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 ‘포’ 섞어야 ‘안정레일’ 탄다
▲ 박찬호 선수. | ||
지난 겨울 혹독한 훈련 속에 허리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됐다며 부활을 확신한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던 박찬호는 7월2일 현재 16게임에 선발로 나서 8승2패로 외견상 뛰어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러나 방어율이 5.50로 아주 높은 편인 데다, 88과1/3이닝 동안 무려 104개의 안타를 맞았다. 삼진이 66개로 수준급인 반면에 4사구가 46개로 너무 많다. 이닝보다 안타가 적어야 투수로서 위력이 있다는 반증이 되지만 박찬호는 안타수가 이닝수보다 훨씬 많고, 삼진과 4사구의 비율이 2대1도 안 된다는 것은 제구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각 경기의 내용을 봐도 그렇다. 시즌 첫 등판인 4월9일 시애틀 원정에서는 5와2/3이닝 동안 4안타 3실점으로 상당히 안정된 모습을 보여 희망을 심어줬다. 그리고 4월14일 강호 LA 에인절스를 맞아 6과2/3이닝을 3실점으로 막으며 시즌 첫 승리를 따냈다. 특히 그 경기에서 박찬호는 삼진을 6개 잡고 볼넷은 1개만 내주는 안정된 제구력으로 더욱 큰 기대를 걸게 했다
4월19일 천적 오클랜드와의 경기에서 주춤했던 박찬호는 호화 전력인 뉴욕 양키스와 보스턴 레드삭스에 연승을 거두면서 ‘부활 찬가’를 높이 불렀다. 올 시즌 20승 도전에 두 번째 올스타전 출전 등의 장밋빛 전망들이 쏟아져 나온 것도 이때다.
그렇지만 5월5일 오클랜드와 재대결에서 3과2/3이닝 만에 5실점으로 무너진 이후 박찬호의 ‘롤러코스트’ 시즌이 계속되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바닥을 치는가 하면 오뚝이처럼 일어나 호투하다가 다시 또 추락하는 일이 반복됐다.
5월23일 휴스턴전의 7이닝 무실점 역투로 정점을 찍은 뒤 5월30일 최강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6이닝 4실점으로 막고 시즌 5승을 거뒀고, 6월5일 캔자스시티에서는 타선의 도움에 힘입어 빅리그 통산 1백승의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6월16일 애틀랜타전서 5이닝 8안타 1실점으로 근근이 7승을 거둔 박찬호는 6월22일 에인절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1이닝 만에 8실점이라는 최악의 피칭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리고 희망보다 절망의 먹구름이 짙어지던 시점에 박찬호는 6월27일 휴스턴 원정 경기에서 또 한번 7이닝 2실점의 빼어난 피칭을 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르락내리락이 극심하게 교차되는 박찬호의 현주소를 ‘희망’ 쪽으로 봐도 좋을지 헷갈리는 것이 사실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박찬호가 새로운 패턴의 투수로 변했다는 점이다. 과거의 위력적인 포심 패스트볼을 되찾는 것이 불가능해진 시점에서 박찬호는 땅볼 유도에 유리한 투심 패스트볼 위주의 투수로 변했다.
포심은 가장 빠른 구속에 나오는 구질이라고 해도 궤적의 변화가 적어 뜬 공이 많이 나오고, 로케이션이 가운데로 몰리면 장타를 허용할 소지가 많다. 박찬호의 포심 패스트볼이 155km를 넘나들 때는 실투도 범타로 끝났지만, 150km를 겨우 넘나들 때는 아차하면 배팅볼이 된다. 그러나 투심 패스트볼은 구속이 3~4km 덜 나와도 공 자체가 싱커성으로 아래로 떨어지는 성향이 강하다. 투구시 검지와 중지 손가락의 강도에 따라 떨어지는 방향과 폭도 조절할 수 있어, 땅볼이 필수인 텍사스의 홈구장 아메리퀘스트필드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구질이다. 과거에도 투심 패스트볼을 섞어 던졌던 박찬호지만 올해는 아예 투심 위주의 피칭 패턴으로 새로운 생존법을 터득해가고 있다.
그런데 투심에는 ‘치명적인 유혹’이 있다. 투심을 던지자면 아무래도 손목과 손가락을 비틀어야 하는데, 지속적으로 또는 자주 손목과 손가락을 많이 비틀면 스피드는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손목을 많이 비틀어 던지면 공이 변화하는 각도가 커지긴 해도 너무 자주 손목을 비틀어 던지면 볼의 위력은 점점 줄어들고 포심의 스피드도 줄어들게 되어 있다.
실제로 투심을 너무 빈번히 사용하면서 박찬호의 투심 패스트볼은 80마일대 중반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더불어 포심도 90마일대 초반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구속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불과 2~3마일의 차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타자들에게는 마음 편히 대놓고 공을 쳐낼 수 있는 스피드와 미리 공의 구질을 예상해서 잔뜩 긴장해 준비를 해야 하는 천양지차가 난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두 경기에 ‘부활의 정답’이 담겨있다. 낮게 깔리는 제구력과 움직임이 심한 투심이 좋았지만, 포심 패스트볼을 최근 가장 많이 구사했고 또한 슬로 커브를 적절히 이용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두 경기에서 94마일(151km) 이상 나왔던 포심을 여전히 던질 수 있다는 것은 구속 유지를 위해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인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하다. 포심 패스트볼은 그 스피드 때문에 타자들이 미리 각오하지 않으면 좀처럼 대처하기가 쉽지 않다. 그전까지 몇 경기에서 투심과 슬러브 위주로만 던지는 것과 투심과 슬러브에 슬로 커브와 포심까지 섞어 던지니 타자들로서는 골치가 아프지 않을 수 없었다.
94~95마일의 포심에 89~92마일의 투심, 그리고 80마일대 초중반의 슬러브에다가 70마일대 초반의 슬로 커브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구사하면 타자들로서는 일단 심리적으로 불안할 뿐 아니라, 구속 변화에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운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런 패턴의 투구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부활’에 목돈을 걸어도 좋다.
그러나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부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점이다. 만약 박찬호의 들쭉날쭉한 피칭이 계속됐더라면 부상 재발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그리고 지속적으로 구속 저하와 공 끝의 힘이 떨어진다는 것은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박찬호는 여전히 역동적인 투구폼을 유지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150km가 넘는 강속구를 던져대고 있다. 투심의 유혹에 빠져 일시적으로 구속과 구위가 떨어졌을 뿐 몸에는 이상이 없고, 다만 새로운 형태의 투수로 변하는 과도기 과정에서 홍역을 치르는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아직 절반도 끝나지 않은 긴 시즌, 박찬호가 더 이상 변신 운운할 수 없을 정도로 최근 투구 패턴에 익숙해진다면, 그것이 곧 부활로 이어지는 도약대가 될 수 있다.
스포츠조선 야구팀 부장대우