사들은 현지에서도 무척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된다. 식당에는 책임자 두 명이 존재한다. 한 명은 식당의 영업과 종업원들을 관리하는 지배인이다. 또 다른 한 명은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보위대원이다. 보위대원의 역할은 종업원들의 일상 생활을 실제 통제하는 역할을 한다. 최근 북한 해외 파견 근로자의 노동 환경과 관련해 여러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실제 이들은 CCTV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등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 한국 손님은 봉?
북한식당의 주요 고객은 누구일까. 최근 한류바람으로 꽤 많은 현지인들이 해외에서 운영 중인 북한 식당을 찾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주요 고객은 한국인 여행객들이다. 기자가 몇몇 식당을 찾았을 때도 테이블의 절반 정도는 항상 한국인들의 차지였다. 앞서의 통일부와 외교부가 국내 여행객들의 방문 자제령을 내린 것에도 어느 정도 이유는 있는 셈이다.
말도 잘 통하고 경제력도 있는 한국 여행객들은 북한 식당과 여종업원들에게 환영받는 손님이다. 특히 이들이 북한 식당에 가면 음식 값 외에도 팁으로만 주머니가 술술 비게 된다. 선양 A 식당의 경우 여종업들의 기예공연 후 사진 촬영, 하다못해 공연자에게 축하 꽃다발을 건네는 퍼포먼스에도 팁이 요구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비빔밥을 주문했을 때 여종업원이 슬며시 다가와 손수 밥을 비벼줬던 경험이다. 옆에 있던 가이드는 기자의 옆구리를 툭 치며 팁을 건네라는 귓속말을 건넸다.
한편으론 여종업원들과의 간단한 데이트도 일부 가능하다. 일을 정리하고 주변의 가라오케에서 여흥을 즐기는 수준이다. 다만 이는 앞서 지배인과 보안대원의 특별한 허락이 있어야 하지만 팁에 대한 배분만 잘 이뤄진다면 가능하다는 후문이다.
# 북한 식당의 공작 가능성은?
일각에서는 해외에서 운영되고 있는 북한 식당의 공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사람이 모이면 곧 정보가 모이기 마련이다. 또한 많은 한국인들이 이곳을 이용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국내와 관련한 많은 정보들이 식당을 통해 오갈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인을 직접 상대하는 여종업원들은 일과 후 상관에게 업무보고하는 형식의 별도 시간을 갖는다. 이 시간 동안 종업원들은 일과 도중 한국인을 포함한 손님들과 나눈 대화, 그것을 통해 얻은 정보들을 상관에 보고하게 된다.
이 정보가 어떤 식으로 유용하게 이용될지는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윤걸 북한전략정보서비스센터 대표는 “엄연히 한국인과 접촉이 가능한 해외 공관”이라며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조심스레 공작활동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가 북한 식당 내국인 출입 자제령까지 내리는 배경에는 북한의 통치자금 통로라는 점 외에도 이러한 정보 유출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내국인들의 북한 식당 출입 자체는 남북교류협력법상 사전 신고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불법은 아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