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박 ‘수도권 총선 망칠라’…친박 ‘이참에 전략공천 밀어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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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 등 새누리당 지도부가 지난 25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야당의 테러방지법 의결 저지 필리버스터를 규탄하는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여권 한 관계자는 “테러방지법은 야권에 대항한 여권의 보수대집결용”이라고 해석해줬다. 국민의당 창당으로 야권이 분열돼 반사이익을 노렸지만 보수표가 이탈하는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분열에 쾌재를 불렀던 새누리당이 테러방지법을 북한의 도발과 연결시켜 추진하고 있는 이유란 얘기다.
그는 “이렇게 테러방지법에 발목 잡히면서 국회를 마비시킬 명분으로 북 도발이 충분치 않다는 말도 있지만 어찌됐든 ‘안보정국’은 여권에 유리하다는 판단”이라며 “저쪽에서도 그걸 원하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저쪽’은 청와대를 뜻한다.
현재 새누리당 지도부에서 청와대에 대한 ‘촉’이 가장 좋은 사람으로 원유철 원내대표가 꼽힌다. 친박계 최고위원 중에는 서청원 의원도 있지만 서 최고위원은 김무성 대표와 ‘공천룰’ 싸움을 전담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테러방지법이 원내 사안이라고 한다.
최근 사석에서 원 원내대표는 “테러방지법은 무조건 처리한다. 시간이 걸려도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원 원내대표를 만났다는 정가 인사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가 테러방지법에 대해 임무를 맡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한 관계자는 “식사 중간 중간 원내대표가 전화를 받으러 밖으로 나갔다 왔다. 이후 워딩(Wording·발언)을 들어보면 테러방지법에 엄청 신경을 쓰는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역구 253석, 비례대표 47석으로 야당과 합의한 김무성 대표에 대해 친박계가 “김 대표가 고춧가루를 뿌렸다”고 성을 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선거구 획정안이 통과되면 국회의원들이 모조리 지역구로 가게 되고 그럴 경우 쟁점법안 처리가 물 건너간다는 것이다. 특히 야당 의원들로선 여의도에 머무를 이유가 없다는 것. 선거구 획정안 처리가 새누리당으로선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 안보분야 쟁점법안 처리의 협상카드였다는 얘기다.
게다가 야당의 숨 가쁜 필리버스터가 수도권의 숨은 ‘야성’을 깨우면서 새누리당 지도부가 전략 마련에 부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에 명시된 합법적 방해 행위여서 넋 놓고 지켜만 보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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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버스터를 통해 일약 스타로 떠오른 은수미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김무성 대표는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어쩔 도리가 없다. 국회선진화법이 망국법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며 필리버스터를 국회선진화법 개정과 연결 지으려 했지만 부각되지 못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본회의장이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들의 얼굴 알리기용 총선 이벤트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오래 버티기 신기록 경신대회로 관심을 끌고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휩쓸고 있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선 “지도부에서 빨리 전략을 짜고 판단을 내려줘야 하는데 너무 무기력하다”고 푸념하고 있다. 특히 야당세가 높은 수도권 의원들은 “이러다 수도권 선거는 망한다”고 입을 모은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부랴부랴 당 소속 의원들을 교대로 시켜 1시간씩 본회의장 앞에서 피켓시위를 이어가기로 결정하자 일부는 “지금 지역구 활동도 모자란 판에 1시간 시위를 위해서 상경해야 하느냐”고 따졌다고도 한다. 테러방지법을 처리하려다 야당에게 총선용 대형 이벤트를 제공했다는 지도부 책임론까지 거론되는 형국이다.
‘필리버스터 정국’에서 웃고 있는 계파도 있다. 바로 친박계다. 국회의 공회전이 장기전으로 가야 공천룰에 대한 언론의 조명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친박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선거구 획정도 테러방지법 등 쟁점도 늦어질수록 좋다”고 말했다.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친박계의 반발로 현행 당헌당규로 후퇴했다. 하지만 선거구 획정과 공천룰 결정이 미뤄질수록 막판에 허겁지겁 처리할 수 있고, 그럴 경우 우선추천제, 단수추천제 등 전략공천성 룰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이란 이야기다.
이 관계자는 “일단 공천룰에 대해서는 친박계가 말을 않기로 한 것 같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에게 전폭적으로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사사건건 김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우리 쪽에선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이한구 위원장은 기존에 없던 ‘현역 국회의원 면접’까지 성사시켜 군기잡기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위원장은 농담이라면서도 “대구(12명)를 6명밖에 안 날린다고요?”라고도 했고, “대표에게 공천 안 준 적도 있다”며 김 대표를 겨누기도 했다. 누가 봐도 시비를 거는 모습이다.
이 위원장이 공천룰과 관련해 따로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나, 친박계와 연결된 조직을 가동하고 있다는 등 각종 설이 정가에 회자하고도 있다. 몇몇 친박계 의원들의 불출마를 성사시켜 대규모 현역 척결에 나설 것이란 말도 들린다.
여권은 테러방지법 처리와 북한 도발을 이슈화해 안보정국을 만듦과 동시에 민생 챙기기로 바닥 민심을 잡겠다는 계산으로 보인다. 집권여당의 무기인 ‘당정협의’ 주제를 대부분 민생으로 잡은 것이다. 이는 올해 예산의 절반 이상을 상반기에 풀어 총선용으로 활용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도시가스 요금을 현행보다 평균 9.5% 인하키로 발표했다. 1월에도 내렸는데 2월에 또 인하한 것이다. 또 쌀농사 풍작으로 급락세를 보인 산지 쌀값을 안정시킨다며 쌀 15만 7000톤을 추가로 매입하겠다고 밝혔다. 선거구 재획정으로 지역구 수가 2곳 줄어드는 경북의 텃밭 민심을 붙잡는 효과가 있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