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포’ 터지면 단숨에 월드스타 도약
▲ 최희섭이 오는 7월13일 최고의 타자 8명이 겨루는 올스타전 홈런 더비에 초청을 받았다. | ||
그런데 최희섭은 정작 팀 내에서는 왼손 투수만 상대 선발로 나오면 라인업에서 제외되는 반쪽 선수가 되고 있다. 짐 트레이시 감독의 플래툰 시스템(platoon system)의 희생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홈런 더비는 최희섭에게 더욱 더 중요하다.
최희섭은 오는 7월13일 디트로이트에서 벌어지는 ‘미드 서머 클래식’(Mid-Summer Classic)이라고 불리는 올스타전의 홈런 더비에 초청을 받았다.
올스타전 바로 전날 치러지는 홈런 더비는 올스타전 이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최고의 팬 서비스다. 당대 최고의 홈런 타자들 8명이 출전해 벌이는 이 홈런 대결은, 현장에서 지켜보는 수만 관중에다가 미국 전역은 물론 세계 각 지역에 생중계돼 월드 스타로 일어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2001년 박찬호가 첫 올스타전에 출전했을 당시 시애틀의 세이프코 필드를 진원지로 세계의 야구팬들은 온통 제이슨 지암비(당시 오클랜드) 신드롬에 흔들거렸다. 당시 올스타전 취재를 가서 우익수측에 위치한 기자실에서 홈런 더비를 지켜봤는데, 왼손 타자인 지암비는 우측 관중석 상단에 떨어지는 가공할 홈런을 연속으로 터뜨려 전 세계의 야구팬들을 흥분시켰다.
1999년엔 보스턴에서 마크 맥과이어(당시 세인트루이스)가 `그린 몬스터’라는 별명이 붙은 펜웨이파크의 왼쪽 담장을 완전히 넘는 장외 홈런을 계속 터뜨렸던 장면도 여전히 팬들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 있다. 2000년 휴스턴 더비에서 새미 소사(당시 시카고 커브스)는 3라운드 동안 26개의 홈런을 터뜨리는 괴력을 과시하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최희섭 역시 딱 치기 좋은 배팅볼을 던져주는 홈런 더비에서 장쾌한 홈런을 몇 개만 터뜨린다 해도 전 서계의 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 게다가 동양 선수로는 최초의 출전이기 때문에 아시아권의 대표 타자로 자리 매김할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하다.
또한 우승 가능성도 아주 없지는 않다. 과거 지암비나 맥과이어의 경우 예선전서 너무 힘을 쏟아 부어 결승에 오르지도 못한 반면 애리조나의 루이스 곤잘레스(2001년)나 LA 에인절스의 개럿 앤더슨(2003년) 등 파워 면에서는 그다지 크게 알려지지 않은 타자들이 힘의 배합으로 우승을 차지한 경력도 있다. 최희섭으로서는 어쩌면 메이저리그에 도전한 이래 최고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올스타 4위 역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올스타 팬 투표는 통산 리더그룹인 5위까지만 발표하는데 최희섭이 4위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은 그 의미가 정말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상위 랭커들의 명단만 봐도 얼마나 대단한 선수들 사이에 최희섭이 포함됐는지 알 수 있다.
1위에는 현존하는 최고의 우타자라는 평가를 듣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앨버트 푸홀스가 올랐다. 지난해는 금지약물 사용선수 배리 본즈에 밀려 MVP 2위에 그쳤지만, 22일 현재 올 시즌 성적이 3할3푼5리(NL 2위) 18홈런(NL 공동3위) 58타점(NL 공동2위)으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초 최희섭과 트레이드돼 시카고 커브스 유니폼을 입은 데릭 리가 팬 투표 2위에 올랐는데, 그의 활약은 더 눈부시다. 3할9푼2리의 타율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며, 19홈런으로 NL 공동 1위, 그리고 58타점은 푸홀스와 공동 2위로 타격 3관왕을 넘볼 정도다.
반면에 3위에 오른 민케비치는 2할1푼7리에 8홈런 22타점으로 최희섭의 2할4푼3리, 13홈런 30타점에도 훨씬 못 미치지만, 뛰어난 수비력과 뉴욕 메츠에서 뛴다는 지명도로 3위에 올랐다. 최희섭은 특히 올 시즌 부상이 잦기는 하지만 여전히 휴스턴의 간판 타자인 제프 배그웰을 5위로 제치고 4위에 오르기도 했다.
1위 푸홀스가 22일 현재 1백30만 표가 넘고, 2위 리도 1백10만 표가 넘어 23만 표를 넘긴 최희섭과 표차이가 나기는 한다. 그러나 최근 네 경기 7홈런의 강인한 인상을 남긴 까닭에 최희섭에게 표가 몰리고 있다.
▲ 홈런을 친 후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최희섭의 세리머니. | ||
짐 트레이시 감독은 MLB에서도 첫 손에 꼽는 플래툰 시스템 신봉자다. 플래툰 시스템은 특정 포지션에 여러 선수를 상황에 따라 주전으로 투입하는 전술이다.
예를 들면 1루수 자리에 상황에 따라 왼손 타자와 오른손 타자를 선별해서 내보내는 식이다. 즉 상대 선발로 오른손 투수가 나오면 왼손잡이 최희섭을 선발 1루수로 내세우고, 왼손 투수가 나오면 오른손 타자 올메도 사엔스를 그 자리에 기용한다.
물론 그것이 선수 간의 경쟁을 유발하고 단기적으로는 팀 전력에 보탬이 될 수도 있다. 22일 현재 최희섭은 우투수를 상대로 2할5푼에 12홈런 28타점을 기록하고 있고, 사엔스는 왼손 투수를 상대로 3할4리에 5홈런 17타점을 기록했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는 최희섭이나 사엔스가 반쪽짜리 선수밖에 될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올해 최희섭은 왼손 투수 상대로 17타수 2안타, 1할7푼6리를 기록했고, 홈런 1개에 2타점을 올렸다. 지난 3년간 왼손 투수 상대 성적은 57타수 6안타로 1할2푼3리에 1홈런 5타점.
그러나 이 성적은 지극히 제안된 상황에서 나온 것으로, 본인의 능력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꾸준히 왼손 투수들을 상대하면서 경험을 쌓게 된다면 충분히 2할5푼대 이상을 칠 수 있는 능력을 최희섭은 보유하고 있다.
다저스가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며 중하위권으로 처지는 것이 어쩌면 최희섭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어차피 페넌트 레이스 탈락이 유력시된다면 플래툰 시스템보다는 오래도록 1루 베이스를 맡겨야 하는 최희섭을 반쪽짜리가 아닌 완전한 타자로 키워야 할 필요성이 강조될 수 있다.
물론 1차적으로는 왼손 투수들에게 고전한 최희섭에게 책임이 있다. 그러나 짐 트레이시 감독의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하에서 최희섭이 희생되고 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최희섭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남은 시즌이라도 좋으니 꾸준히 왼손 투수들을 상대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만 달라는 것이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