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뒷담화 주고받던 그 동기가 선배라굽쇼?…익명 SNS ‘잠입 선배’ 주의보
지난 2월 중순부터 전국 대학에서 본격적인 신입생 환영회 행사를 갖기 시작했다. 이맘때쯤이면 심심찮게 발생하는 음주 사고로 인해 요즘 각 대학에선 새로운 방식으로 신입생을 맞이하려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다.
먼저 충북대 의과대는 ‘무알코올 오리엔테이션’을 실시했다. 충북대 관계자는 “설문 조사 결과 ‘선배들과 첫 대면에서 주량을 조절하기 힘들다’는 답변이 많아 지난해부터 술을 마시지 않는 무알코올 행사로 진행했다“며 ”실시 결과 학생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드라마 <치즈 인더 트랩> 스틸 컷.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사진 제공=CJ E&M.
한밭대와 영동대 또한 ‘술 없는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한다. 한밭대 관계자는 “과거 1박 2일로 실시한 행사에서 벗어나 무박으로 진행하며 술 없는 행사로 준비했다”고 밝혔다. 영동대는 2박 3일 일정으로 오리엔테이션을 ‘술 없는’ 스키캠프로 진행한다. 영동대는 총학생회에서 자발적으로 술 없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선언한 2009년부터 문화를 이어오고 있다. 영동대 관계자는 “먹고 마시는 오리엔테이션보다는 스키캠프를 통해 신입생들에게 새로움을 주는 뜻 깊은 행사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심지어 신입생들에게 음주를 강권하지 않기 위해 선배들의 지침서에 서명을 받는 학교도 있다. 바로 고려대 한문학과다. 해당 학과에선 선배들이 지켜야 할 14가지 지침인 ‘선배 규약 동의서’를 온라인 서명을 한 뒤에 학생회 측에 제출했다.
일부 대학에서 새로운 오리엔테이션 문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신입생들은 여전히 괴롭다는 전언이다. 특히 최근 각 대학 익명 SNS를 통해 ‘X맨 제도’에 대해 신입생과 재학생 사이에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기도 했다. ‘X맨’이란 오리엔테이션부터 선배가 ‘신입생인 척’ 신입생들 사이에 잠입을 하는 것이다. 현재 다수의 대학에서 ‘X맨’을 하고 있다. 선배들의 명분은 ‘서먹한 새내기들 사이를 선배들의 능숙함으로 풀어주기 위해서’다. 이에 대해 15학번 김 아무개 씨는 “신입생들끼리 있으면 분위기가 삭막하다”며 “선배들만 즐겁자고 하는 게 결코 아니다. 신입생과 가까운 거리에서 친해지고 싶은 취지에서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 이런 ‘X맨 제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일부 대학에서 존재했다. 이미 대학을 졸업해 사회생활을 하는 20대들도 ‘X맨’에 대해 알고 있었으며 “우리 때도 선배들이 장수생이라고 속이는 ‘장난’은 있었다”는 분위기다. 다만 이런 제도가 최근 들어 대학가 전반으로 확대된 것이다.
하지만 신입생들은 “얼굴 보고 장난치는 것과 SNS 계정까지 새로 만들어서 속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며 “배신감이 매우 크다”고 입을 모았다. 오는 3월 대학에 입학하는 강 아무개 양은 “실컷 친구인 줄 알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기 직전 갑자기 선배라고 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며 “오히려 선배와 사이가 더 어색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친구 중에는 선배 뒷담화를 한 경우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복학 선배와 같은 학번이라 난감해했다”고 난색을 표했다.
또 다른 대학 신입생 강 아무개 양은 “이미 친해지고 같이 다녔는데 두 명 다 선배라서 결국 혼자가 됐다”며 불만을 표현했다. 특히 “후배들을 위한 일이라고 해도 그 후배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건 더 이상 그들을 위한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불참비를 걷는 등의 만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기도 소재의 한 대학에 입학 예정인 김 아무개 군은 “예비 소집일 날 불참하면 태도 점수를 깎겠다고 선배가 협박했다”며 “오리엔테이션 때 신입생들이 춤추는 게 전통이라 연습 불참 시에도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 말해 계속 주중에 연습하러 나갔다”라고 말했다.
올해 16학번 신입생인 이 아무개 양은 “대부분 학교에 있는 전통인데 술 게임할 때 선배들이 걸리면 곁에 있는 후배까지 마시게 하는 것이 제일 불만이라고들 한다”고 덧붙였다. 이 밖에도 큰 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FM’, 장기 자랑 등도 불만 사항이다. 일부 신입생들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시키는 건 폐지시켜야 되는 것 아니냐”며 불만 사항을 각 대학 SNS에 올리기도 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페트병·야채칸에 부어라 마셔라…악습 여전 많은 대학이 술을 강권하는 오리엔테이션을 추구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여전히 새내기들에게 술을 강권하는 악습이 일부 남아있어 논란이 된 곳도 있다. 최근 서울의 A 대학 B 학과 ‘새내기 배움터’에서 ‘깔때기’로 술을 먹여 논란이 됐다. 해당 학과에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신입생이 무릎을 꿇고 ‘열중 쉬어’ 자세를 잡는다. 신입생의 입에 페트병 자른 걸 물려서 선배가 노래를 부르며 물과 소주를 섞어서 준다”며 “여학우들은 정말 못하겠다면 소주를 넣지 않고 물만 넣어줬다”고 말했다. 덧붙여 “새터(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했는데 새터에 불참해서 안 했던 학우는 연합 엠티 때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현재 해당 학과의 ‘깔때기 문화’는 한 매체를 통해 문제가 된 이후 폐지됐다고 밝혔다. 영화 <스물> 스틸 컷.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또한 학과 부학회장은 “논란이 불거진 후 학과 행정실에 연락해서 2015학년 2학기 재학생 명부를 모두 받았다. 응답자 72명 중 56명이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학교 관련 SNS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같은 대학 C 학과에선 냉장고 야채칸에 술을 부어 먹여 학교에서 이슈가 됐다. 학교 관련 SNS에서 학생들은 ‘야채칸학과’라고 부를 정도다. 이곳에선 “무엇을 담았는지도 모르는 야채칸으로 술을 먹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라는 해당 학과 비난 글이 쇄도했다. 그럼에도 학과 관계자는 “의리 게임처럼 마신 것인데 더 이상은 말할 수 없다”고 함구했다. 한편 한 대학교 총학생회 회장은 이런 대학가 술문화에 대해 “요즘에는 술을 강권하는 것은 절대 없다”면서도 “선후배들 사이에 술이 오고 가야 친밀해진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기에 술 문화가 아예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