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9일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탐험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어찌 보면 우리 인류사에 있어서 큰 의미가 있는 날인 셈이다. 대륙 탐험이 한창이던 1504년 2월 29일, 콜럼버스는 개기월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이용해 원주민들을 복종시켰기 때문입니다.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철저하게 서구적 관점이긴 하지만) 어쨋든 보이지 않는 위험을 무릅쓰고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갔다는 점에서, 더군다나 신대륙의 발견이란 가시적 성과를 얻었다는 점에서 콜럼버스는 선구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콜럼버스는 ‘학살자’나 다름 없습니다.
콜럼버스는 스페인 왕국의 지원을 받아 항해를 시작했고 1492년 처음 대륙에 임하게 됩니다. 종교적 사명, 인류의 순수한 탐구심은 그를 포장하기 위한 명분일 뿐 사실 그의 탐험은 교역과 시장 개척인 현실적 측면이 훨씬 컸습니다. 당연지사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곧 피를 부르게 됩니다.
대륙의 원주민들과 갈등을 일으키게 되고, 더 나아가 잔혹한 학살까지 저지르게 됩니다. 당시 콜럼버스의 선원들은 대륙 탐험 당시 금같은 상품들을 원주민들에게 요구합니다. 이에 응하지 않는 원주민들은 수족을 절단하거나 도망간 이들을 추적해 살해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원주민들의 저항도 상당했습니다. 콜럼버스는 이를 압살하기 위해 ‘과학’이란 무기를 꺼내듭니다. 유럽의 월력을 통해 1504년 2월 29일 개기월식을 예측한 콜럼버스는 원주민들에게 ‘기독교의 신이 노하여 2월 29일 달이 보라빛으로 물들 것’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하게 되죠. 당연히 이를 알리 없는 원주민들은 혼비백산하게 되고 콜럼버스에 복종하게 됩니다.
콜럼버스의 당시 이 술수는 옳은 것일까요. 사실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는 부분입니다. 당시 콜럼버스의 이 ‘속임수’는 결국 신대륙의 원 주인들을 서구사회의 부속물로 격하시키는 하나의 계기가 됐으니까요. 512년 전 오늘을 되돌아봅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