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친도 하늘나라로…“영양실조라니! 마음이 아파서 가셨다”
청부살인을 사주한 영남제분(현 한탑) 회장 부인 윤길자 씨가 호화병동에서 생활을 해 논란이 인 바 있다. 아래는 여대생 하지혜 씨 살해사건 현장검증.
미래의 법조인을 꿈꾸며 이화여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하 씨가 판사로 근무하는 이종사촌에게 가끔 연락을 하며 조언을 구했던, 지극히 자연스런 일들이 화근이 됐다. 윤 씨의 어처구니없는 의심이 커져만 갔기 때문이다. 윤 씨는 김 씨와 하 씨 사이를 의심해 2년 동안 미행을 붙이기까지 했다.
윤 씨의 망상은 더욱 과격해져갔다. ‘하 씨와 김 씨가 같은 건물로 들어가는 사진’에 3억 원의 현상금을 거는 등 집착은 더욱 심해져갔다. 그러나 당시 윤 씨의 지시로 하 씨를 미행했던 사람들이 목격한 그녀의 동선은 집, 학교, 도서관이 전부였고 미행한 사람들 모두가 하 씨는 결코 불륜과 연관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데다 ‘이제 그만 합시다’라고 제지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끝없는 의심이 결국 사건을 만들었다. 윤 씨가 1억 7500만 원을 대가로 자신의 조카와 그의 동창생을 동원해 하 씨를 납치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청부살해를 저지른 윤 씨는 결국 자신의 죄가 드러나 무기징역을 받게 된다.
많은 사람들의 분노는 그때부터 폭발하게 된다. 윤 씨가 지난 2007년부터 2013년 사이 약 6년에 걸쳐 남편인 류 아무개 회장이 섭외한 의사의 허위진단서를 처방 받아 누린 호화 수감생활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특히 일반 수감자들은 심각한 병이 걸려도 받기 힘든 형 집행정지를 수시로 받아 교도소를 들락거린 사실까지 공개됐다.
최근 숨을 거둔 하 씨의 어머니 설 씨의 죽음도 윤 씨의 이 같은 호화 수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는 것이 주변인들의 증언이다. 무기징역을 받고 수감 중인 윤 씨가 최근 모범수 중에서도 선별해 사회복귀를 대비한 제빵, 용접 기술 등의 훈련을 받고 수감 환경도 쾌적한 화성 직업훈련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년간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아 호화생활을 하다 적발돼 지난 2013년 재수감됐던 윤 씨가 또 다시 ‘특혜’를 받은 것으로 비칠 수 있는 대목이다.
설 씨의 남편 하 아무개 씨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감방에서 자숙하고 반성해야 할 사람이 호화 병실에서 그렇게 저녁 메뉴까지 지시해가면서 희희낙락하는 모습이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슴 아픕니까”라고 말했다.
아픔은 가족을 어둠으로 몰고 갔다. 남편은 딸이 생각나는 집을 떠났다. 부인인 설 씨는 딸을 기억하기 위해 딸과 같이 살던 집에 계속 남았다. 가족이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이다. 그러다 결국 설 씨 혼자 집에 머물다 변고가 닥쳤다. 물론 설 씨가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살한 것도 아니었다. 불과 열흘 전 설 연휴 때 손자, 손녀에게 세뱃돈을 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다만 자신의 딸을 죽인 범죄자가 너무도 당당한 모습에 비통함과 분노를 느껴야 했던 설 씨가 그 고통을 달래느라 마셨던 술이 독이 돼 돌아왔다. 술을 모르던 설 씨가 술을 입에 대기 시작했다. 처음 시작한 맥주는 막걸리가 됐고, 결국 소주까지 입에 대게 됐다.
설 씨가 사망하자 일부 언론에서는 ‘당시 38㎏에 불과했다’며 ‘영양실조였다’는 내용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피해자 오빠인 하진영 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38㎏ 영양실조 기사는 제 아버지께서 그만큼 식사량이 적고 술을 드시고 마음 아파하셨던 것을 표현한 것이다”라며 “(어머니는) 마음이 아파서 가셨다”라고 적었다.
하 씨와 친분이 있는 홍 아무개 씨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영양실조로 단정하고 보도한 기사 때문에 유족들은 ‘어머니가 영양실조 될 정도로 뭐했느냐’며 ‘방치한 것 아니냐’는 식의 댓글이 유족을 두 번 울리고 있다”며 “사망 직접 사인이 영양실조라고 하더라도 왜 그렇게 되셨는지 그 내면을 봐달라”고 호소했다.
설 씨의 아들 하 씨는 페이스북에 “제가 여지껏 버티고 싸워왔던 이유는 단순히 제 동생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이 나라의 썩어빠진 사법부 법조인들에게 조금이라도 경각심을 주고 두 번 다시 이러한 일들이 재발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며 “제 어머니도 버티다 버티다 억울하게 자식을 잃고 14년 만에 결국 돌아가셨다”면서 오는 2월 29일부터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한편 설 씨는 결국 세상을 떠났지만 하 씨 사건이 세상에 다시 한 번 경각심을 줄 가능성이 있다. ‘여대생 공기총 청부살인 사건’이 재조명되고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자 이를 영화화하려는 영화 제작사들의 움직임도 분주해졌다. 당시 하진영 씨는 영화제작과 관련한 움직임에 회의적이었다. 지난해 하 씨는 <일요신문>에 “무엇보다 동생의 죽음과 관련한 진상규명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제작사들로부터 많은 전화를 받았지만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 제작에 회의적이던 하 씨의 가족들은 이를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오빠 하 씨는 이를 ‘반성하지 않는 그 사람들’ 때문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 번 경종을 울리는 영화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